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위 달빛처럼

우먼타임스 2022.07.21

by 최희정

거센 빗줄기가 퍼붓던 며칠 전 수원에서 ‘옥상 위 달빛이 만나는 자리’라는 인상적 제목의 연극을 보았다. ‘얘기 씨어터 컴퍼니’가 올린 이 연극은 죽고 싶어 옥상으로 올라온 네 사람의 이야기다.



조그만 싱크대 가게를 운영하는 중년의 자영업자. 그는 일이 줄어들고 늘어난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어느 고층 아파트의 옥상에 올라간다. 새아버지와의 문제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여고생. 그도 죽고 싶어 옥상을 찾는다. 경제 문제로 시작된 부부싸움으로 함께 죽겠다는 젊은 부부도 등장한다.



이 네 사람은 우연히 같은 옥상에서 만나 서로의 상처와 절망을 털어놓는다. 그러다 서로 공감도 하고 위로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둥 번개가 치자 그들은 살기 위해 옥상에서 내려가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겠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문은 망가져 열리지 않는다. 네 사람은 힘을 합쳐 살려달라고 외치기도 하고 옥상에서 나가는 문을 열려고 애쓴다. 죽으려고 하던 사람들이 살려고 힘을 합친다. 그리고 살아서 옥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간다. 네 사람 중 누구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없지만 ‘죽자’에서 ‘함께 살자’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죽고픈 사람들의 살고픈 이야기다.



누군가가 삶의 희망을 잃고 힘들어할 때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위로를 보내며 응원해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SNS에서 보았다. SNS는 온라인상에서 이용자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교류한다.



SNS는 가상의 마을이라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일어난다. 서로 어울려 이런 저런 일을 털어놓고 재미있게 지내기도 하지만 댓글로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한다. 현실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SNS는 인생에 쓸모없는 시간 낭비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옥상까지 올라가는 절망적 상황에서 누군가가 익명의 힘을 빌려 힘든 고백을 하면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는 댓글을 달아준다. 이름도, 얼굴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잘 모르지만 아픔을 공감하고 어루만져 준다. 자신이 겪었던 비슷한 경험을 말해주면서 다독여 준다.



어떤 때는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격려와 응원의 글을 보낸다. 비록 한두 줄의 짧은 글들이지만 이 글을 읽는 그 사람은 옥상 위에서도 달빛을 바라볼 수 있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당장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두 손으로 닦아내기 벅찬 눈물을 수백 수천의 손이 모여 같이 닦아주면 눈물은 그칠 수도 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도 이런 경우를 보았다. 위중한 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느 작가의 소식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사람이 댓글로 그의 건강회복을 빌어주었다. 서로 만나본 적도 없고 잘 아는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격려의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놀라고 감동했다.



나도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넘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한테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서 걸을 수 있게 됐다. 적지 않은 사람이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과 어깨를 맞대어 살아가게 된다. 연극이 끝나고 사람들과 헤어질 무렵이 되었을 때 폭우가 그쳤다. 그날 오랜만에 본 연극 한 편이 내게 말했다. “당신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옥상 위 달빛이 되어 주라”고.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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