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으로 다시 피어라

우먼타임스 2021.10.07

by 최희정

죽어도 다시는 병원에 취직하는 일은 없을 거야. 종합병원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다 결혼과 동시에 생긴 허니문 베이비를 핑계로 병원을 그만두던 날 다짐을 했다.



허리통이 좁아 불편했던 하얀 원피스 유니폼은 이제 안녕! 퉁퉁 부은 발을 옥죄던 흰색 널싱 샌들도 안녕! 머리카락을 뜯어대던 딱딱한 흰색 캡도 안녕! 응급실에만 오면 반말을 찍찍해대던 외과 인턴 너도 안녕, 새벽 한 시 술 냄새와 피 냄새를 풍기며 응급실을 휘젓던 취객들도 안녕, 열이 이렇게 펄펄 끓는데 왜 우리 애 먼저 안 봐주냐며 앙앙 울어대는 애기 옆에서 애보다 더 크게 악악 소리를 지르던 젊은 아빠도 안녕! 안녕, 안녕 나는 이제 떠난단다, 아~아~안~녕!



나의 십 대는 간호사를 꿈꿔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천문학과를 가서 우주의 별을 보겠다고 꿈꿨다. 생물학과에 가서 식물을 연구하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은 미대에 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쓸데없는 것들을 배워서는 돈 벌기 힘들다고 하셨다. 80년대 그 시절 완고한 부권 아래 별들은 블랙홀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절대권력 가부장 앞에 식물들은 우수수 잎을 떨구고 시들어버렸다. 미대는 무슨 미대냐는 소통불가 호통 앞에 그림 그리고 싶은 꿈은 막막하게 닫혔다. 다가올 시대는 여자도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앞선 의식과 유교문화의 완고함을 겸비한 아빠는 내 대학 입학 원서에 간호학과를 써넣으셨다. 내가 아니라 아빠가 쓰고 아빠의 도장을 쾅 찍으셨다. 그렇게 간호학과를 가서 간호사가 되었다.



처음 근무한 곳이 하필이면 응급실이었다. 돌발 사건사고가 지뢰처럼 터지는 응급실 근무는 힘들었다. 역한 피비린내가 없어지기도 전에 다시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에 내 심장이 먼저 터질 것 같았다. 지금도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두근두근 긴장된다.



그 와중에 결혼도 했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이 되었다. 병원 3교대 근무를 하면서 육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어머니든 친정엄마든 언니든 하다못해 시누라도 육아 전담자가 있어야 한다. 나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와 언니와 시누가 다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 주변의 어느 여자도 내 아이를 나 대신 길러줄 형편이 못되었다. 어쩔 수 없이 퇴직을 했다. 아니 당당하게 내가 싫어하던 간호사라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털끝만큼의 미련도 없이 떠났던 간호사로 2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4년 전이다. 여섯 살 터울 두 아이의 오랜 육아를 끝내고 다시 일을 하려고 했을 때, 나는 쉰을 두 달 앞두고 있었다. 이십여 년간 나의 경력은 가사와 육아밖에 없었다. 가사노동은 투명한 경력이라 사회에서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다. 여성은 자신의 황금기를 녹여 육아를 하지만 이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인으로 내 이름과 경력을 갖고 싶었다. 결국 간호사 자격증을 꺼내 들었다. 자격증에서 이십여 년 전의 피비린내와 사이렌 소리가 배어 나왔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그래도 내 이름으로 살고 싶어 다시 취업을 했다.



그렇게 취직한 곳이 요양병원이다. 이곳에는 내 엄마 연배의 할머니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6.25 전쟁을 겪고 새마을운동의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자식을 낳고 먹이고 가르친 분들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가장 좋은 시절에 자식을 돌보는 일을 하셨던 분들이다.



이 분들은 평생 돌봄 노동을 하셨지만 돌보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돼 요양시설로 보내지고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으며 비로소 자기 이름을 찾는다. 어머님이라고 칭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나는 꼭 이름을 불러드린다. 당신의 이름으로 사는 시간을 드리고 싶어서다. 그분들이 살아온 시대가 느껴지는 이름이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불러드린다.



정‘귀연’님, 오늘 머리에 꽂은 꽃핀은 정말 귀여워요.


박‘춘화’님, 아직도 얼굴이 봄날 꽃처럼 고우세요.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