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에세이
약국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설명을 한다. 약의 이름, 성분, 복용 방법, 주의사항. 입에 붙은 말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설명들이다. 하지만 설명이 끝났다고 해서, 이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약국 근처 아파트에 사는 6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있다. 멀리 있는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들고 와 늘 우리 약국에서 조제를 맡긴다. 없는 약이 있어 다음 날 다시 오셔야 할 때도 있었지만 “집이 가까우니까 괜찮다”는 말로 불편함을 삼키곤 하셨다. 특별히 까다롭지도, 말이 많은 분도 아니었다. 어제도 그분은 평소처럼 처방전을 들고 오셨다. 두 가지 약으로 구성된 처방이었다. 그중 하나는 흔히 쓰이는 위장약이었다. 같은 성분의 약이라도 제약회사는 수없이 많다. 약국에는 모든 회사의 모든 약을 갖출 수 없다. 재고 상황에 따라 같은 성분의 다른 회사 약으로 대체조제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설명했다.
“성분은 같고, 제약회사만 다른 약입니다.
이렇게 바꿔서 드려도 괜찮으실까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별다른 질문 없이 약국을 나섰다. 그날도 설명은 무리 없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30분쯤 지났을까. 약국 전화벨이 울렸다. 처방전을 발급한 의료기관 관계자였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목소리는 다소 날이 서 있었다. “환자분 말씀을 들어보니 약국에서 쓰려는 약으로 처방전을 바꿔 달라고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런 약은 우리 병원 전산 리스트에 없는데 왜 처방 변경을 요구하신 겁니까?”
나는 잠시 상황을 정리한 뒤 차분히 설명했다. “환자분이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처방전을 수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동일 성분 대체조제라 약국에서 자체적으로 조제하면 되는 부분이고요. 환자분께 동의를 구했을 뿐,병원에 요청해 달라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분명 설명을 했다. 대체조제라는 말도 꺼냈고, 성분이 같다는 점도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그 설명은 환자의 머릿속에서 다른 의미로 바뀌어 전달된 듯했다. ‘약국에서 약을 바꾸려면 병원 처방도 바꿔야 하는 것’으로.
약국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복약지도를 열심히 듣는 분도 있고, “바쁘니까 빨리 약이나 달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대체조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분도 여전히 있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수긍하는 편이다. 없는 약 때문에 다른 약국을 찾아다니거나 며칠 뒤 다시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보다 같은 성분이라면 지금 바로 약을 받는 쪽을 선택한다.
코로나 이후 약 수급 상황은 눈에 띄게 불안정해졌다. 어제까지 충분히 있던 약이 하루 이틀 만에 자취를 감추는 일도 흔하다. 환자는 불편해지고, 약사는 매번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올해부터는 대체조제 사후 통보 절차가 간소화된다고 한다. 약국의 행정 부담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대체조제가 쉬워지는 방향’이다. 하지만 설명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사람의 이해 속도가 함께 바뀌지는 않는다. 약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성분을 확인하고, 기준을 지키면 된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늘 어렵다. 설명은 했지만, 그 설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항상 알 수 없다. 그래서 약국에서는 조제보다 설명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리고 그 설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오늘도 나는 약을 건네기 전에 한 번 더 말을 고른다. 설명이 이해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