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지역신문은 풀뿌리 민주주의 초석이자 마지막 보루이다.
#1.‘옥천신문 모델’이 중요하다. 구독료가 신문사 재정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언론사가 특정수익사업을 하지 않으며, 노사동수 이사제를 구성하며 노동조합이 신문사의 상당수 주식을 갖고 있어 오직 저널리즘만으로만 먹고 살 수 있는 언론사의 존재는 한국 언론사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다만, 이런 언론사가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복제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유무형의 가치가 탑재된 언론사가 여러 개 만들어져야 흐름이 될 수 있다. 옥천신문이 홀로 ‘독야청청’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언론사를 여러 개 만드는 데 일조해 ‘더불어 숲’이 되어야 한다. 학계에서 여러 번 들었던 조언이다. 옥천신문이 더 이상 특별한 언론의 존재가 되는 이상 그 프레임에 갇힐 수 밖에 없고, 보편타당한 언론이 되려면 한걸음 더 내디뎌야 한다. 유무형의 가치를 전파해야 하고, 그런 언론사가 하나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점이 아니라 선으로 존재할 수 있고, 면이 될 수 있다. 입첵성을 띄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
#2.‘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다 망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본과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기사가 수없이 거래되는 현장을 ‘현실과 다르다’는 말로 현업 언론인에게 하도 듣다보니 일부 의식 있는 교수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옥천신문은 여러모로 귀한 언론이 되었다. 실제 그랬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했다고. 재수 없는 말일지 모르겠으나 학교에서 배운 언론의 가치, 저널리즘의 의미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다 망한다고 아카데미의 저널리즘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의 현실에 대한 합리화를 누군가는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저널리즘만으로 시장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뼈저리게 알고 있지만, 그걸 넘어서서, 그것과 무관하게 가는 언론의 길이란 존재하면 안 된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다.
#3.1995년 지역자치가 시작되고 나서 지역언론의 존재는 그 필요성이 너무나 커졌다. 인구 5만도 안 되는 지차체가 부릴 수 있는 예산이 6천억원 이상 되니 이 많은 돈이 어떻게 제대로 쓰여지는 지 선출진 관료들과 행정직 관료들의 끊임없이 감시, 비판, 견제하지 않으면 지역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30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목도해왔다. 지역 소멸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자치라는 제도를 악용하고 주민들의 삶을 갉아먹으며 무언가를 축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건겅한 풀뿌리언론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가시적인 성과 뿐만 아니라 들여다보면 엄청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건강한 지역언론은 그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보루라고 오랫동안 강변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역사회, 손에 잡히지 않는 지역공동체를 매주 발행하는 지면 공론장에서 눈에 보이게 하고, 손에 잡히게 하는 실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이다.
#4.사실 옥천신문도 어렵다. 이건 진짜다. 대표 노동자로서 정말 한 달 벌어 어렵게 빚 충당해 하루하루를 어렵게 건사한다. 땀 흘리는 노동자들 가치 헛되이 하지 않게 하려고 월급 안 밀리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5만도 안 되는 지역 농촌에서 13명의 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지역언론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구 감소로 구독 해지 사유가 ‘사망’과 ‘전출’인 경우가 많다. 그런 가운데 구독자 중심의 월 1만원짜리 유료콘텐츠 온오프라인 매체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럼에도 제보와 민원은 끊이지 않고 기자들은 주민들의 삶 현장 속으로 깊숙하게 한발자국 내딛고 있다. 배운대로 익힌대로 저널리즘으로 무장하며 사안마다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는 곳이 삶터와 일터와 동일하다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밀착에는 그만한 것이 없지만, 일상에서 매번 마주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는 것이 일을 벗어나 삶의 스트레스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유리상자에 있는 것 같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말의 무게가 다르다. 그럼에도 옥천신문의 존재이유는 주민들이 만들어가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는 옥천신문을 학수고대하고, 옥천신문에 줄 광고를 내고, 기사를 읽고 직접 행동을 하고, 지역사회의 꿈틀거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5.이런 옥천신문을 다른 지역에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늘 과제와 책무로 다가왔다. 2년 전 그래서 인근 영동군에 가서 오지랖 넓게 지역 사회단체 모여 놓고 무료 강좌를 두어번 했던 것도 그런 바람의 실천 때문이었다. ‘여러분들이 하겠다면 적극 도와드릴께요. 30년 간의 노하우를 전수해드리겠습니다.’고 말하고 구체적인 실천방법까지 알려드렸다. 그 이후 전교조와 농민회, 노조 등을 중심으로 후원회원을 모으고 실행을 하려고 준비 중이란 이야기를 들었지만,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주 활동을 하려 했던 사람이 여차저차한 이유로 빠지면서 어그러진 것으로 들었다. 그런 시도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사람 한 두명이라고 지역신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이고 비판적 기사를 쓰느냐 보도자료만 베껴쓰느냐의 차이도 매우 크다. 정치권에서 관료조직에서 언론사를 의식하느냐 의식하지 않느냐는 중대 사고를 치느냐 안 치느냐 만큼 크다. 누군가 감시와 비판의 눈길을 또렷하게 주고 있다면 아무래도 사고를 덜 치게 되는 법이다. 그것은 고스란히 공공의 이익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말도 안 되는 부조리와 부패도, 구태와 무능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면 그래도 되는 줄 안다. 수십, 수백억원의 예산낭비 사례가 있어도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이 있어도 아무도 뭐라 안 하고, 뭐라 해도 바뀌지 않으니까. 외려 뭐라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괜한 욕을 들으니까. 다수의 침묵으로 구태와 무능, 부패와 부조리로 얼룩진 지자체가 브레이크 없이 무작정 가는 것을 자주 목도해왔다. 인근 영동에서 사실 제보가 많이 왔었다. 그런데 그어놓은 행정구역 넘어서기가 쉽지 않더라. 일회성으로 보도할 수가 없고 계속 지속보도를 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옥천 일만 기사 쓸 일이 수두룩한데 감히 넘어서다보면 집토끼도 못 잡고, 산토끼도 아쉬울 공산이 크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미련과 아쉬움은 길게 남았다.
#6.그러다가 지역의 ‘미디어플랜’을 구상하고 실현하면서 이 생각이 발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디어플랜의 세가지 구성, 매체별 균형, 세대별 균형, 지역별 균형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다가 매체별 균형으로는 생활정보지(오크지)와 잡지(월간 옥이네), 신문(옥천신문)을 실천하면서 음성, 영상매체로 옥천FM공동체라디오를 만드는 시도까지 하던 차였고, 세대별 균형으로는 청소년기자단에 이어 노인기자단을 복지관과 협업하여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마지막 과제인 지역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옥천의 변방인 청산청성면에 ‘청산별곡’이라는 주간지를 런칭하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청산, 청성면은 옥천읍에서 자동차로 40분이나 가야 할 정도로 떨어진 변방이었다. 청산 청성 주민들의 생활권은 옥천이 아니라 영동과 보은이었다. 마을 신문으로 시작하다가 생활권에 인접한 소식을 하나둘 담다보니 봉보은, 영동까지 담아내는 신문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8월 창간한 청산별곡은 4개월을 지난 2023년 1월에 옥천, 보은, 영동을 커버하는 충북 남부지역 3개 군을 담당하는 주간신문으로 거듭났고, 옥천저널리즘스쿨을 아예 청산면으로 옮겼다. 청산면에 신축빌라 3채를 임대하고 9개실을 얻어 2주부터 3개월까지 저널리즘스쿨로 운영했다. 지리적으로 청산면은 옥천, 보은, 영동의 중심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행정구역인 옥천읍과 가장 멀면서 지역 소멸의 길에 가장 가까워져 있었다. 엣 청산군이었던 위용은 온데간데 없고 인구도 확 줄어서 3천명도 안 되었고 초등학교 학생 수는 지난해 30명에 이어 올해 23명으로 확 줄게 되었다. 중심은 가장 약하고 아프고 힘든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아래 청산면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저널리즘의 씨앗을 뿌렸다. 사단법인 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라는 비영리법인을 만들고 본사를 청산으로 옮기고 숙소를 만들어 청산에 젊은 청년을 유입시켰다. 옥천저널리즘스쿨 중기과정 인턴들은 영동팀, 보은팀으로 구분하고 3명이 한 팀이 되어 아침에는 영동/보은으로 각기 출근했고, 별의별 이주기자로 단기 2주체험 팀은 청산, 청성면의 소식을 다루는 것으로 구분지어 운영했다. 저녁에는 같이 청산별곡이란 공간에 모여 같이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7.청산별곡이 2023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발간하고 나서 많은 단독과 특종을 썼다. 보도자료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일간지 주재기자들과 생활정보지는 감히 쓰지 못하는 기사들을 매주 쏟아냈다. 매곡면 백린탄 불법 소각 기사부터 집회시위까지 썼고, 유성기업노조 10년의 싸움을 기획기사로 작성했고, ‘면장실을 없앤 영동군, 엘리베이터 설치한 보은군’으로 면사무소의 혁신을 기사화했으며, 담당 국장이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음에도 참여해 과거 임원으로 있었던 복지법인을 밀어줬던 ‘노인맞춤돌봄서비스사업 엉터리 행정’ 도마위 기사로 작성해 영동군 노인복지를 비판했다. 이어지는 기사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업 논란과 관련해 영동군이 침묵하자, 재가센터협의회는 본격 시위에 나섰고, 이를 보도하는 신문도 청산별곡이 유일했다. 또한 영동시니어클럽 대표가 본인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재가센터가 건보공단에서 부당이득으로 8천여 만원 환수 결정된 것도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는 ‘영동시니어클럽 대표 도덕성 논란 도마위’리고 기사가 나갔고, 이후 해당 대표가 관장으로 셀프 추천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도 연이어 ‘시니어클럽 사태 악화일로, 대표가 관장 셀프 추천’으로 보도했다. 용산면 2차 산단 조성 관련해서도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비중있게 다뤘고, ‘코로나 빗장 풀리자, 실속없는 군의원 해외연수도 재개’라는 기사도 다뤄서 의원들의 외유성 인사에 대해 질타했다. 영동새마을금과 무자격자 선거로 무효화 기사도 뒤어 경찰 고소 내용도 상세하게 쓴 것은 청산별곡이 유일했다. 이처럼 짧은 시기에 인턴기자들과 고군분투하며 지역의 기사를 빼곡하게 써 왔다. 제보와 민원이 물밀 듯이 밀려왔으며, 이를 기사화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