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회에 가면 새 신자들은 약간의 특별 대우를 받는다. 예배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동선이 갈린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아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반면 새로 온 사람들은 따로 마련된 조용한 공간으로 안내된다. 아는 사람도 없고, 낯선 환경에 어색해할 새 신자들을 위한 배려다. 그 공간에는 장로님 한 분, 부목사님, 그리고 집사님 한 분이 함께한다. 분위기는 정갈하고 조심스럽다. 말도 크지 않고, 웃음도 과하지 않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장로님은 나를 볼 때마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
“색소폰 한번 배워보세요.”
처음에는 웃으며 넘겼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말이 반복될수록 내 마음 한편에서는‘왜 하필 색소폰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다. 허리디스크 파열에 어깨 회전근개손상. 좋아하던 배드민턴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운동하던 시간을 다른 취미에 쏟을 수 있게 되었다. 일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하루의 리듬도 예측 가능해졌다. 그만큼 삶이 안정되었지만, 동시에 무언가 비어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손에 잡히는 취미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그런데 색소폰만큼은 아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 머릿속 색소폰은 이미 특정한 이미지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행사장 한켠에서 트롯 반주에 맞춰 불고 있는 모습. 소일거리처럼, 시간을 보내는 용도로 선택한 악기. 솔직히 말해 멋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악기는 모르겠지만 색소폰만큼은 싫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색소폰은 ‘나이 듦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내가 선택하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집사람은 그 무렵 이미 플루트를 배우고 있었다. 3~4년 전부터 개인 레슨을 받으며 꾸준히 연습하고 있었다. 레슨을 해주시던 분이 같은 교회 집사님인데 연세에 비해 밝고 세련된 모습이 인상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집사람은 내가 교회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길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유독 색소폰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번 배워보면 어때?”
“당신도 악기 하나 있으면 좋잖아.”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말을 돌리거나, 웃으며 넘겼다. 내 마음은 여전히 단단했다. 색소폰은 아니라고. 생각이 바뀐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하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젊고 아리따운 여성 연주자가 색소폰으로 팝송을 연주하고 있었다. 트롯이 아니었다. 멜로디는 익숙했지만 표현은 전혀 달랐다. 강약 조절이 섬세했고, 소리는 부드러웠다. 호흡이 음악을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그 영상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내가 색소폰을 오해하고 있었구나.’ 색소폰은 특정 장르에 갇힌 악기가 아니었다. 문제는 악기가 아니라, 내가 씌워둔 선입견이었다. 그날 이후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학원이 있는지 찾아봤고, 몇 군데 전화를 돌리다가 한 강사님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악기의 종류, 알토와 테너의 차이,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어떤 악기가 적합한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2024년 1월, 나는 생애 처음으로 알토 색소폰을 구매했다. 악기를 집에 들여놓던 날의 감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설렘보다는 어색함이 더 컸다.
‘내가 이걸 정말 불 수 있을까?’
‘괜히 시작한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처음 두어 달은 연주라고 부를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대부분은 소리를 찾는 연습이었다. 리드를 바꾸고, 입 모양을 바꾸고, 호흡을 조절하는 연습. 리드는 얇게 깎은 나무 조각인데 사람의 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풀피리처럼 아주 가느다란 떨림을 통해 소리의 시작을 만들어준다. 처음부터 두꺼운 리드를 쓰면 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 헬스장에서 처음부터 무거운 아령을 들지 않듯 리드도 약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번호가 낮을수록 얇고, 높을수록 두껍다. 보통 초보자는 2호부터 시작한다. 교재도 필요했다. 강사님은 『알프레드 색소폰 교본』을 추천해 주셨다. 나는 그 책을 펼쳐놓고 한 장, 한 장 아주 천천히 진도를 나갔다. 입으로 부는 악기는 처음이었다. 입술이 아픈 게 가장 힘들었다. 연습을 하고 나면 입술이 얼얼했고 다음 날 다시 불면 또 아팠다. 처음에는 소음에 가까운 소리가 났다. 갈라지고, 흔들리고, 불안정했다. ‘내가 과연 이 악기를 다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리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 첫 과제로 받은 곡〈Over The Rainbow 〉였다. 복잡하지 않은 멜로디. 이미 귀에 익숙한 곡. 나는 한 음, 한 음을 조심스럽게 불었다.
음정과 박자에 맞추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연주가 끝났을 때 누가 들어준 것도 아니었고 박수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서 꽤 만족스러웠다. ‘아, 나도 소리를 낼 수 있구나.’ 그 단순한 사실이 그날은 꽤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색소폰을 배운다는 건 악기를 하나 더 갖는 일이 아니었다. 중년에 들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 처음부터 서툴러지는 것을 감수한다는 것, 속도를 늦추고 자기 호흡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었다. 약사로 일하며 나는 늘 빠르고 정확해야 했다. 정답이 있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색소폰에는 정답이 없었다. 잘 불기보다는 꾸준히 불어야 했고, 빨리 늘기보다는 천천히 익숙해져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의 리듬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불어본 그 소리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분명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이제는 조금 느려도 괜찮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