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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특화 창업, 지역 특화 투자

지역 기업에 맞는 투자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이유

by 이니프


지역에서 창업과 기업 성장을 들여다보다 보면,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투자받는 게 가장 좋을까?”


많은 로컬 비즈니스는 이미 일정 수준의 매출과 고객,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라는 단어 앞에서는 여전히 한 발 물러선다.

“우리는 VC 모델에 안 맞는데요.”

“투자를 받으면 지분을 너무 많이 내줘야 하지 않나요?”

“상장이나 M&A 계획은 없는데, 그래도 투자 얘기를 꺼내도 되는 걸까요?”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건,
“지역 특화 창업 및 기업에 맞는 투자 구조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창업 자체보다는, 이제 “자본과 회수의 언어” 쪽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1. VC 모델의 전제를 잠깐만 정리해 보자

먼저,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VC(벤처캐피털)식 투자 모델은 몇 가지 강한 전제를 갖고 있다.

고속 성장 – 짧은 기간 안에 매출·사용자 수·거래액이 급격히 늘어나는 전제

대규모 시장 – “충분히 큰 시장(TAM)”을 전제로 전체 파이를 키우는 전략

후속 라운드·엑시트 – 다음 투자, 상장, M&A 같은 이벤트를 통한 회수 구조


그래프를 그려보면 익숙한 J커브(J-curve)가 나온다.
오랫동안 적자를 감수하며 성장에만 돈을 쓰다가, 어느 순간 지표가 폭발적으로 튀어 오르는 그림이다.


이 전제를 공유하는 한, 투자자는 “현재의 재무제표”보다
“향후 5~10년 뒤의 성장 스토리와 밸류에이션”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이 프레임은 테크 스타트업, 플랫폼, 네트워크 효과 기반 서비스에는 매우 잘 맞는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묻고 싶은 질문은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이 프레임을 로컬 식품 브랜드,
작은 제조업, 가업 승계형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맞을까?”




2. 지역 기업의 특성은 다르다, 그래서 재무 구조도 다르다

여기서는 아주 간단히, 투자 관점에서 중요한 특성만 짚어보자.

많은 로컬 비즈니스는 아래 네 가지 특징을 함께 갖고 있다.

초기 자산이 이미 존재한다
토지, 공장, 시설, 레시피, 브랜드 히스토리, 단골 고객 등 “아이디어만 있는 pre-revenue” 상태가 아니라, 몸을 가진 상태에서 시작한다.

현금 흐름이 비교적 빨리 나온다
생활권·단골·지역 납품 등 덕분에 초기부터 매출이 찍힌다. 장기간 적자를 보며 ‘버티는’ 구조와는 다르다.

성장은 고속이 아니라 ‘계단식’이다
온라인 진출, B2B 계약, 설비 증설, 팝업·유통 입점 등의 이벤트가 있을 때 매출이 계단처럼 한 단계씩 올라간다.

엑시트보다는 존속·세대승계가 더 중요하다
목표가 “10년 안에 기업 매각”이 아니라 “지역에서 오래 버티고, 다음 세대로도 이어지는 것”인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을 VC 프레임에 그대로 얹으면, 대부분 이렇게 평가된다.

“시장 크기가 작다.”

“성장 속도가 느리다.”

“엑시트 그림이 불명확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리스크 구조와 현금 흐름을 고려하면 꽤 매력적인 자산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기준을 바꿔야 한다.
“VC식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현금 흐름과 자산, 존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보는 투자 구조가 필요하다.




3. 투자 구조를 보는 새로운 좌표: ‘시점’과 ‘기준’

지역 기업에 맞는 투자 방식을 고민할 때, 보통 두 개의 축으로 나눠서 본다.

시점 축 – 초기 단계 vs. 중기 확장 단계

기준 축 – 지분 중심 vs. 현금 흐름 중심

이걸 2×2 매트릭스로 그리면 대략 이런 구조가 된다.

① 초기 × 지분 중심
우리가 익숙한 시드/프리A 라운드 형태 아이디어 단계
또는 매우 초기 상태에 지분을 많이 주고 투자받는 구조

② 중기 × 지분 중심
일정 매출과 사업 구조가 검증된 후, 설비 확장·사업 다각화 등을 위해 전략적 지분 투자를 받는 구조

③ 초기 × 현금 흐름 중심
소규모 대출, 가족·로컬 파트너의 브릿지 자금 등 “지분보다는 상환” 관점의 안전한 자금

④ 중기 × 현금 흐름 중심
배당, 매출 연동, 프로젝트 파이낸싱, 로열티 등 “회사가 잘 벌면 같이 벌고, 못 벌면 같이 줄이는” 구조


로컬 비즈니스에서 우리가 특히 더 고민해봐야 하는 건
③·④, 특히 ‘중기 × 현금 흐름 중심’ 구간이다.


왜냐하면, 많은 지역 기업이 이미 ③ 구간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자산, 가업, 은행 대출, 가족 자본, 자가 공장 등으로 버틴다.

문제이자 기회는 “확장하고 싶은데, 그 구간을 도와줄 자본이 잘 없다”는 데 있다.
바로 여기에 새로운 투자 구조를 설계할 여지가 생긴다.




4. 배당 기반 투자와 Revenue-Based Financing

첫 번째로 살펴볼 만한 건,
“밸류에이션이 아니라 이익과 매출을 기준으로 회수 구조를 짜는 방식”이다.


4-1. 배당 기반 투자(Dividend-based Investment)

투자자는 지분을 일부 받는다. 그러나 회수는 엑시트가 아니라 정기적인 배당을 통해 이뤄진다. 기업은 매년 또는 반기별로 이익의 일정 비율을 투자자에게 배당한다.


언제 잘 맞을까?

이미 안정적인 매출과 마진이 있고,

빠른 성장보다는 “꾸준한 현금 창출”이 강점인 로컬 식품·제조·서비스 기업.


장점

엑시트 불확실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상장 계획이 없다”는 기업도 투자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지분을 많이 내주지 않고, 장기 동반자 관계를 만들 수 있다.


4-2. 매출 기반 자금 조달(Revenue-Based Financing, RBF) 지분을 내주지 않고, 매출의 일정 비율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구조다. 예를 들면, “투자금 회수까지 향후 매출의 3%를 지급” 같은 식이다.

매출이 늘면 투자자도 더 빨리 회수하고, 매출이 줄면 같이 속도가 줄어든다.


언제 잘 맞을까?

매출은 꾸준히 나오지만, 밸류에이션을 어떻게 책정해야 할지 애매한 경우

온라인 마케팅, 설비 증설, 신규 채널 입점 등 매출과 직결되는 확장 구간에 자본이 필요한 경우


장점

지분 희석 없이도 성장 자본을 넣을 수 있다.

투자자와 창업자가 “매출”이라는 같은 지표를 바라보게 된다.

상장이나 M&A 같은 이벤트가 필요 없다.




5. 프로젝트·로열티·혼합형 구조: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조금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투자를 “회사 전체”가 아니라 “특정 프로젝트와 라인”에만 연결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5-1. 프로젝트 기반 투자(Project-based)

설비 보강, 브랜드 리뉴얼, 팝업 스토어, 신규 라인 출시 등
명확한 시작과 끝이 있는 프로젝트에만 투자한다. 투자자는 프로젝트로 발생한 매출·이익 또는 절감된 비용을 기준으로 회수한다.


장점

기간과 목적이 뚜렷해서, 회수 구조 설계가 쉽다.

회사 전체를 건 “큰 투자”가 아니라, “이 확장 한 번만 같이 하자”는 식의 작은 실험이 가능하다.


5-2. 로열티 기반 투자(Royalty Model)

특정 브랜드나 제품 라인 매출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지급하는 구조다.

예를 들면, “신규 브랜드 X 매출의 5%를 3년간 로열티로 지급” 같은 형태다.


언제 잘 맞을까?

기존 사업은 안정적이고, 신규 브랜드·제품 라인을 실험하고 싶을 때

브랜딩·기획·마케팅 파트너가 직접 리스크를 함께 지고, 로열티로 성과를 나누고 싶을 때


5-3. 지분 + 현금 흐름의 혼합형

현장에서는 순수한 한 가지 모델만 쓰기보다는,
작은 지분 + 매출 연동 + 프로젝트 회수를 섞어 쓰는 경우가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조합이다.

소액 지분(예: 5% 미만)
+ 특정 기간 동안 매출의 일부를 RBF 방식으로 회수
+ 신규 라인 성공 시 로열티 일부 설정


이렇게 설계하면,

기업 입장에선 지분 희석을 최소화하면서도

투자자에게는 합리적인 회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상장/매각”이라는 거대한 이벤트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6. 지역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역할: ‘판례’를 만드는 것


“좋은 구조가 무엇인지”가 아직 이론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는, 실제로 구조를 만들고, 적용해 보고, 그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엔젤 투자자, 소셜 펀드, 지자체, 공공기관,
그리고 우리 같은 중간지원 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지분만이 답이 아니다”라는 주장 공유하기
보고서·세미나·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구조를 소개하고,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선택지를 보여주는 일.

작은 규모라도 실제 사례(판례)를 만드는 것
한두 기업이라도, 배당·RBF·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실제로 설계해 보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나누는 것.

기업과 투자자를 함께 설계 테이블에 앉히기
“완성된 상품으로써의 투자 계약”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리스크와 목표를 듣고 함께 구조를 만들어보는 과정을 운영하는 것.


로컬 비즈니스에 맞는 투자 구조는 어디선가 정답이 떨어져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하나씩 실험하고 축적해 가야 하는 것에 가깝다.


“투자 = 지분”이라는 문장을 잠시 내려놓고

지역에서 기업을 보다 보면, “투자받기 어렵다”는 말 뒤에는 종종 이런 반전이 숨어 있다.

이미 자산이 있고,

매출이 나오고,

마을과 고객들이 지지하고,

다만 수도권 VC 프레임에 잘 맞지 않을 뿐인, 꽤 괜찮은 사업들.


이제는 “투자 = 지분”이라는 문장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해 볼 때라고 느낀다.

어떤 현금 흐름을 함께 나눌 것인지,

어떤 시점의 확장을 함께 도울 것인지,

어떤 리스크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기준으로,


지역 기업과 투자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
아마 그 지점에서, “지역에 특화된 창업에 맞는 투자 방안”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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