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저널리즘스쿨, 지역언론인을 양성하는 새로운 현장학교를 열다
변방으로 밀려난 지역의 본질
광장의 촛불은 민주주의가 아닐 수 있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찰나의 민주주의의 '환영'을 붙들고 그 영속성과 영원함을 믿는 것은 착시이고 신기루이다. 그것은 최대치가 아니라 정말 그 환영을 유지시켜주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일 수 있다. 최대치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체제가 미디어가 조장하는 극적 장치일 수 있다. 일상에서 현현하게 모든 순간 살아 움직거리지 않는 민주주의는 가짜다. 어떤 상징에 종속되어 존재의 작동을 까먹게 만든다. 주인이라 언제든 호명되지만, 더 이상 주인이 아닌 채로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별 문제의식이 없다. '예민'이라 느끼는 것은 더이상 보편적이지 않고 '피곤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살아가는데 이런 저런 딴지를 거는 것은 불평을 넘어 불순분자로 낙인찍힐 뿐이다.
덩어리가 커지는 것은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종속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국가의 국이란 한자는 네모난 틀안에 창으로 입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었나. 사람이 온전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숫자로 인식될 때 위험은 도래한다. 대중들로 호명되고 그들의 정서나 생각들이 뭉뚱그려 하나로 표현될 때 문제는 시작되는 것이다. 층위를 만들고 위계가 정해지며 획일화된 문화는 다양성을 말살한다. 전국을 커버하는 언론들은 서울의 모든 것을 퍼뜨리고 빨아들이는 빨대역할을 할 수 있다. 중심과 주변부로 나뉘고 핵심권력과 자본을 비판하고 감시하면서도 닮아갈 수 있다. 중심부의 자장으로 주변부를 관리하고 지배하는 방식, 수직적인 문화들이 여전히 팽배하며 당연하듯 굴러가고 있다. 나라 선 밖의 점령과 식민화는 증오와 분노로 점철되지만, 나라안의 식민화는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순치된다. 민족과 국가라는 틀거리 안의 어떤 도발도 '반란'으로 매도될 뿐이다.
'균형발전'과 '분권'으로는 한계가 여전하다. 콩고물과 권력을 나눠갖자는 그 이상의 함의가 있어야 한다. 지역은 자치와 자급의 기치를 내걸고 독립과 연대의 가치, 순환과 공생의 가치를 표방해야 한다.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있어야 전체가 살 수 있다. 발뒤꿈치 모세혈관까지 피돌기를 해야 온 몸 한군데라도 썪어나지 않고 온전하게 작동할 수 있다. 스스로의 삶을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건사하겠다는 의지가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체제 권력과 자본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삶터와 일터가 따로국밥이 아닌 지역에서 내 삶을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나무는 뿌리내린 만큼 성장한다. 뿌리가 약하면 모진 비바람에 쓰러질 수 있다. 뿌리내린 나무와 나무가 연결되어 숲을 이룰 때 민주주의는 만개할 수 있다.
커뮤니티저널리즘은 풀뿌리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보루
지역언론 즉 풀뿌리언론,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사실 풀뿌리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마지막 보루이다. 정보를 알아야 참여를 하고 행동을 할 것 아니겠는가. 종이신문은 고령화된 농촌 지역에 그나마 모든 사람이 접근하고 볼 수 있는 매체이다. 접속하지 아니하고 물리적으로 펼쳐보아 읽는 행위 자체는 원시적일 수 있으나 뉴미디어에 비해 비교적 평등하다. 언론이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한다면 지역언론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에 가깝다. 언론이 창 너머 세상을 관전하는 것이라면 지역언론은 스스로의 삶터를 거울처럼 돌아보는 것이다. 타자화나 대상화가 될 수 없다. 넘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인 것으로 더 훅 다가온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또는 생명은 없다.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지면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 저널리즘이다.
지역의 결핍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적 인프라만이 아니다. 피같은 정보가 순환되지 않는다. 지역에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 지역신문 있는 지역의 실정도 열악한데 지역신문이 아예 없거나 사이비신문이 창궐하는 지역의 상황은 어떨까. 수많은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억압되고 있다. 지역의 이슈가 사장되고 이슈마저 식민화되고 있다. 연예인 가쉽과 소모적인 중앙정치의 놀음으로 대화의 시간이 점령되고 있다.
소모적인 정치논쟁이 뉴스혐오로 이어지고 있고 연예인 가쉽이 씹기 좋은 뉴스검으로 작동하고 있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쓸모'와 '필요', '민주'를 담보한 저널리즘이다. 삶터를 변화시키고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에 쓸모 있는 정보가 담겨져 있는, 그리고 일상속의 민주주의를 실시간으로 구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내 생활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정치인의 쓰잘데기 없는 논쟁들을 싫지 않는다. 이슈의 식민화에 복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슈를 발굴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게 한다.
옥천만 하더라도 700명에 달하는 공무원이 있고 8명의 군의원과 2명의 도의원, 1명의 군수, 옥천, 보은, 영동, 괴산을 지역구로 하는 한명의 국회의원 등 12명의 선출직 공무원이 있다. 매년 6천억원에 달하는 군 예산이 있으며 정례회, 임시회를 통해 이런 예산이 통과되거나 삭감된다. 지방자치가 시작됐지만, 뽑기만 하고 어떤 예산과 정책이 시행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없다면 이는 가짜 자치이고 가짜 민주주의다. 신문은 이런 정치 행위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얼마만큼의 예산으로 어떤 사업이 시작되는지, 군의회를 통해 어떤 의원이 무슨 발언을 하고 예산을 살리고 삭감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군의회의 방청석에 앉아있는 유일한 사람은 옥천신문 기자 밖에 없다. 의회 영상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주고 실시간으로 생중계를 한다지만, 홈페이지 접속하는 사람도 이를 시청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신문을 보고 피드백을 하고 해당 정치인에게 직접 연락하기도 한다. 지역은 물리적 거리도 가깝고 정서적 거리고 가깝고 관계적 거리도 비교적 가깝다. 의원이나 군수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기 보다 슈퍼 가다 만나고 식당 가다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지역의 크나큰 장점이다.
열악한 지역 언론의 현실
건강한 지역언론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우는 자양분이다. 그런데 사람 구하기가 늘 힘들고 늘 쪼들린다. 대부분의 지역신문들이 적게는 1명 많게는 3-4명의 취재기자를 확보해서 어렵게 운영한다. 명이나 2-3명 가지고는 매주 지면 내기가 버거운 실정인데 그나마도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 늘 애를 태운다. 언론인 지망생들도 늘 인 서울 언론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언론사를 떠나서 지역, 농촌 자체가 비선호 지역이라 아예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 남아있는 기자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 악순환이다. 물이 들어와야 어떤 흐름이 만들어지는 데 물이 바싹 말라 있는 채로 울거 먹으려 하니 순환이 안 되고 탁해지는 것이다. 전국 각 지역신문에서 사람을 구해달라는 전화가 비교적 자주 오는 편이다. 그나마 옥천신문은 공고를 내면 많은 지원자가 몰리니까 늘 젊은 청년과 청소년이 배우러 오는 걸 아니까 문의하는 전화이다. 하지만, 여건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각 지역신문의 실정은 옥천신문과 또 다르고 새로운 지역에서 다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기 때문에 사람을 쉽게 구하기가 어전히 어렵다. 옥천저널리즘스쿨을 기획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옥천신문과 옥천저널리즘스쿨의 시작
옥천신문은 1989년 군민주 신문으로 만들어졌고, 주민들이 주인인 신문이다. 32년의 역사동안 신문사의 다른 사업으로 한 눈을 판 적이 없고 오로지 ‘저널리즘’으로 승부를 걸었던 새로운 지역신문 모델이다. 어려울수록 본질에 충실했고 그러기에 어려운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노동조합이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노사 동수의 이사제를 운영해갈 방침이다. 그리고 노동자들과 협의를 통해 지속가능한 노동과 복지체계를 구축하고자 매해 노력하고 있다. 변칙형 주 4일제 근무, 35시간제 노동을 지향하고 점심시간도 1시간 30분으로 늘이는 등 여러 새로운 시스템을 고민하며 실현해나가고 있다. 또한, 20년 가까이 자체적으로 청소년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삼선재단의 청년인턴쉽을 운영해본 경험과 아울러 2년 전부터 서울시 청년허브와 함께 별의별 이주기자를 운영해 본 경험들이 실질적으로 옥천저널리즘스쿨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삼선재단 청년인턴쉽은 1년 동안 매월 50만원을 지원하며 청년들이 지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도록 탐색과 모색을 하는 시간을 제공하였으며, 서울시 청년허브의 별의별 이주기자는 2주 동안 지역신문 기자를 경험하는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서울시가 숙식비와 기획비를 제공해줘 비교적 수월하게 운영할 수 있었는데 옥천신문은 이 프로그램을 기회로 2층까지 임대해 게스트하우스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옥천신문에서 인큐베이팅한 로컬푸드 옥이네밥상에서 식사를 하고 마찬가지로 옥천신문에서 탄생한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운영하는 둠범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 이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 인프라 때문에 옥천저널리즘스쿨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맨 처음에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제안사업으로 풀뿌리청년언론학교를 1주간 기획을 했다. 당초에는 강좌가 8할이었는데, 참가자들은 강좌보다 실전 취재, 동행취재 수업이 좋았다고 의견을 냈다. 이를 바탕으로 1년 365일 옥천저널리즘스쿨을 열어보자 기획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별의별 이주기자에서 기간을 연장하고 싶은 친구들은 3개월까지 연장하며 같이 배웠다. 기간이 넘으면서 추가되는 숙식비와 비용은 전부 옥천신문이 부담했다. 서울시 청년허브의 사업은 6월부터 11월까지 보통 진행되는데 옥천신문은 자부담으로 나머지 기간까지 전부 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청년허브는 이를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현재 옥천저널리즘스쿨의 수강료는 없다. 무상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숙소 비용을 월 5만원씩 부담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낼 것이 없다. 이는 우프(WWOOF)의 사례도 참조했다. 우프(WWOOF)는 ‘World Wide Opportunity on Organic Farm’이란 뜻으로 유기농가 및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곳에서 하루에 반나절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으로 전세계 150여 국가에서 활동할 수 있다. 우프에서 힌트를 얻어 우리는 LROOP(Local Rural Opporunity on Organic Pen)를 기획했다. 유기농가가 아니라 유기농 펜, 즉 지역신문을 경험하는 것으로 변경한 것이다.
우리는 그라운드를 제공한다
여타의 다른 저널리즘스쿨과 다른 것은 우리는 현장의 그라운드를 제공한다. 탁상에서 배우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부딪쳐 가면서 배운다. 옥천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직접 사람을 만나고 취재를 하며 기사를 써본다. 옥천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지역, 농촌이라는 보편성을 동시에 배울 수 있다. 일반 언론에서는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지역 주민을 직접 자주 만난다. 스스로 기획하고 기사를 쓰는 것을 도와주며 실제로 자신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실습을 빙자한 서브만 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고민한 만큼 쓸 수 있다. 지역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통으로 배울 수 있다. 한분야만 파는 게 아니라 각 분야별 이음쇠가 어떻게 연결되어 돌아가는 지 그 흐름과 맥락을 읽을 수가 있다. 작기 때문에 통으로 볼 수 있고, 작기 때문에 왕성한 피드백을 경험할 수 있고, 작기 때문에 언론의 본질을 더 느낄 수 있다. 직접 제작하는 지면에 참여하며 매일 실전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물론 취재를 하기 전 충분히 상의와 숙의를 거치고 출고되기 전 기사를 갖고 토론과 검증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삶이 교육이어야 하는 것처럼, 저널리즘스쿨도 이론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머리로 배운 것들이 현실에서 살아 움직거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허송세월을 보내야 하는가. 옥천저널리즘스쿨의 일원이 되면 지역에 먼저 산다. 가깝다고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것은 안 된다. 같이 살아보면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주민이 되는 것이다. 살아보면서 부딪치면서 기사거리가 나오고 취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인터뷰, 스트레이트, 피처기사, 행사기사, 민원 기사, 정책 기사를 비롯해 심층취재까지 본인의 역량과 맞물리면서 기사 작성의 모든 것을 현장에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쓴 기사는 검증을 통해 지면에 반영된다. 2019년에도 18명의 인원이 거쳐갔고, 2020년에도 20여 명의 인원이 다녀갔다. 짧게는 2주부터, 길게는 6개월까지 많은 청년들이 거쳐갔다. 충남대, 동국대와 학점인정 인턴쉽 교류도 하고 있고, 제천, 금산 간디학교와 진로캠프와 같은 1개월~3개월 과정도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옥천저널리즘스쿨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취업 또는 창업까지 염두해 두고 있다. 옥천은 지리적으로 남한의 중심인 만큼 여기서 커뮤니티 저널리즘의 본산을 만들어보자. 지역 언론인을 꿈꾸는 많은 청년들을 길러내어 민들레 홀씨처럼 전국에 흩뿌려 보자. 이런 거창한 생각으로 기획을 했지만, 그렇게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직도 지역은 신문 하나 없는 곳도 태반이며 사이비 언론만 그득한 지역도 넘쳐난다. 네이버나 페이스북에 링크된 복붙한 보도자료의 지역뉴스만 보면서 생활을 하는 주민들이 과반이 훌쩍 넘는다. 공급자 중심의 뉴스 체계에서 언론은 여전히 복무하고 있고 주민들의 눈과 귀와 입을 가린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실제 생활에 필요한 정보는 하나도 없고 쓸모없는 정보만이 그득하다. 풍요속 빈곤이다.
풀뿌리 지역신문은 어떤 보도를 하는가?
옥천신문이 지금까지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안남면 덕실리 주민의 대형 쪼개기식 태양광 반대 투쟁을 보도한 것은 11월6일자다. 최근까지 수십건의 뉴스를 생산해내고 현상을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일간지에서는 두달 가까이가 지난 12월28일 슬그머니 보도를 했다. 군청에 천막을 쳤고 면 대책위로 크게 반발을 함에도 불구하고 일간지의 보도는 늦고 단편적이다. 옥천신문은 장수와 영동의 태양광 반대 투쟁의 사례를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조금 더 깊이있게 보도를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추미애-윤석렬 논쟁이 1년 가까이 소모성 논쟁으로 전락할 때 옥천신문은 계속 지역의 새로운 이슈를 세팅하면서 여론의 불을 당겼다. 청성초등학교 전교생 수가 15명으로 줄었고 내년에는 13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작은학교 위기론을 다시 점화하며 농촌 작은학교의 실질적 대책을 요구하는 기사를 계속 써냈다. 이는 일간지에서 하나도 보도되지 않은 기사들이다. 이 기사의 시작으로 인해 없던 청성초 총동문회가 만들어졌으며 마을에서는 귀농귀촌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내어놓았다. 그리고 지역 대책위가 꾸려져 학교 살리기에 골몰을 하고 있다. 옥천신문은 이런 결코 작지 않은 움직임을 매주 보도하면서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코로나19시국에 군내 한 군립어린이집 음주 회식 기사도 옥천신문이 12월24일자로 제일 처음 보도했고 그 이후 엠비씨 충북에서 1월5일 뒤늦게 보도했다. 옥천신문은 이슈를 계속 끌고가며 구조적인 문제를 보았고 엠비씨 보도가 되기 전까지도 몇 차례 후속보도를 통해 제도적 보완을 요구했다. 옥천버스회사의 직원에 갑질한 기사도 유일하게 옥천신문만 보도했다. 청주지방노동청에서 갑질 인정을 받기까지 지속적으로 보도했지만, 다른 언론사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앞에 인도가 없는 것을 계속 보도해 인도를 만들게 했고 끊어진 산책로를 보도를 통해 잇게 만들었다. 이런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다.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제보를 하며 이것들은 지면 공론화과정을 통해 해결이 된다. 기자들은 풀뿌리민주주의를 앞서서 지켜내는 첨병 구실을 하고 원탁의 공론장을 지켜내는 기사단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취재기자가 10명으로 거의 지역방송국 수준이지만, 많은 제보를 다 감당하기에는 기자가 더 많이 모자란다. 옥천신문이란 도구가 이미 32년 동안 실효성을 획득하고 '필요한' 매체임이 증명되고 있다. 신문 구독이 구시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시대에 옥천에서 월 1만원짜리도 종이신문 독자가 3천500명에 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시대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반드시 필요하다
.플랫폼이 아무리 날고 기고, 뉴 미디어가 하루 지나고 나타나며 순위가 바뀐다 해도 지역 생활정보의 필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생활정보 이상의 지역 저널리즘은 여전히 필요하고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당근마켓이 새로운 생활정보시장을 열고, 배달의 민족 등이 지역 시장까지 잠식하고 있지만, 지역 저널리즘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지역에 살아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옥천저널리즘스쿨은 많은 건강한 지역언론인을 양산해 내는 창구가 될 것이다. 취업 뿐 아니라 지역신문이 없는 지역에서 새롭게 창업할 수 있도록 방법까지 전수하고 일러줄 것이다. 이런 지역신문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뿌리 내리며 전국적으로 네트워크 될 때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지고 다른 패러다임이 펼쳐질 것이다. 지역신문은 오늘의 지역을 기록하는 역사이다. 체계형 언론이 아니라 민으로부터 시작되는 관계형 언론이고 이는 초창기 언론의 원형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의 산실이 되고자 하는 옥천저널리즘스쿨에 많은 청년들이 관심 갖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