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초컬릿을 직장 동료들에게도 돌리는 따뜻한 마음을 전하며
처방전 접수와 가격택을 책임지는 직원 민서는 03년생이다. 작년 3월에 입사했다. 집은 서울이지만 지금은 부산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지낸다. 약국에 지원한 이유는 단순했다. “주 4일 근무라서요.”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좋았다.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함께 일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머리가 있었다. 부탁한 일은 늘 기대 이상으로 돌아왔다. 가격라벨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단순히 출력만 해오는 게 아니라 글씨체를 고르고 배치를 정리하고, 보기 좋게 디자인을 더해왔다.
컴퓨터에 약한 나는 그저 “이 정도면 됐어”라고 생각했는데 민서는 “이왕이면 더 보기 좋게요”라며 한 번 더 손을 봤다. 시킨 만큼이 아니라, 필요할 만큼 하는 사람. 그게 민서였다.
일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밝았다. 그리고 긍정적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는 날에도 손님 앞에서는 웃으려고 노력했다. 억지로 지은 표정과는 조금 달랐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프로답게 서 있는 얼굴이었다.
작년 가을, 본업인 인테리어 디자인 일이 많아지면서 몸이 많이 지쳐 있었다. 자주 아팠고 힘들어 보였다. 12월 한 달, 서울 집에서 쉬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솔직히 고민이 됐다. 한 달만 다른 사람을 채용했다가 다시 복귀시키는 일은 번거로웠다. 하지만 자리를 남겨두기로 했다. 대신 수능을 마친 아들이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맡았다.
민서는 1월에 건강을 회복해 돌아왔다. 그리고 더 밝아진 얼굴로 다시 자리를 지켰다. 함께 근무하는 약사의 결혼식에도 기꺼이 참석했다. 집이 서울이라 나중에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는데 “당연히 축하드리러 가야죠”라며 축의금을 준비하며 결혼식장에 함께 갔다.
요즘은 관계에서도 손익을 계산하는 시대다. 돌려받을 수 있는지, 나에게 이득인지, 괜히 손해 보는 건 아닌지 따져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민서는 계산보다 마음을 먼저 냈다.
어제는 발렌타인데이라며 약국 직원들 모두에게 직접 만든 초콜릿을 나눠주었다. 새벽 1시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직장 동료라 굳이 안줘도 될텐데, 아니면 간단한 걸 그냥 사서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시간을 들였다. 작은 선물가방을 건네는 모습에서 그 정성과 시간이 느껴졌다. 민서의 초컬릿이 전해지자, 약국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웃음소리와 고맙다는 말들이 들리며 훈훈한 기운들로 조제실이 채워졌다.
약국은 약을 조제하는 공간이다. 정확함이 중요하고, 실수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건 약이 아니라 사람이다. 나는 대표약사로서 직원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가끔 생각한다.
업무 지침과 시스템만 남기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효율과 결과만 요구하고 있지는 않을까.스물셋 직원이 보여준 것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는 마음, 돌려받지 못해도 먼저 내미는 손, 힘들어도 웃으려고 애쓰는 책임감.
어쩌면 우리는 경력이 쌓일수록 이런 마음을 조금씩 잃어가는 건 아닐까. 나는 민서를 보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작게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따뜻한 동료로 기억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약국에서 나는 약을 조제하지만 가끔은 사람에게 배우고 있다. 스물셋이 남기고 간 건 가격라벨 디자인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온도였다. 그 온도를 나는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