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옥천FM공동체라디오 개국을 하다
#1.라디오 꽃이 피었습니다. 30여 년 동안 옥천신문이 일구어 놓았던 유기농 땅 흙더미 속에서 라디오 꽃이 슬그머니 피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 놀이터가 생겼습니다. 감춰두었던 삭혀두었던 끼들이 순식간에 대방출되었습니다. 도대체 어찌 이렇게 꼭꼭 누르고 살았을까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라디오 하는 날만 기다립니다. 그렇게 무궁무진하게 할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요? 말과 이야기 뿐이 아닙니다. 시낭송도, 동화구연도, 또 노래도, 책, 영화이야기도 도무지 하고 싶은 것 투성입니다. 지난 3월 부터 본격 준비한 공동체라디오, 준비하면서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공모서류를 다 만들다 보니 책 한권이 얼추 되더군요. 말 만드는 거야 모여서 이야기하면 어떻게든 만들겠지만, 전파와 기술적인 부분은 도저히 감내할 수 없었습니다. 운영과 내용만 생각했지 송신기와 주파수, 전계강도 등 어려운 용어들은 머릿속이 핑핑 돌 지경이었죠. 까마득한 17년 선배인 관악과 광주FM에서 막내동생에게 공부 가르쳐주듯 성심성의껏 하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거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구나. 환상과 로망은 현실과 맞부닥쳤을 때 와장창 깨지기 마련입니다. 3월부터 7월까지 무려 4개월 동안 법인을 만들고, 서류 작업을 보완하고 또 수정하는 작업을 정말 피 마르게 했습니다. 몇 억이나 몇 천만원이 지원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지원없이 공중파 주파수 하나 얻는 것이 이리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돈을 더 썼지요. 방송통신위원회에 가서 날카로운 면접 심사를 본 후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FM주파수 104.9Mhz를 얻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하늘이 날아갈 듯 했죠.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예측했던 예산은 충분히 초과했습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이래저래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리모델링 공사와 장비구입에 돌입하기 시작했죠. 5천만원이면 될 줄 알았던 비용은 공사를 하면 할 수록 장비를 구입하면 구입할수록 더 추가되기 시작했습니다. 공사를 하면서도 장비를 구입하면서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이거 어떡하나. 시작도 하기 전에 빚더미에 깔려 죽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그래서 기부자의 벽을 1층에 만들었습니다. 하나둘 이름이 걸렸습니다. 만원부터 1천만원까지. 기부금의 액수와 상관없이 똑같이 명판을 걸었습니다. 그 마음은 다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무려 1억3천만원이 모였습니다. 조그만한 옥천 지역 사회에서 사실 어마어마한 돈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놀랐습니다. 정말 고마웠지요. 하지만, 아직도 갚지 못한 공사대금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뜻을 알리고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이 모아졌으니 곧 해결되리라 낙관하고 있습니다.
#2.사실 욕심을 부렸습니다. 올해 꼭 개국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옥천군 군북면 비야리 출신 우리나라 언론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청암 송건호 선생의 기일에 꼭 개국하고 싶었습니다. 큰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지도 몰랐고 그 뜻을 지역에서 다시 잇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12월21일 개국일을 그렇게 딱 못 박아놓고 외통수로 직진했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좌우 살필 겨를 없이 무대뽀로 진군한 것이지요. 11월 초순에 공사가 끝났고 11월 중순에 장비 세팅이 완료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 하루 6시간 이상 방송의 콘텐츠를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버쩍버쩍 들었지만, 왠지 모를 자신이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지역신문 기자 하면서 만났던 취재원들의 재능들이 하나둘 떠올랐던 것입니다. 머릿속에 명단이 쭈르르 만들어졌습니다. 입담이 좋은 사람, 콘텐츠가 무궁무진한 사람, 다양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 하나둘 제안을 했고 옥천신문을 통해 마을방송활동가를 모집했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믿고 있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지요. 순식간에 진행됐습니다. 정말 속성으로 관악FM에 기술과 사용법을 익혔고 옥천저널리즘스쿨에 동문수학하고 있었던 인력 8명을 긴급 투입했습니다. 2년 동안 옥천신문 인턴 생활을 하면서 방송에 대한 꿈을 꾸었던 토박이 청년 이해수 편성국장이 중심을 든든하게 잡고 있었구요. 옥천신문 역사의 산 증인인 오한흥 대표가 자리를 옮겨 라디오 전반에 걸쳐 운영에 대한 책임을 졌구요. 민주화운동 유공자이자, 교동식품 대표인 김병국 이사장이 든든하게 받쳐주었습니다. 고래실 이범석 대표는 공모와 운영, 회계 전반의 것을 코칭을 해줬구요. 여러 사람들이 오랫동안 관계속에 만들어진 신뢰의 합으로 공동체라디오가 드디어 세상밖으로 성큼 나오게 된 것이지요. 2층 라디오 방송국만 생각했다가 3층 청암미디어센터까지 상상의 나래는 무작정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장애인접근권을 고려하여 옥천신문 1층 회의실을 5스튜디오로 긴급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없었지만, 진행하면서 계속 마음과 말을 모아 하나둘 진행했습니다.
#3.우리는 녹음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은 방송이니까요. 사람을 모았고 만나서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담당피디를 정했고 마을방송활동가가 혼자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 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어설프고 엉성하지만, 그래도 짜임새있게 준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큐시트와 대본을 쓰고 방송을 했습니다. 시내에서 철물점 운영하는 60대 중반의 강영선씨는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시낭송을 뽐냈고, 옥천읍 수북리에서 북두칠성을 운영하는 송명석 대표는 초로에 맛을 들인 버스킹을 라디오에서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옥천읍 대천리의 명가수 박해열씨도 1930년 대 노래도 부르면서 관록의 노래실력을 보여주었구요. 옥천의 대표 맛집을 찾아다니는 30대 청년 김경식씨는 '찾아라 맛도둑'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옥천 식도락의 대가임을 증명했죠. 청성면 산계리의 아자학교의 고갑준 교장은 특유의 말발로 매회 초대손님을 초청해 '아자쌤과 놀다보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멀리 옥천 출향인인 예산 광시중 곽상규 교장도 출연하는 등 옥천을 넘나드는 초대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청소년 라디오방송활동가들은 단연 발군입니다. 3명-4명이 한 팀이 되어서 엔지니어, 진행, 작가, 피디 등 역할을 나눠 하는 코너는 어느 프로그램보다 안정적입니다. '인생초짜 틴에이저', '청라반하다', 'GNJ라디오' , '프롬틴' 등 알찬 코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변하지 않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떤 힘을 갖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죠. 잠만보 복장을 한 곰디 김재석 피디와 같이 진행하는 동화구연 조현미씨의 '꿈꾸는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정말 보석같은 프로그램입니다. 잔잔히 동화를 듣고 있자면 절로 빨려 들어갑니다. 청년살이는 옥천에 통통튀는 청년들이 구수한 입담을 신명나게 풀고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통통 튀는 활력과 시골에 사는 애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옥천읍 가화리의 이후연구소 하승우 소장의 돌아가는 세계에 대한 분석과 논평, '우리의 이후'는 금과옥조 같은 방송입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는 말 속에서 우리 앞으로 펼쳐지는 삶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기후위기, 메가시티 등 다양한 사회 주제들이 펼쳐집니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루카의 오키오키랜드나 오아시스의 영화의 은밀한 매력, 변창환 샘의 '월요일엔 영화수다' 등을 놓치면 안 됩니다. 옥천이 미디어의 도시 답게, 월간 옥이네의 '옥이네 이야기'는 취재기자들의 취재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요, 옥천신문 이현경 편집국장의 뷰포인트는 한주간이 옥천소식을 콕콕 집어줍니다. 옥천신문 권오성 상임이사의 이웃소식과 과학상상은 옥천의 이웃인 보은과 영동 소식과 과학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그리고 우리 인턴 피디들이 직접 각 읍면을 돌면서 경로당 할머니들과 마을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옥천에 살어리랏다'는 스튜디오 밖 주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그리고 중요한 프로그램 또 하나 이주 여성들이 직접 진행하는 '우리가 말하는 우리 이야기'는 해외에서 옥천으로 이주하려 살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리얼하게 방송됩니다. 이 방송과 김원희 선생의 '옥천을 세계로, 세계를 옥천으로'를 같이 듣는다면 이주민들의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있을 겁니다. 불과 한달 여만에 이렇게나 많은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지금도 방송하고 있습니다.
#4.전파로 못 듣는 사람들을 위해 앱을 만들었구요. 휴대폰 앱스토어에서 옥천FM을 검색하면 어플을 다운받아서 누구나 생방송과 이전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문화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스튜디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5개의 스튜디오를 만든 덕에 시간 약속 없이 오셔도 누구나 언제든 녹음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 놓았습니다. 5만명 간당간당하는 농촌 시골에도 방송국이 생겼다구요? 이거 천지 개벽할 일이네. 구경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들을 수 있냐고 문의전화도 제법 많이 옵니다. 택시기사 아저씨고 버스 기사 아저씨도 104.9Mhz를 픽 해놓고 고정으로 듣는 분도 있습니다. 금요일 새벽 4시부터 7시까지는 신문포장 알바를 하는 할머니들의 맞춤형 음악방송인 트롯메들리는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차를 타면 아는 사람들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신청곡은 오픈채팅방에 신청하면 바로 나오기도 합니다. 우와! 옥천에도 라디오가 생겼다고. 사실 라디오 뿐이 아닙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TV도 생겼습니다. KT IPTV 789 채널을 얻어서 케이티 셋톱박스로 티비를 신청하는 분들은 누구나 옥천방송을 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라디오를 거기다도 올려놓을 생각입니다. 옥천에는 시골이라 케이티로 티비를 보는 사람들이 1만 천 가구나 되어서 어지간하면 다 옥천방송을 볼 수 있습니다. 24시간 편성이 가능합니다. 주파수는 소출력이라 아직 읍내 언저리까지 도달하지 못하지만, 면 지역에서도 옥천 바깥에서도 아이피 티비와 앱으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5.언론사의 문턱이 좀 낮춰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수시로 다녀가는 곳이고, 넋두리와 하소연, 그냥 이야기하러 오기 편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옥천신문도 시내버스 종점 바로 옆이라 수시로 사람들이 들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지만, 듣다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감이 잡히기도 합니다. 방송국도 신문사 인근 지척에 있습니다. 저잣거리 한복판에 언론사가 있고 그 문턱이 낮아 누구든 언제든 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글을 쓰는데 문턱이 없습니다.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식선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검문을 당할 필요도 없고 신분증을 내보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오시면 됩니다. 맨날 서울 이야기만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다가 진짜 우리 방송이 나타난 겁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이런 바람의 노래가 언제든 실현 가능하고 영화같은 라디오 스타가 현실 속에서 구현이 된 겁니다. 미디어가 지식엘리트들의 독점이 아니라 주민들의 공론장으로 비로소 내려온 것입니다. 메시지가 마사지되어 나오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어설프고 엉성해서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세련되고 유머스럽지 않아서 주파수를 돌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할 겁니다. 하는 사람이 너무 즐거우니까요.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결국 다른 사람이 아니니까요. 지역 신문이 지역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공동체라디오는 공동체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서울 중심, 글로벌 중심의 미디어 체계에서 우린 벗어날 겁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뿌리 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겁니다. 지역 소멸이다 어쩌구 저쩌구 당장 없어질 것처럼 프레임을 씌우면서 농촌을 소거하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문화를 계속 기록하고 소통하고 공유할 겁니다. 기울어진 공론장을 재건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현할 것입니다. 이제 밖을 내다보는 창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의 미디어를 만들 것입니다. '특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의 격언을 체화하며 삶터의 공론장을 살리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킬 것입니다. 신문과 라디오는 미디어계의 기초과학입니다. 이 둘을 발판으로 다양한 일자리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매월 옥천 노래자랑을 할 것이며, 군의회 생중계도, 조기 축구도 중계할 지도 모릅니다. 옥천에서 벌어지는 모든 토론과 강연들을 아카이빙할 것입니다. 족벌언론, 짝퉁언론, 괴물포털 때문에 우리의 일상이 더이상 망가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의 기본 미디어로서 옥천의 미디어플랜을 새롭게 짜려고 합니다. 그래서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미디어를,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미디어를, 시민의 품으로 다시 돌리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그들은 자본으로 승부하지만, 우리는 관계로 이길 것입니다. 그들은 유착으로 연명하지만, 우리는 밀착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은 지역국을 폐쇄하고 더 큰 메가방송국을 만들려 하지만 우리는 퓰뿌리 미디어를 사수하겠습니다. 그들은 허울좋은 메가시티를 만들려 하지만 우리는 삶터를 다지는 단단한 코뮌을 지키겠습니다. 옥천신문과 옥천FM공동체라디오로 이제 막 시작한 옥천 미디어플랜, 지켜봐주십시오. 풀빵(풀뿌리방송)을 오븐(OBN)에 맛있게 구워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