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가면서 까지 지켜야 할 관계는 없었다.
올해는 유달리 인간관계에서 풍파가 많았던 한 해였다. 대운이 바뀌는 시점에 보통 인간관계가 정리되는데, 마침 병오년에 네 번째 대운을 맞이한다. 그래서인지 유달리 내 주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재조명하게 된다.
요새 인스타그램 보다 더 자주 들여다보는 SNS인 스레드에서 눈에 밟히는 글이 하나 있었다. 대략 팔로워가 천 명 조금 넘는 분이셨는데, 중학생 아들을 둔 작가분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대략적인 내용은, 중학생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당구장을 가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당구장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에 당구장을 가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푸념과 넋두리를 하던 상황.
그 상황을 보고 엄마 왈 "당구장 출입을 금지한 것은 맞지만 당구장을 가지 않은 것은 네 선택이지 않느냐 블라 블라"
뭐 여기 까지는 그저 사춘기 아들을 대하는 훈육 정도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들이 엄마 말을 듣고 다소간 고분고분 해 진 상황에서 아들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뉘앙스로 이야기하자, 엄마는 이제야 아들 눈에 악귀가 빠진 것 같아 조금 더 심도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글의 결론은, 엄마는 당구장에 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의지대로 당구장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이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취지로 마무리되었다.
글을 다 읽고 난 후 화자의 의도가 뻔히 보여서 약간 평소답지 않게 공격적으로 답글을 남겼다.
"당구장을 엄마 몰래 가도 혼나고,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하면 안 보내 주실 상황을 조성하고 아들이 집으로 바로 올 수밖에 없는 유일한 선택지를 남겨둔 채 그렇게 선택한 건 아들의 자의가 아니냐고 말하시는 건 전형적인 더블바인딩(이중 구속)으로 보인다. 어머님은 집으로 올 수밖에 없는 선택지만 만들어 놓고 그렇게 행동한 아들을 칭찬함으로써 아드님을 통제하고 계신 거다. 그리고 대체 어떤 부모가 당구장을 가지 못한 아들의 푸념을 두고 눈에 악귀가 씌었다고 말씀하시냐. 이 글은 전형적으로 통제성 강한 부모가 사춘기 아들을 천하의 몹쓸 장소인 당구장에 가지 못하게 만든 본인의 교육 방식을 은연중에 자랑하시는 글로 여겨진다"
나뿐만 아니라 이 글과 상황이 여럿 불편한 스레더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댓글 작성 후 며칠간 좋아요가 160개 가까이 눌린 뒤에야 해당 댓글에 대한 알림이 멈추었다.
내가 생면 부지 스레더의 글에 이 정도 수위의 댓글을 남긴 건, 찬란한 무채색 그녀가 더블바인드 화법(이중 구속)을 매우 능수 능란하게 구사했었고 이로 인해서 심리적으로 상당한 불편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대화 도중 A가 정답인 것 같은 뉘앙스를 흘린 후, 피해자가 A를 선택하면 B가 정답인데 왜 A를 골랐냐고 비난하고, B를 선택할 경우 A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 후 너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 라며 상대방에게 본인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투사한다.
시간이 흘러서야 그녀가 정말로 원했던 건 상대방을 내 뜻대로 쥐락펴락 흔든 후 그 상황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피해자에게 본인의 불안을 투사, 통제하는 방식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동시에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많이 엮일까라고 되짚어 보게 된다.
나는 비교적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웬만한 일들은 감싸주고 덮어 주고 이해해 주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믿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의 기본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회피형 애착 유형의 사람들과 나르시시스트들이 나를 대할 때 편안함을 느끼고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다른 인간관계에 비해서 빠르게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의 상처는, 맞았던 순간보다 맞았다는 걸 자각한 순간이 뼈아프다.
편하게 대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제라도 인간관계에서 심리적, 물리적 경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외려 건강한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올 한 해 얻게 된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가오는 2026년에는 더 이상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조금 더 불편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다.
P.S 찬란한 무채색의 그녀가 앞으로 내 글에 등장하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사요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