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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뉴스보다 지역 유기농뉴스를

by 권단

#1.어제 저녁 금구천의 물색깔이 시꺼멓게 변했다는 제보가 속출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전화를 주었다. 빨리 가서 취재를 하면 좋겠다고. 평소 알던 사람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반쯤 섞여있던 채로 10통 가까운 전화와 문자가 왔다. 바로 현장으로 취재기자들이 출동했다. 담당 공무원과 같이 물길을 따라 올라가며 원인이 무엇인지 탐색했고 첫 기사를 올렸다. 이렇게 일상적인 제보가 많다는 것은 신문사로서 참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신문사가 생겼다고 바로 제보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2.언론사 문턱을 낮추고 제보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귀기울이는 오랜 습에서 형성된 것이다.옥천신문사는 시내버스 종점 저잣거리가 시작되는 한 가운데 일층에 있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곳에 위치해있다보니 어르신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일부러 그곳에 맘먹고 가지 않아도 자연스레 들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버스 종점과 택시 승강장의 교집합이 있는 곳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들이 자연스럽게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신문이 나오는 곳이니 폐지를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참새방앗간처럼 자주 순례하는 명소중의 하나이다. 오시면 시원한 곳에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시원한 음료를 대접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신문사는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3.일상 지근거리에 항상 있는 언론사가 목 마를 때 목을 축일 수 있는 '말의 우물'이자 배고플 때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글의 곳간'이었으면 좋겠다. 마치 미안하듯 전화하고 죄송스럽게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공론장으로서 당연하게 말을 걸고 글의 양식을 꺼내 먹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그래서 한통한통의 제보전화가 반갑다. 물론 모든 제보가 기사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 될 경우에는 친절하게 설명을 하며 이해와 납득을 구한다. 모든 것이 관계에서 비롯됨을 알고 있고 관계에 기반한 체계여야 함을 알고 있다. 쉽게 자동응답으로 전화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불편함과 관계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자동응답으로 번호를 계속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에 사회적 약자는 취약하다.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했을 때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 안온감은 어디에 비교할 수 있으랴. 정말 옥천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다산콜센터 못지 않게 신문사의 전화는 늘 시끄럽게 울린다. 하지만, 그들의 필요와 무언가 알리고 싶고 변화시키고 싶은 열망이 지역을 변화시킨다. 신문사는 그 언저리에서 매개 구실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사라져버린 공론장, 왜곡되어진 공론장을 바로 잡고 내 일상의 공론장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4.언론사에 전화를 걸 때는 잔뜩 보통 긴장을 한다. 내가 한 제보가 기사거리가 안 되면 어떡하지. 내가 괜히 전화했나 이런 느낌이 들게 하면 안 된다. 어떻게 기사거리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항시 고민하고 언론사 문턱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친근함이 필요하다. 옥천신문 기자는 옥천에 반드시 산다. 대전에 가깝다고 해서 대전에서 출퇴근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거이전의 자유를 넘어서서 같이 공감하고 같이 살아간다는 어떤 책무와 사명에 가깝다. 주민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같이 동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주민으로서 같이 호흡한다. 같이 살면 문제의식을 같이 느끼고 주파수를 쉽게 맞출 수 있다. 옥천 출신은 아니어도 옥천 토박이는 아니어도 옥천에 같이 사는 옥천 주민이다. 같이 살고 있다는 어떤 동질감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말문이 트이고 관계가 조금 더 진보되는 것이다. 익명성이 없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다소 피곤함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제보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자주가는 슈퍼에서 식당에서 생활형 제보들이 툭툭 떨어지고 그것은 중요한 기사거리가 된다.


#5. 전국에서 인구 일인당 기자수가 가장 많은 곳이 옥천이 아닐까 싶다. 기자가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건강한 언론사와 좋은 기자가 삶속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풀뿌리민주주의가 자리잡는 데 중요한 지표이다. 제보를 한다는 것은 공동체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지역사회와 여론을 인지하고 만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보를 하고 기고를 하고 목소리를 내는 연습이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되어야 한다. 개별화되고 경쟁화되는 이 구조는 사회를 와해시킨다. 협동하고 연대하며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작은 몸짓들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기자가 많을 수록 만나는 사람이 많아지며 공론장의 크기는 커지고 깊어진다. 매주 공론장이 활어처럼 팔딱팔딱 뛰면서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고 먹혀들 때 지역사회는 역동적인 힘을 갖는다.


#6.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에 흩뿌려지는 연예인 신변잡기나 정치인의 소모적인 논쟁에 내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내 일상의 것들을 지켜낼 수 있는 건강한 풀뿌리 언론이 자리잡아야 한다. 슈퍼나 과일가게, 식당에 매일 켜놓놓는 종편을 보고 있으면 내 뇌를 그 곳에 임대하고 세뇌당하는 것 같아 시간적 자원적 낭비가 심각하다. 라디오든 티비든 자본과 규모가 필요하다보니 작은 지역에서는 언감생심 욕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볼 수 밖에 있는 식민지 주민으로 전락한다. 권력의 중심, 자본의 중심에서 그들의 시각대로 흩뿌려지는 정보들을 날 것 그래도 봐야 하는 이 고욕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감내해야 한다. 미디어의 비중이 한없이 커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날 것으로 그냥 살포되는 그런 시각과 정보는 그 자체로 유해하다. 그것은 내 시간을 점령한 채 내 뇌를 세뇌시키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비하하고 부정하며 끝내는 배반하게 만든다.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7.그래서 자본과 권력의 중심에서 흩뿌리지는 불량식품같은 뉴스 섭취를 경계하고 지역 일상에서 길어올리는 로컬 유기농뉴스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든든한 기반이 되어야 한다. 한주 동안 공론장이 시끌벅적하게 지역의 이슈로 들끓고 이야기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기반이 된다면 기초 체력이 만들어지고 다른 지역 외 소식들도 단단하게 소화할 수 있으리라. 우리나라 언론시장은 기초 체력이 부실하고 기본이 무너졌는데도 불구하고 더 커지려는 허황된 망상만 계속 꾸고 있다. 뿌리만큼 성장해야 하는데 뿌리가 부실한데 자꾸 커지려는 꼴이다. 그런 정말 살짝 부는 바람에도 뿌리채 뽑혀 내동댕이 쳐진다. 풀뿌리 언론을 살려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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