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우연과 필연의 그 경계 어딘가를 지나며

by iinnocuous

작년 12월 중순, 리멤버라는 채용 플랫폼을 통해 면접 제안을 받게 되었다.

지금 회사보다 조금 더 나은 처우 조건과 입지를 가진 회사.

얼레 벌레 잡힌 면접 일정에 따라 익숙하지 않은 곳을 향해 아침 출근길을 나선다.

한 회사에 다닌 지 만으로 십 년, 어느덧 11년 차에 접어든 중견 사원.

과거 몇 번의 이직 과정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기억이 있지만 면접장에서 만큼은 이상하리 만큼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친다. 면접 시간 30분 전 도착해서 여유 있게 회사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찰나, 인사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 오전 열 시 면접이신데 자기소개서를 제출 안 해주셔서요"

아뿔싸. 리멤버에 자기소개서를 업로드해 놓은 줄 착각해 버린 나는 면접 일정 통지 메일에 첨부된 회사 자기소개서 양식을 보지 못한 채 면접장으로 향했던 것이다.


막연한 자신감에는 늘 대가가 따르는 법, 새롭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엔 빠듯한 시간.

타사에 지원했던 자기소개서를 통해 면접을 보는 촌극이 발생할 줄 대관절 누가 알았을까.


면접은 생각보다는 순탄했다. 네 명의 면접관과 장장 한 시간 동안의 면접. 회사의 수준만큼이나 날카롭고 핵심적인 질문들이 폐부를 찔렀다. 질문을 공격이라고 가정한다면, 일부 답변은 정공법으로, 일부 답변은 솔직함으로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면접이 끝나고 불편했던 것은 오로지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 한 내 마음뿐이었으니 말이다.


면접일로부터 이튿날이 채 지나지 않아 결과를 통보받게 되었다. 합격. 그토록 가고자 했던 회사들은 번번이 탈락했었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으면서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으쓱한 마음을 애써 억눌러보지만 조커처럼 터져 나오는 입가의 미소까지 숨겨지진 않았다.


처우도 생각한 것 이상으로 후하게 제안받았고, 경력도 전부 인정해 주었지만 이상하리만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십 년을 다닌 회사를 그깟 돈(?)때문에 매정하게 떠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아서라...)


최종 오퍼 거절 후 어떻게든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계속 합리화하고 있었다. 현 회사에서 연봉이 인상되었음에도 돈에 대한 목마름을 해갈하기에는 턱없이 아쉬운 금액. 이미 숙달되어 결코 야근이 필요 없는 업무 강도와 언제든지 협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인간관계 인프라를 고려하면 남아 있는 것도 괜찮겠지라는 알량한 생각들이 합리화라는 회로를 거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26년도 입춘이 지나고 얼추 현 회사에 남아 있을 마음을 다 잡아갈 무렵, 공교롭게도 또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한번 더 입사 제안을 해 온다. 지난번 보다 약간이나마 조정된 처우를 제시하며 말이다. 이번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가겠다고 답한다.


필연으로 가기 위해 말 못 할 우연이 그동안 겹겹이 쌓인 걸까. 홍상수 감독 김민희 주연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 제목이 불현듯 떠오른다.


퇴사를 결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직 의사를 표명하며 한분 한분 인사를 드렸다.

대 부분 사람들이 시쳇말로 입틀막까지 해가며 놀라움을 표출한다.


어떤 사람은 대체 어느 회사로 이직하는지 집요하게 물어보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냥저냥 마냥 축하한다고 말하고, 그 밖의 사람들은 부럽다고도 말한다. 어떤 말을 들어도 흡족하지 않았다.


어느 회사로 이직하는지가 궁금한 사람들은 그저 자기 호기심을 채우고 싶은 사람들로 여겨졌고, 축하한다고 해주는 사람들은 내가 이 회사에서 쓸모없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 또한 피상적인 축하로만 받아들여졌으며, 이직 사실에 너무 놀라는 사람은 내가 천년만년 이 회사 다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아 부아가 치밀었다.


십 년을 다닌 회사를 떠나는데 어쩜 하나 같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 해주는 사람이 없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생했다는 말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


이 얘기를 듣고 T스러운 친구는 그저 이제 너는 지나가는 행인 1이 되었으니 그들의 반응에 일희일비 의미 부여하지 말라고 한다.


어쩌면 십 년의 세월은 나에게만 의미가 있었나 싶었지만 비뚤어져 있던 것은 내 마음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이내 받아들인다. 그저 한 번만 더 무던하면 되었을 것을.


내가 나간다고 하니 그간 관계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여과 없이 드러 냈던 동료도, 별로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후하게 덕담을 남겨주는 동료도 이제는 각기 다른 의미로 모두 다 감사하게만 여겨졌다.


결국 모든 일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나 보다. 이토록 정교한 균형감을 유지한 채 말이다.

앞으로 마주할 새로운 십 년은 과거의 인간 굴레를 벗어나 지금 보다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로 인해 내 인생이 조금 더 찬란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에 기대 보려고 한다.


P.S 비슷한 시기에 내가 아끼는 동료 직원이 퇴사하여 퇴사 선물로는 다소 값 비싼(?) 선물을 했는데, 고스란히 비슷한 금액으로 내게 보답한다. 내 마음의 진의가 보상심리 정도로 퇴색된 것 같아 내심 서운함을 표했는데 그녀 왈, 매번 주시는 즐거움만 느끼시는 것 같아서 받는 즐거움도 느껴보라고 비슷한 금액대로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나 공평함의 감각이 비슷한 사람만 주변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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