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자각 사이의 이동
통계청의 <국내인구이동통계>(2023년)를 보면,
수도권 유입은 여전히 우세하지만 동시에 20~30대의 지방 전입 인구 비율이 미세하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비수도권 소재 청년 귀환 프로젝트와 자치단체 기반 정착 지원 사업의 수는 최근 5년간 두 배 이상 확대되었다.
단지 숫자의 변화가 아니다.
이동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지방으로 향하는 청년들은 단순히 떠밀린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조건을 다시 생각한 사람들이다.
청년실업률은 최근 5년간 8% 내외를 유지하고 있지만,
체감실업률(취업준비·포기자 포함)은 23% 이상에 이른다.
고용이 존재하더라도, 짧은 계약, 낮은 임금, 성장의 불확실성은 일상적인 문제다.
청년들은 단순한 고용 여부를 넘어, 자신이 삶의 한 시기를 보낼 수 있는 일인가를 묻고 있다.
서울에 남는 것이 절대적 기회인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청년 생활 실태 조사’(2023년)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의 월평균 순수지출은 약 180만 원.
그중 주거비(전세·월세 포함)가 36%, 식비와 교통비가 25%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같은 연령대의 평균 소득은 220만 원 전후(국세청, 2023년 기준)에 머무르고 있어,
실제로는 한 달이 끝나면 남는 돈이 10만 원 이하라는 청년도 적지 않다.
‘월급은 통장을 스치고 간다’는 표현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수도권의 생활비 압박은 일종의 '심리적 한계선'이다
서울 평균 월세는 2024년 기준 65~80만 원 수준 (KB부동산)
1인 청년가구의 월평균 식비는 약 42만 원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교통비, 통신비, 고정 구독료 등을 합치면 매달 고정비는 140만 원을 넘는다
이처럼 지출이 소득을 초과하거나 근접하면, 청년은 생활뿐 아니라 장기적 선택의 여지를 잃는다.
실제 2023년 서울청년활동지원센터의 조사에서는 서울 거주 청년의 72.3%가 ‘주거 비용 부담으로 장기 계획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말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삶의 기획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압박이 있다는 뜻이다.
지방에서의 생활은 ‘소득’보다 ‘지출’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지방으로 이동한 청년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월 소득은 다소 줄었지만, 총 고정지출이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경우가 많다.
경북 영주의 경우, 1인 가구 기준 월세 20만 원 내외
전남 순천 지역, 고시원이나 셰어하우스 형태로 15만 원 이하 주거 가능
일부 자치단체는 전입 청년에게 월세를 1년간 무상 지원하거나 기숙형 주거 제공
서울에서 1년에 1천만 원 가까이 지출되던 주거비가 지방에서는 3~400만 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 차이는 곧바로 창업 준비, 교육 투자, 생활 여유, 건강 회복 등으로 전환된다.
“수익은 줄었지만, 덜 불안하다”
이 문장은 지방으로 간 청년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월급의 액수보다 중요한 것은 '안정된 지출 패턴'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체감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불안정한 고용 + 높은 고정비 → 심리적 피로 + 경제적 마비 → 장기계획 포기]라는 루트가 반복된다면,
지방에서는
[낮은 고정비 + 비교적 유연한 시간 → 심리적 여유 + 다양한 실험]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런 전환은 단지 '돈을 덜 쓰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삶을 운영하는 방식'에 대한 회복이기도 하다.
지방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선택이 단순히 경제적 곤궁의 결과라고 보는 것은 지금의 흐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의 보편화, 도시생활에 대한 피로, 그리고 정신적 소진에 대한 집단적 인식 변화가 맞물리며 삶의 방식 자체를 다시 묻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왜 지금 이 도시에 살아야 하지?”
서울연구원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거주 청년의 58.1%가 '지역 이동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는 '주거비 부담'(46.3%) 다음으로 '삶의 질 개선'(27.8%)과 '자기 시간 확보'(13.9%)가 꼽혔다.
이는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구성 요소를 스스로 선택하려는 시도다.
도시의 속도에 맞춰 살아야만 하는가
직장 중심의 시간 운영이 내 삶에 맞는가
소득이 곧 자존감이 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수도권에서 피로를 경험한 청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이직 사유가 아니라, 거주지 재설정의 사유로 이동하고 있다.
“결정을 바꾼 게 아니라, 질문을 바꾼 것”
지방으로 간 청년들은 말한다.
“어디에 살아야 할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먼저 고민했어요.”
“지금까지는 선택지가 없었다는 걸, 내려와서 알았어요.”
이전에는 도시 중심의 삶이 유일한 옵션이었던 반면, 이제는 지방이라는 공간이 삶을 다시 설계해 볼 수 있는 '재량의 여백'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여백은 단지 경제적인 조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허용하는 환경에서만 발생한다.
지방이 꼭 이상적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청년들에게는 '다른 질문을 허락하는 첫 번째 장소'일 수 있다.
청년들이 지방으로 향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선택을 ‘돌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실제 그 움직임은 회귀가 아니라, 재배치(repositioning)에 가깝다.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개념을 넘어서, 삶을 다시 배분하고, 시간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이전에는 교육, 취업, 결혼 등 삶의 순차적 단계가 도시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청년 스스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배열하고 있다.
지방은 과거가 아니라, 가능성의 프레임이다
많은 청년들이 선택한 지역은 가족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복잡하지 않은 일상, 실험할 수 있는 틈, 그리고 자기 확신을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지방은 더 이상 고향이라는 정체성만으로 선택되지 않는다.
청년들은 그 공간을
비용이 낮은 공간
시간이 넉넉한 공간
소속되지 않아도 기능할 수 있는 공간
으로 인식한다.
이동의 대상은 ‘장소’가 아니라, 삶의 조건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지방으로 향하는 청년들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이제 단일한 흐름도, 단일한 배경도 아니다.
현실의 압박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고
삶의 자각은 새로운 방식의 거주와 노동, 관계를 요구한다.
이제 우리는 지방이라는 공간을 이탈의 결과가 아닌, 선택의 전환지로 볼 필요가 있다.
지방은 이상적인 낙원이 아니다.
그러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더 다양하게 허용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청년들의 새로운 생활 기반이 될 수 있다. 그 전환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판단이 아니라 이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