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에서 무덤까지. 신토불이와 자급과 자치를 생각한다.
다 먹고 사는 일이라 한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학교급식은 먹을거리를 기반으로 한 참 중요한 운동이고 마땅히 해야할 운동이다. 그 연장선상의 흐름을 본다. 학교에 오기 전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보육시설 급간식 지원 정책으로 다행히도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을 맛본다. 그 이전에는 어떤가. 영양플러스란 사업이란 것이 있다. 산모와 갓 태어난 아이에게 영양을 보충해준다는 차원에서 군 보건소에서 국비를 지원받아 매달 농산물 꾸러미를 한아름 안겨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안타깝게도 상업논리에 갇혀 입찰 논리에 갇혀 돈에 맞게 지역 친환경 농산물이 아닌 돈에 맞게 구색을 갖추고 있는 형국이다. 또 모두에게의 보편성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독거노인 밑반찬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복지과에서 복지관에 위탁해 하는 사업인데 이 역시 돈의 논리에 갇혀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지역 친환경 농산물은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들어가는데 옥천에 있는 충북도립대학 급식에도 아직 지역 친환경 농산물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 지역의 식당과 우리의 밥상은 어떠한가.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이윤을 남기려고 가정경제 호주머니를 줄이려고 지역 친환경 농산물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학교에서 시작한 학교급식운동은 아직 그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이는 안팎으로 확장될 때 가치가 있다. 연장선을 타고 물결처럼 흘러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안으로는 학교 급식소 안의 식재료를 바꾸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식문화 자체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 우리의 식문화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존중하며 순응하는 문화이다. 현미 채식에 대해 사유하고 찌고 삶는 우리네 조리 문화와 가마솥 문화와 장독대 문화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알루미늄 식판과 줄세우기식 기다리는 문화.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먹는 문화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또한 아이와 교사만이 아닌 마을 사람들과 같이 먹는 식문화는 어떠한가. 이 지점에서 자급과 자치를 생각한다. 온 마을이 학교다라는 것을 생각한다. 학교는 학교 안에 갇혀버려 지역의 섬이 되었다. 학교 식당을 개방하거나 마을 식당에서 학교 급식을 하는 것을 어떠한가. 나는 둥그런 나무 원탁에서 할머니와 손주가 아지매와 딸내미가 점심시간이나마 같이 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 때 선생님과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모두가 마을안에서 동등하게 같이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게 바로 평화이지 않을까. 비로소 학교는 마음의 담장을 허물고 지역안의 학교가 되는 것이다.
식재료를 자급하기 위해 텃밭에서 같이 농사를 짓는다. 지역의 식량 자급에 대해서 자연스레 생각하고 외부에 팔기위해 대량생산 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먹기 위한 다품목 소량 생산을 하는 것이다. 이는 생활권에서 가능하다. 지금의 기초자치단체도 크다. 더 작아져서 생활권안에서의 자급과 자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널뛰기를 하며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스스로 우리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 때 지속가능한 발전과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자급이다. 자급이 가능해야 자치 또한 가능해진다. 이 모든 것은 먹을거리에서 비롯된다.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것 아니던가. 먹을거리에서 민주주의는 시작되고 생명과 평화는 시작된다. 로컬푸드 운동을 하면서 유기농보다 지역과 제철 농산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지역과 제철 농산물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에 유기농이 빠져서는 곤란하다. 유기농은 바로 순환이고 서로 살림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다. 인간만 잘 사는 것이 아닌 지구별에 사는 모든 생명들이 같이 공생하자는 의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기농은 값이 비싸다. 비싼게 당연하지만서도 서민들에게는 사치 품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는 아니된다. 우리가 걷어놓은 세금 어디다 쓰는가. 차액보전을 더 확대해야한다. 유기농에 차액보전을 통해 일반 농산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농업도 살고 자연도 산다.
먹을거리는 단지 먹는 것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문화여야 한다. 농산물이 자라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는 농촌 체험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먹을거리에 대한 철학으로 사회학으로 발전해야 한다. 나의 기반이 어디에있는지 내 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려면 수탈의 대상이 되어왔던 농촌에 기운을 불어넣어야 하고 농촌이 식재료 생산기지가 아닌 삶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농촌의 삶의 질 복원에 대해 같이 고민해야 한다. 농촌은 태초이고 자궁이다.
학교급식을 화두로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좋은 운동을 학교 안에서만 끝내기는 너무 아깝다. 생활공간 전역으로 남녀노소 전 세대로 확장해야 한다. 먹는 것에만 갇힐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의 전후과정 식재료가 밥상에 오기까지의 전 과정이 모두 교육이다. 농촌과 농업과 마을과 지역 학교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학교급식은 그나마 얼어붙은 체제내의 숨통을 트이기 위한 소중한 허파이다. 이 것을 아주 깊게 사유하고 호흡하고 더 담금질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