'작은따옴표가 없는 형우'

by 윤세영


처음으로 돈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스물네 살 때였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주 3일, 총 열여덟 개 학교 학생들의 국어를 혼자 가르쳐야 했던 동네의 보습 학원에서 나의 강사 생활은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일하기 힘든 곳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그때 아이들과의 추억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오늘은 그중 여전히 하나의 표제어처럼 마음에 남아 있는 ‘작은따옴표가 없는 형우’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날 수업은 어딘지 평소보다 분위기가 좋았다. 그 반 아이들은 산만해서 애를 많이 먹이는 편이었는데 그날따라 수업 내용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 그랬는지, 단지 아이들 기분이 좋았던 건지, 왜인지 모르게 다들 웃음이 넘쳤다. 수업 내용은 문장 부호였고 이제 나는 막 ‘작은따옴표’에 대해 설명하는 참이었다.

“인용한 말을 쓸 때, 앞에 말했듯 큰따옴표를 쓰고, 그 인용한 말 속에 또 다른 인용한 말이 들어 있을 때, 그 말은 작은따옴표를 쓰면 돼.”

아마도 나는 이렇게 설명하고 뒤이어 덧붙였을 것이다.

“인용한 말이 마음속으로 한 말일 때도 작은따옴표를 쓰고.”


웃음이 많지만 말수는 적은 아이였던 진영이가 설명 끝에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그럼 작은따옴표는 속으로 한 말을 표시하는 거네요?”

“그렇지. 우리 평소에 소설 수업할 때도 많이 봤지?”

진영이는 가만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뒷자리의 형우를 슬쩍 가리키며 평소보다 큰 소리로 말했다.


“샘, 그럼 형우한테는 작은따옴표가 없네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내가 몇 초간 그 말의 의미를 되짚는 사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금시에 터졌다.


“세상에, 작은따옴표가 없는 아이라니. 너무 시끄러워. 그런데 너무 귀여워.”

나는 진영이의 센스있는 표현에 크게 감탄하며, 그 반의 가장 장난꾸러기인 형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신을 놀리는 말이라 해도 애정을 담은 장난임을 느낀 형우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던지 조금 빨개진 얼굴로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그날의 수업 이후로 ‘작은따옴표가 없는 형우’가 불시에 떠오르곤 했다. 부끄러운 날들일수록 고 작은 문장 부호를 눈앞에 두고 의식했다. 학원을 그만둔 뒤에도, 또 다른 학원에서 일하고,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에도. 내가 못난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을 참지 못하고 내뱉을 때면 어김없이 눈앞에 작은따옴표가 그려졌다. 조금 느슨하게 둥둥 떠 있는 나의 작은따옴표가…. ‘너 지금 작은따옴표 없다. 너는 귀엽지도 않다.’ 뭐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울리기도 했던 것 같다.


머릿속 문장들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나고 들기에 나쁘고 후진 ‘생각’까지를 단속하리라는 건 엄두도 못 낸 지 오래다. 그렇지만 그것을 내뱉어 버리는 건? 그건 좀 다른 문제다. 혼자 한 말이라 해도 내가 듣는다. 입으로 음성을 내는 순간, 단순한 소리가 아닌 그 의미의 형체는 물리적으로 내 공간에 변화를 가한다. 그러니 이미 뱉어버린 말은 오직 나 하나 청자인 상황에서도 작은따옴표가 붙지 못 하는 것. 혼잣말이라 해도 그것이 부정적일 때, 내게 좋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래, 생각을 어찌하지 못하면 긴장을 높여 나의 작은따옴표에 힘을 줘야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문장 부호는 문자 언어가 지닌 한계를 보완해 준다. 인쇄 매체가 널리 쓰이면서 문장 부호가 그저 서구에서 유입됐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우리만의 문장 부호가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조선 시대의 『훈민정음 해례』와 『용비어천가』는 물론이고, 고려 시대에 간행된 불경 『유가사지론』의 구결문에도 각종 부호가 쓰여 있는데, 『유가사지론』의 경우 부호와 문자의 중간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그 종류도 전체적으로 400개가 넘는다 한다. 우리 고유의 문자도 아닌 한자의 기능과 발음을 최대한 제대로 기록해 내려는 노력이 그 부호들에 담긴 것이다.


가끔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한마디를 하더라도 글로 쓴 듯 말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그런 마음 갖기엔, 난 이미 쓰는 것조차 말하듯이 쓰는 감당 불가의 지독한 말기계이지만. 붙들어야 할 생각들은 나의 작은따옴표 안에 오래 붙들고, 고르고, 정돈한 뒤에 고운 말들로 내보이고 싶다. 그래, 이것은 태도의 영역. 그 자리에 가만 서 보는 오늘이다.




국립국어원에서 2014년 12월 30일에 올린 『문장 부호 해설』의 42페이지에는 ‘작은따옴표’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다. 다음은 그 마지막 줄, 작은따옴표의 띄어쓰기를 옮겨 본다.


■ 작은따옴표의 띄어쓰기: 여는 작은따옴표는 뒷말에 붙여 쓰고, 닫는 작은따옴표는 앞말에 붙여 쓴다.


띄어쓰기를 그대로 서술한 것뿐인데 말의 앞뒤에 꼭 붙어 있을 작은따옴표의 모양새를 상상하면 제법 귀엽다. 싱거운 소리인가.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참고 문헌

고영근, 『우리 언어철학사』, 집문당,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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