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에서 로컬푸드 채식으로의 전환
황민호의 ‘나로부터 생활혁명’③
단식은 실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식 이후가 문제였다. 늘 단식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단식에 대해 비판하고 비난하는 이유는 보식의 실패 때문이다. 곡기를 끊는 것도 물론 어렵기는 하지만 다시 몸을 보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체질로 변화시키는 작업은 몸에 대한 꾸준한 공부를 병행하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이다. 머리로 깨쳐야 하고 몸으로 그것을 느껴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실천이 전제되는 작업들이다. 다이어트로 단식을 생각하다가는 큰 화를 당하게 된다. 내 몸을 알려고 노력하는 공부와 내 몸이 거대한 자연 순환의 일부라는 것을 깨치는 작업과 아울러 또 하나의 큰 우주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참다운 단식을 했다고 어려울 것이다. 단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몸은 서서히 백지상태가 되어갔다. 몸에 스며들었던 바이러스가 치유되고 서서히 태곳적 몸으로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몸은 한결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단식을 더 연장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14일로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의 걱정도 걱정이었거니와 내 몸도 서서히 새롭게 깨어나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단식으로 9kg남짓 몸무게 빠져 있었지만, 여전히 90kg대가 훨씬 웃도는 거구였다.
쌀을 끓인 미음으로 서서히 보식을 시작했다. 미음을 이틀 동안 먹었던 것 같고 3일은 소금간을 하지 않은 야채죽을 먹었다. 오히려 단식할 때보다 이 기간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효소음료는 달달하니 맛이라도 있었지만, 간을 하지 않은 미음과 죽은 맛도 없고 그랬다.
그리고 나서 5일간의 미음, 죽 보식이 끝나고 나는 본격적인 채식으로 전환했다. 삼시 세끼를 다 먹기는 부담스러워 하루 한 끼, 되도록 점심을 먹었다.
▲ 지역에 있는 우리밀과 우리보리는 귀중한 자산이다. 아이들이 농촌학교 프로그램에서 밀밭과 보리밭을 걷고 있다.
‘목숨걸고 편식하기’란 MBC스페셜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이태근씨의 식이요법이 나에게 가장 근접한 것 같아 그의 방법을 일부 차용했다. 그는 동생에게 간을 이식받았지만 평생 먹어야 하는 면역억제제를 끊고 현미 채식으로 건강하게 전북 임실에서 살고 있다. 나중에 그가 쓴 ‘기적의 자연치유’라는 책을 사 보기도 했는데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가 방송에서 한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하루 세끼는 몸에 대한 학대”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모든 것에 대한 성찰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루 세끼를 먹는데 언제부터 왜 그렇게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걸고 편식하기’의 세 주인공 중 대장암에 걸렸던 송학운씨의 밥상은 정말 황홀할 정도로 화려한 자연식 밥상이었지만 그것을 실행하려면 많은 비용 뿐 아니라 방법과 기술을 익혀야 할 듯 싶었고 대구의료원 의사이면서 혈압약과 당뇨약을 버리고 현미채식으로 혈압과 당뇨를 잡는 도깨비 의사 황성수 박사의 생식은 다소 어려울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 두 분 역시, 나에게 자연식과 생식, 현미 채식과 내 몸에 대한 공부를 하게 해준 은혜로운 분들이다. 특히 황성수 박사는 현미 채식에 대한 알기쉬운 이론틀을 제공해 참 의미있게 읽었다.
중독과 강박에서 벗어나자
그래, 우리는 육식에 중독되었던 것은 아닐까? 삼시 세끼 먹는 것에 너무도 당연시했던 것은 아닐까? 물은 왜 억지로 자꾸 먹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 또한 강박 아닐까?
나는 내 몸과 식습관에 대해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몸과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를 규정하고 있는 실체인 몸에 대해 너무도 몰랐다고 뼈저리게 반성했다. 신문쟁이 생활 10년에다가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짐짓 세상사에 대해 아는 체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고혈압이 왜 생기는 것인지, 당뇨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내 몸을 구성하는 장기와 영양소에 대해서 너무도 몰랐던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이 어떻게 내 몸을 만드는 지도 잘 몰랐다.
‘우리는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좋은 음식이라고 먹는데 이는 고단백이 아니라 과단백이다. 과단백은 단백질이 우리 몸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이 들어와 이상이 생긴다. 또한 육식의 섭취는 단백질 뿐만 아니라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까지 같이 가져오기 때문에 몸에 문제가 생긴다’는 취지의 황성수 박사의 발언은 모르고 막 먹었던 나를 깨웠다.
▲ 안남 농촌학교에서 지역 제철 농산물인 토마토를 맛나게 먹는 아이들 모습, 반드시 채식은 지역농산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 몸도 살리고 지역도, 지구도 살릴 수 있다.
나는 종종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도 고기는 조금 먹어야 하지 않겠어? 고기 안 먹으면 힘을 어떻게 내냐”. “골고루 먹어야 하지, 고기 안 먹으면 몸에 이상이 생길 텐데, 고기도 어느 정도는 먹어줘야 해”, “고기는 안 먹더라도 생선은 먹어야 하지 않겠어”, “아이들에게는 우유와 계란은 필수야. 완전식품이라잖아. 그것 먹어야 키가 쑥쑥 자랄 걸”
이런 우려의 목소리, 조언들을 수시로 들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미디어에 왜곡된 잘못된 상식들에 휩싸여서 그게 마치 진실인양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렇게 살고 있다.
조금만 더 성찰을 해보고 책을 읽고 사실을 확인해보자.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많은 책들과 과학자, 의학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만, 미디어에 노출이 덜 될 뿐이다.
나는 황 박사의 이야기를 방송과 책에서 보고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끊었다. 아이에게 배달되는 우유도 집사람을 설득해 끊고 검정콩을 갈아 두유를 먹이고 효소 음료를 준다. 어린이집에서 먹이는 우유도 끊으려 했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너무 까탈스럽게 보일까봐서이다. 다만 되도록 육식성 음식을 안 먹고 덜 먹이려 노력한다.
과일과 한끼 식사의 시작
그리고 식습관은 이태근씨의 것을 많이 참조했다. 아침에는 사과 한 개를 먹었다. 사과는 껍질채, 씨채 다 먹었다. 칼로 반토막을 내어서 버리는 것 없이 다 먹었다. 저녁에는 배나 고구마를 먹었다. 배나 고구마도 껍질과 씨채 다 먹었다. 버리는 게 없었다. 거친 음식을 씹다보면 오래 씹고 맛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나가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점심을 같이 먹었다. 점심을 먹을 때는 딱 반공기와 채소 반찬 위주로 식사를 했다. 그렇게 아침, 저녁은 과일로 먹고 점심은 반 공기 채식을 지속했다. 그다지 배고프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침, 저녁을 과일로 먹는다는 말에 놀라고 걱정하지만 정작 나는 껍질과 씨까지 씹어 먹어서 그런지 포만감도 있고 참 좋았다.
물을 무조건 많이 먹자는 강박관념도 버렸다. 이태근씨 책에는 물을 억지로 먹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고 한다. 목 마를 때 마시자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물에 대한 강박을 버렸다. 음양감식조절법이란 책에는 되도록 목욕과 물 먹는 것은 저녁에 하라고 쓰여 있어 아침과 낮에는 물을 잘 먹지 않았다. 또 식전, 식후 2시간 이후에 물을 먹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물을 굳이 먹지 않아도 과일과 채소에 함유된 수분을 섭취하면서 물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먹으니 참 준비도 간편하고 편했다. 채식을 한다고 하면 집사람도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아침, 저녁으로 생과일을 그냥 먹으니 집사람도 별 준비할 것이 없었다.
자칫 채식으로 깨질 가정의 평화가 담보된 것이다. 송학운씨처럼 자연식으로 했더라면 준비하는 주부의 스트레스도 말도 못했을 것이다.
단식이 끝나고 채식으로의 전환 중 핵심 고갱이는 로컬푸드 채식에 있다. 반드시 지역농산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 사는 값싼 농산물이나 수입농산물을 먹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농촌지역에서 신문기자 하던 양반의 행태가 이러했으니 반성할 일이지 아니한가?
그냥 채식은 의미가 없다. 반드시 로컬푸드로
▲ 옥천살림에서 100% 옥천콩으로 생산한 우리콩두부, 옥천주민들에게 인기있는 두부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값이 다소 쌀지는 몰라도 이게 건강한 소비행태인가? 그리고 내 몸에도 좋을까? 하는 성찰을 했고 이내 생각과 행동을 고쳐먹었다.
대형할인마트에서 사는 국산 농산물은 어디서 나는지도 지리적 표시제가 안 된 것이 수두룩하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수입산 농산물은 어떠한가? 물 건너 오랫동안 머물러 오면서 방부처리 등을 했을 터이고 어떤 종자로 제대로 농사를 지었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면밀히 생각해 보면 값이 싼 것도 아니었다. 옥천에서 대전까지 나가는 기름값과 시간 비용 등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난 그래서 내 농산물 공급처를 옥천살림으로 바꿨다. 옥천살림은 지역의 친환경생산농가들이 직접 만든 유통업체로 친환경농업이라는 가치와 농촌, 농업의 공공성, 먹을거리의 건강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영농조합법인이다.
나는 여기서 지역친환경농산물을 직접 주문해 먹었다. 사과는 이원면 원동리의 신진수씨의 저농약 사과와 배는 안내면 월외리 어효경씨의 무농약 배를 사 먹었다. 설탕대신 꿀은 안남면 연주리 박미영씨의 아카시아 꿀을, 표고버섯은 안내면 현리 민병용씨, 현미쌀은 청성면 산계리의 이선우씨가 직접 재배한 현미를 먹었다. 두부는 안남콩으로 옥천살림에서 만든 두부를 먹었다. 그야말로 얼굴있는 먹을거리였다. 얼굴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거래를 하면서 신뢰가 쌓였고 농촌과 농업의 긍정적인 가치가 쌓이기 시작했다. 거대하고 위대한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채식을 한다면서 대형할인마트에서 꾸준히 사먹었다면 참으로 근본과 뿌리를 제대로 모르는 행위를 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취재를 통해 알았던 농민들의 농산물을 직접 구입하면서 관계가 더 돈독해졌고 지역 농업에 대한 이해도 한층 더 커졌다.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을 만들고, 건강한 관계와 인연을 만들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나는 깊이 체험했다. 식습관의 변화로 인한 건강찾기는 개인에게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 이는 바로 지역사회와 연동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실천과 변화가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었고 지역사회의 선순환구조를 견인한 셈이다.
현명한 쌀, 현미를 먹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현미를 잘 몰랐다. 그게 도정의 차이인줄은 모르고 다른 종자인 줄 알았다. 현미는 생명쌀이다. 도정을 하지 않아 씨눈이 살아있고 거친 겉껍질이 남아있다. 물에 불려 오랫동안 놓아두면 현미쌀에는 싹이 트지만, 잔뜩 깎아내린 도정한 백미는 이내 썩어 버린다. 황성수 박사는 인간이 섭취해야할 필요 단백질은 현미만 먹어도 다 섭취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 성장기에 필요한 엄마젖보다 단백질 함량이 더 많다니 정말 좋은 식품임을 알 수 있다. 현미를 먹으려면 보통 멥쌀과 찹쌀을 5:5로 섞어 8시간 동안 불려서 먹으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먹지 않는다. 5:5 비율을 유지하되 거기에 검정콩을 넣고 밥도 불리지 않고 바로 해 먹는다. 황성수 박사 시늉을 내느라고 현미 생식을 해 본적이 있었는데 주식사로 하기는 힘들겠어서 바로 한 현미밥을 먹기로 했다. 생식에 비하면 꿀맛이다.
내 밥상과 식습관은 서서히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이는 극기훈련하듯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의적으로 즐겁게 실천하는 변화였다. 바나나, 파인애플, 칠레 포도 등 수입농산물은 이제 먹지 않기고 했다. 내 몸과 마음에서 시작한 조용한 날개짓이 지역사회 전반으로 조금씩 조금씩 파장을 일으키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즐거웠다. 신나는 몸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