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열치열의 보은

우먼타임스 2022.07.05

by 최희정

일찍부터 더위가 시작됐다. 연일 30도가 넘는다.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아 습기도 많다. 작년에 언니가 보낸 삼계탕을 끓이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 언니는 찹쌀과 인삼이 살짝 덜 익었으니 다시 푹 끓여서 먹으라는 문자를 보냈다. 처음 이 문자를 보았을 때는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피곤했고, 날은 더웠고, 밤에 출근할 생각에 마음이 바스락거렸기 때문이다.


덜 익은 것을 먹을 수는 없는지라 할 수 없이 다시 끓이다가 냄비 뚜껑을 열어보았다. 닭의 양다리를 야무지게 실로 묶은 모양이 보였다. 문득 머릿속에 언니가 삼계탕을 만드는 과정이 스쳐간다.


마트에 가서 닭을 사고 찹쌀을 사고 다른 재료도 샀을 것이다. 내 것과 엄마 드릴 것과 식구들 먹을 것까지 최소한 대여섯 마리를 샀을 것이다. 무거웠겠다. 그것들을 주방 개수대에 서서 하나하나 다듬었을 것이다.


생닭을 다듬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복숭아나 사과 같은 과일을 씻는 일과는 기분이 다르다. 생닭 특유의 차가움과 미끄러움을 손에 느끼면서 뭉쳐있는 노란 지방 덩어리를 뜯어내고 닭 안쪽의 내장 찌꺼기도 손가락으로 제거해야 한다, 개수대에 물을 틀어놓고 오랜 시간을 들여 손질하는 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상상만으로도 내 허리가 아팠다.


기본 준비를 끝냈으면 불린 찹쌀과 황기, 인삼, 대추, 마늘 등등을 닭 뱃속에 넣어야 한다. 이것도 만만치 않은 수고가 드는 작업이다. 닭 한 마리마다 재료가 골고루 빠짐없이 들어가게 신경 쓰며 넣어야 한다. 불린 찹쌀이 흩어지는 것을 조심조심 숟가락으로 다독이며 속을 넣었겠지. 그래도 조리대 여기저기에 찹쌀 몇 알이 떨어졌겠지. 닭이 익다가 속이 터져 나오지 않게 잘 여며 실로 다리를 묶는 일도 은근 번거롭다. 그리고 조리대에 뚝뚝 떨어진 물을 닦고 생닭 비린내를 없애야 하는 뒷정리도 쉽지는 않다.


무더위로 집 안까지도 다 달구어진 대낮에 닭을 끓이는 일은 이열치열의 경지를 넘어선다. 라면처럼 우르르 삼분 끓이면 되는 일이 아니다. 몇십 분을 뜨거운 증기가 가득 들어찬 부엌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대여섯 마리를 한 번에 하려면 커다란 찜통으로 끓였을 것이다. 만약 세 마리씩 나누어 끓였다 하면 뜨거움에 지치는 시간이 두 배가 된다.


식구들 먹이고 엄마랑 내 몫을 통에 담고 나면 설거지가 남는다. 닭기름이 번지르르 칠이 된 그릇들은 보통 밥그릇 설거지처럼 쉽지 않다. 꼼꼼히 구석구석 닦아도 그릇에 끈적함이 남는다. 기름기 없이 설거지하는 것 또한 더위엔 중노동이다.


이렇게 닭을 사고 끓이고 먹고 치우는 일은 종일이 걸린다. 언니의 문자대로 하는 김에 한 마리 더 했다고 생각하면 너무 뻔뻔해진다. 푹 더 끓여서 먹으라는 걸 귀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염치없다. 더운데 이런 고생하지 말고 사 먹으라고 하는 말도 성의를 무시하는 거다. 나를 먹이고자 하는 언니의 수고를 생각하니 미안함이 고개를 든다. 언니는 전업주부라서 출근 걱정 없이 집에서 푹 쉬니 좋겠다고 부러워한 마음도 부끄럽다.


나는 성가셔하던 마음이 미안함으로 바뀌는 경우를 자주 겪는다. 혼자 성가셔하고 혼자 미안해하니까 밖으로 표는 안 나지만 부끄러움으로 붉어지는 내 마음을 내가 안다. 닭을 겨우 반 시간 끓였는데도 집안이 후끈하고 냄새가 가득했다. 꺼내서 대접에 담는데 내 얼굴에 뜨거운 김이 훅 끼쳐왔다. 마음도 고마움으로 뜨거워졌다.


작년 삼계탕의 고마움을 올해 옥수수로 갚았다. 언니는 찐 옥수수를 아주 좋아한다. 마침 아는 분 중에 강원도 찰옥수수를 파는 분이 생각났다. 언니네 집으로 옥수수를 보냈다. 보내면서도 요즘 언니가 손목이랑 팔꿈치 인대가 아프다는데 괜히 일을 만들어 아픈 팔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했다. 옥수수 30개를 껍질을 까고 수염을 정리하고 씻고 쪄내는 일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작년의 나처럼 귀찮아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했다.


하지만 언니는 찐 옥수수 사진을 내게 보내주면서 맛있다고 고마워했다. 형부랑 둘이 하루 대여섯 개 먹는단다. 세상에나! 언니의 문자를 받고 기분이 좋아졌다. 또 삼계탕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올해도 언니가 정성껏 장만한 삼계탕을 먹을 복을 누릴 수도 있겠다. 이 더위에 이열(以熱)을 치열(治熱)로 갚아놓고 내가 이렇게 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