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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 Dec 29. 2020

완벽해지려고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처음에는 참 열심히도 남겼다. 브런치 작가 되었다는 기쁨과 좋은 글을 많이 써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각오와 함께 인스타 메인에 브런치 주소를 남겼다.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글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뭔가를 하면 꾸준히 성실히 해내는 나의 장점이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부담과 끊임없이 숙제를 주었다.  숙제를 해내면 행복하고 성취했다는 기쁨이 좋았다.

 


처음에는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 접해보는 것들이 신기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궁금했다. 수학의 정석 책을 처음 풀 때 그 앞장만 시컴해지는 것처럼, 모든 일도 마찬가지였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이웃이 늘어나는 게 정말 재밌었다. 내가 무슨 말만 남겨도 응원과 댓글을 달아주는 이웃들이 있어서 동기부여가 저절로 되었다. 블로그를 어떻게 하면 예쁘게 꾸밀 수 있을지, 더 많은 사람이 내 블로그를 와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까막눈에서 벗어날수록 재미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브런치와 마찬가지도 블로그도 시시해졌다. 1일 1포스팅을 하면서 글도 많이 늘었지만, 하루에 하나씩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게 귀찮고 부담스러워졌다. 처음 배울 때는 이거 잘 배워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줘야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지식의 저주에 갇혀버렸다.


이거 누구나 해, 다 아는 내용이야.


이 생각에 드는 순간. 나는 블로그가 하기 싫어졌다. 한번 결석하면 어차피 정근이니까 그 이후 수업을 빠져도 되겠구나 하는 안일한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퇴근 후 열심히 작성했던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원고도 투고 실패 후 더 느슨해졌다.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놔버렸다. 아무 곳에도 글을 남기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완벽해지고 싶어서, 내 결점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실수를 보이기 싫었다. 어느 일이나 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알아가는 건데, 그걸 깨뜨리는 게 어려웠다. 머릿속으로는 너무나 잘 아는 거지만 나에게 적용하는 게 힘들었다. 처음부터 완벽히 하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왜? 글을 보는 사람들은 내가 실수가 없는 사람으로 알 테니까. 그리고 실수가 드러나면 비난할 테니까. 딩동댕.


아. 결국은 타인에 대한 비난이 두려웠구나.

타인에 대한 비난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의 허상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은 그 누구도 나를 욕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글 참 거지같이 쓰네요. 이런 말 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니멀 라이프로 살아가니까 이렇게 살아야 해 이런 강박관념을 준 것도 타인이 아닌 나였다. 이 정도의 목표를 달성해야만 책을 쓸 수 있는 거야. 그 정도는 돼야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거지. 이런 생각과 말을 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 자신에게 쏟아 뱉고 있었던 말이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지?


완벽해지려고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에 맞서 행동하면 된다. 이 망할, 완벽해지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몇 달간을 브런치에 글을 못썼다. 고상하고 도도하게 써야 할 것 같은,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이어야 할 것 같은 이미지 때문에 말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엄청나게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미니멀리스트도 아니고. 미치겠는 거지. 나의 가치관 중에 최우선이 항상 "정직"이었다. 정직이라는 가치관에 부딪힐 때마다 완벽해 보이려고 하는 순간이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오점을 인정하기 싫었고, 숨게 만들었다.


하고 싶지만 끊임없이 주저하게 만드는 생각과 해야 한다는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냥 하는 거다.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해보는 게 방법이다. 그래서 오늘 브런치에 그냥 남겨본다. 뭐 어때. 미니멀 라이프로 완벽하게 못살아도 미니멀 라이프를 좋아하고 느낀 점을 쓰는 게. 오늘의 비움은 완벽해지려는 마음이다. 앞으로 완벽하게 안 쓸 거다. 부족한 대로 쓰고 고쳐나가면서 써나갈 것이다. 주저하다가 아무것도 못한 채 괴로워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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