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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Nov 08. 2021

신 여사와 한 여사의 사이, 그 어디쯤  

탁탁탁, 탁탁탁, 스윽스-, 탁탁탁, 쏴아아~

월요일 오후,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서 문득 피식 웃음이 났다. 아니, 요리 경연대회도 아니고 왜 이리 쫓기듯 요리를 하는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 여사와  여사의 중간지점에서 어느  편으로 기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시간은  여사와 함께  날들이  길지만, 음식을 함께 만든 시간은  여사와의 시간이  길지 않을까. 어쩌면 부엌에서의 모습은  여사를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여사님들의 부엌 스타일을 소개해본다. 신 여사, 우리 엄마는 요리의 단계를 중요시하여 동시에 여러 가지의 음식을 하는 일이 드물다. 요리 중 나타나는 설거지감은 바로 바로 정리하며, 음식물 쓰레기 역시 미루지 않고 처리를 하고야마는 깔끔 대장이다. 재료 준비부터 끓이기 혹은 볶기, 설거지와 쓰레기 정리하기의 단계를 거쳐야 하나의 요리가 완성된다. 그래야 다음 요리로 넘어간다. 신 여사 요리의 목적은 무엇보다 건강. 약한 불로 조리를 해야 건강한 음식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오오~래 걸린다.


한 여사는 딱 이와 반대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녀가 요리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스피드! 지난 4년간 서당 개의 심정으로 얻어낸 스피드의 비법은 타이밍을 아는 것이다. 한 여사는 두세 가지의 요리를 동시에 시작한다. 말하자면, 찌개와 찜류와 볶음류의 요리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말.

먼저 오늘의 요리에 들어갈 재료를 냉장고에서 일단 다 꺼내어 모두 다듬는다. 첫 번째 요리인 찌개에 들어갈 재료를 냄비에 넣고 끓이는 동안, 두 번째 찜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다듬는다. 찜 요리가 진행되는 동안, 세 번째 볶음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또 다듬는다. 이때 필요한 것이 눈치와 타이밍이다. 언제 어떤 재료가 어느 곳에 필요한지 알며, 도중에 타지 않게 적절한 손길을 주는 법을 아는 눈치. 또한 조리 중 가스 불은 센 불을 유지하며, 기본적으로 3구는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요리를 하면, 한 시간 내에 해물찜과 돼지갈비, 곱창전골이 있는 밥상(더불어 9가지의 반찬이 있는)이 가능하다. 이런 그녀에게 요리 중 설거지 및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부엌에서의 한 여사는 그녀만의 무기로 전진을 할 뿐,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집 부엌 풍경은 어떨까. 결혼 초, 부엌에 처음 섰을 때의 생경한 느낌은 이제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의 프로 주부이고 싶지만, 아직도 부엌살림들과 겨우 낯가림만 면한 정도의 실력이다. 신 여사의 슬로우 라이프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처음 한 여사의 요리 모습을 봤을 때는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정신없는 요리 전쟁을 관람 후,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서 더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 한 여사는 주부로서의 롤 모델이 되었다.


이제는 카레를 끓이는 동시에 된장찌개를 준비하는 정도까지는 가능해졌고, 나름의 리듬도 생겼다. 탁탁탁, 탁탁탁(호박 자르기), 스윽스-윽(카레 한 번 저어준다), 탁탁탁(다시 호박), 쏴아아~(대파 씻기), 다시 스윽스-윽(카레 휘젓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요리하는 모습 속에는 삶의 모습이 묻어나는 걸까. 정리를 중요시하는 신 여사는 인생도 정리정돈하기를 좋아한다. 공짜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안 주고 안 받는 더치페이를 실천하는 이 시대의 차도녀다.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이 그녀의 마음에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 신 여사의 체력과 마음을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가족뿐이다. 한 여사 역시 넘치게 요리하는 모습처럼, 자식에게도 넘치게 주는 엄마다. 나이 든 자식들에게도 여전히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려는 한 여사가 안타까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족함 없이 주고픈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모두 ‘엄마라는 하나의 단어로 불리는 그녀들의 모습이다. 나는 어떨까. ‘엄마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여사와  여사의 사이  어디쯤일까. 이십년 , 유은이는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해줄까.  여사만큼의,  여사만큼의 엄마는 될까. 된장찌개와 카레를 만들면서,  엄마에 대해 생각해  월요일 저녁이었다.



* 각주

 여사 : 친정엄마, 성을 따서 신 여사라 부른다.

한 여사 : 시어머니, 성을 따서 한 여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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