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린 사랑을 나누지

우먼타임스 2021.11.04

by 최희정

"너 온 김에 가려고. 나 혼자 가려면 택시 불러야 하고. 택시에서 내려서 가려면 힘들고. 너 바쁘면 안 가도 괜찮아.”



“아이고, 갑시다, 가요.”



얼마 전에 엄마에게 갔다. 잠깐 들러서 반찬만 전해드리고 얼른 오려고 나선 길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무릎이 더 뻑뻑해진 것인지 엄마는 제대로 걷지를 못하셨다. 병원에 가서 무릎 통증을 가라앉히는 주사를 맞고 싶다 하신다. 예정에 없던 일이고 병원까지 모시고 왔다 갔다 하려면 족히 두 시간은 걸릴 것 같아서 며칠 뒤 다시 와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너 바쁘면 안 가도 된다는 말에 결국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엄마와 80년을 넘게 함께한 엄마의 무르팍은 이미 연골이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러니 수시로 아프다. 아프니 걷기가 힘들다. 직립보행의 인간이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건물 1층에 엘리베이터가 서고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내리고 다시 우르르 탄다. 엄마처럼 보행보조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순서가 마지막이다. 엄마가 타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움찔거린다. 나는 재빨리 열림 버튼을 누르고 엄마가 탈 때까지 기다린다. 안에 탄 사람들이 서로의 간격을 좁혀준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위축된다. 엄마는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다.



어르신 한 분이 더 타신다. 안과가 있는 3층을 누르신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는 출발했다.



“안과가 아닌데…. 아, 이비인후과, 내가 거기에 가려고 했지!”



어르신의 입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몸에서 손가락을 뻗어 버튼 누르는 동작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얼른 4층을 눌러드 린다. 그분은 이비인후과가 있는 4층에서 내릴 수 있었다. 내 엄마가 제대로 내린 것처럼 다행한 마음이 든다.



엄마가 가려는 병원은 5층이다. 5층에 도착해서 내리려던 엄마가 이 병원이 아닌 것 같다고 잠깐 망설이며 밖을 기웃거리신다. 올해 들어 가끔 이러신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 문은 다시 닫히고 1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엄마 혼자 왔을 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엄마는 당황했겠다. 병원에 같이 가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순간이 미안해진다.



1층에서 다시 문이 열렸다. 문 바로 앞에 엄마가 사용하는 것 같은 보행 보조기가 문을 막고 있다. 그 뒤에는 엄마보다 더 구부정하고 몸이 굽은 할머니가 한 분이 서 계신다. 내리는 사람들은 할머니를 비켜서 몸을 옆으로 돌려서 내린다. 예전 같으면 엘리베이터를 막고 있는 사람을 속으로 욕했을 텐데 나는 그저 열림 버튼을 누르고 할머니가 탈 때까지 기다린다. 이제는 문이 닫히기 전에 타야 하는 절박한 그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붙은 안내표지판을 읽어본다. 2층은 약국이고 3층에는 한의원과 치과와 안과가 있다. 4층에는 내과와 이비인후과, 5층에는 재활의학과와 통증클리닉이 있다. 오래된 시장 안에 있는 이 건물은 층층이 병원이다. 주로 어르신들이 이용한다.



병원에 오는 어르신들은 걸음이 느리거나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보조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엄마도 유모차처럼 생긴 보행보조기를 이용하신다. 엄마는 당신의 두 발로 걸을 때보다 지팡이를 이용해 걸을 때 느려졌다. 보행보조기를 이용해 걷게 되면서는 아주 더 느려졌다. 두 손으로는 보조기를 잡고 있어야 하니 간단하게 약을 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일도 쉽지 않다. 외출할 때마다 준비도 번거롭고 힘들어졌다.



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나는 엄마가 지팡이를 짚기 전까지는 ‘천천히’와 ‘느리게’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다. 운전대를 잡고 앉아서 이미 빨간불이 켜진 건널목을 느리게 건너는 어르신들을 기다리며 혀를 쯧쯧 차기도 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진다. 이제는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다. 당연히 기다리고 저절로 기다리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노래가 흐른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린 사랑을 나누지



지하에서 위층까지 벨이 울릴 때까지”(*)



노래 가사에서는 젊은 남녀의 격정적인 사랑이 느껴진다.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사랑의 뜨거움도 느껴진다. 층층이 병원이 들어찬 낡은 건물의 엘리베이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다. 하지만 젊고 격렬해야만 사랑이랴.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기다려주는 것도 사랑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열림 버튼을 누른 채 기다려서 느린 몸을 이끌고 나온 어르신들과 함께 타고 가는 것도 사랑이겠다.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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