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2021.10.15
몇 년 전 30여 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다. 한 친구가 나와 초중고 동창이었고 같은 골목에 살았다는 말을 했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내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키가 훤칠하시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형이었고 목소리도 카리스마 있으셨단다. 한문도 많이 알고 계셔서 동네 사람들이 어려운 서류 같은 것을 우리 집에 가져와 설명을 듣곤 했단다. 밥상에서 자기 부모님이 내 아버지가 필체도 참 좋더라고 칭찬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는 말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웃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식구들이 잠든 늦은 밤 딸깍 현관문이 열렸다 다시 잠기는 소리가 난다. 아버지께서 주무시기 전에 현관문이 제대로 잠겼나 다시 확인하는 소리다. 새벽 잠결에 방문이 살짝 열렸다 조용히 닫히는 소리가 난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오셨던 아버지가 잠자는 자식들이 별일 없는지 확인하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다.
결혼 후 경제적인 문제로 너무 힘들어서 친정이고 친구들이고 다 연락을 끊었던 때가 있었다. 전화선도 빼놨었다. 어느 날 전화선을 다시 꽂는데 바로 벨이 울렸다. 다시 전화선을 뽑아버릴까 말까 고민하면서 전화기를 한참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애비다.”
“......네.”
“그래 전화받았으니 된 거다. 끊는다.”
결혼한 딸에게 생전 전화를 건 적이 없던 아버지는 내가 친정에 발걸음도 안 하고 연락조차 하지 않자 거의 매일 수시로 전화를 하신 것 같았다. 그때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는 지금도 가끔 귀를 울린다.
아버지의 나이 서른일곱이었던 찬바람 불던 어느 밤, 신열에 까부라진 어린 다섯 살 아들을 안고 종종걸음으로 뛰듯이 걷던 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픈 아이가 추위로 더 아플까 봐 군용 담요에 둘둘 말고 다시 이불로 감싸서 업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버지는 들듯이 안고 뛰듯이 걸었다. 논밭과 하천 사이 둑길을 삼십 분은 걸어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 일곱 살의 나를 아버지와 함께 보냈다.
“빨리 와, 빨리!” 아버지가 소리를 지른다. 작은 가방을 들고 뒤처져있던 나는 어둠 속에 울리는 다급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무서워 뛴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고 목덜미는 흘러내린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 아들이 열한 살이었을 때 일기장에 공부하기 싫다고 쓴 적이 있었다. 우연히 그걸 발견한 아버지는 아들을 때렸다. 기다란 각목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동생 몸에 생긴 자줏빛 멍은 여름방학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권위적이었고 폭력적이었다. 내게 아버지는 완고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마주 보고 환하게 웃어본 적이 없다. 얼른 조용히 눈치채지 못하게 피하곤 했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공부를 핑계로 집에 늦게 들어갔다. 아버지와 둘만 있는 집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끔 당신을 피해 얼른 집에서 나가려고 후다닥 신발을 꿰어 신는 나를 불러 세워 용돈을 주셨다. “이거 받아라” 딱 한 마디 하시면서 얼굴도 마주 보지 않고 옆으로 주셨다.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아버지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얼마 전에 엄마한테 아버지가 내게 몰래 용돈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깜짝 놀랐다. 니네 아빠가 그랬다니 하며 신기해하신다. 매일 밤 문단속을 해주시고 자는 아이들을 살피던 아버지의 모습은 엄마도 기억하고 계셨다. “니네 아빠가 깐깐하긴 했지” 그러신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밤이면 현관문을 다시 잠그고 살며시 아이들 방문을 열어보곤 한다. 아픈 아들을 안고 다급하게 병원에 갔던 날도 엄마는 기억하고 계셨다. “그때 얼마나 추운 날이었는지...수중에 돈도 몇 푼 없었지” 하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엄마는 아직도 아버지가 직접 내게 전화해서 내 안부를 확인했던 일은 모르신다.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안도하던 아버지의 그 목소리는 나만 기억하고 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굵은 가시를 많이 달고 딱딱한 껍질로 우뚝 서있는 선인장이다. 찔릴까 봐 상처 입을까 봐 그 선인장에 선뜻 다가갈 수가 없다. 뾰족한 가시들 사이로 피어있는 붉은 꽃 몇 송이가 어둠을 밝히는 불빛같이 빛난다. 격동과 고난의 한국사를 살다 가신 1932년생 내 아버지는 ‘사막 선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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