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2021.11.15
“여기 있으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은 다 무언가를 하면서 변하고 있는데 나만 아닌 것 같아요.”
휴가를 나온 너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지. 평상시 진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던 네가 저런 말을 해서 속으로 좀 놀랐어.
네가 복귀하고 며칠 후에 마당을 보니 국화가 피었더라. 노란 감국이야. 엄지손톱보다 작은 꽃들이 가느다란 가지에 옹기종기 앉아있더구나. 베란다 문을 열면 집 안으로 향기가 물씬 들어온단다.
작년에는 국화가 피지 않았었지. 집 주변에 여러 색의 국화가 핀 것을 보았지만 우리 집에는 피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 집 마당에 국화가 있는지 몰랐단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년 봄에 마당에 수국을 심은 일이 기억나더라. 그것들을 심느라 삽으로 땅을 파헤쳤었지.
아마 마당에 자리 잡고 있던 국화의 뿌리는 예기치 못한 삽질로 들쑤심을 당했을 거야. 자리 잡았던 땅을 놓치고 엉키고 망가졌겠지. 틀림없이 잘려 나간 부분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작년에는 꽃을 피우지 못한 것 같구나. 하지만 올해 꽃이 핀 것을 보니 국화는 자신의 뿌리를 다독이고 다시 자리 잡는 일에 일 년 동안 힘을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오래전 땅에 처음 내려앉았던 씨앗이었을 때처럼 말이야. 실핏줄같이 가느다랗게 몸을 늘여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이면서 몸을 튼튼히 했겠지. 작년 한 해 동안 땅 위로 싹을 내미는 대신에 땅속에서 굵어지고 넓어지고 단단해지는 일에 힘을 썼나 봐. 흙을 꽉 움켜쥐고서 흔들리지 않게.
네 말을 듣고는 국화가 떠올랐어. 지금 군대에 있는 시간이 멈추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저 국화처럼 뿌리를 키우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사람도 식물처럼 뿌리를 키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중학교 졸업할 무렵에 엄마가 1년 정도 쉬었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었잖아요. 솔직히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은 이해가 돼요.”
맞아, 네가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곧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보다는 1년간 휴식기를 가져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면 빡빡한 수업과 반복되는 시험으로 느긋하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볼 여유가 별로 없거든. 그래서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고 열일곱 살의 한 사람으로 너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기를 바랐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간 지금에라도 예전에 엄마가 했던 제안을 이해해주니 다행이네. 제대하고 나서 바로 복학하지 않아도 괜찮아. 1년 정도 휴학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지? 요즘 개인 시간이 주어지는 주말에는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고? 제대 후에는 모아놓은 돈으로 미술 학원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네 말을 듣고 기뻤단다. 늦지 않았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을 축하해. 네가 그 일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을 응원해주고 싶단다.
꿈을 이루는 일은 저 마당에 피어난 국화와 같아. 국화도 처음에는 하나의 씨앗으로 땅에 자리 잡았을 거야. 씨앗은 자라기 좋은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 먼저 뿌리를 깊게 내리고 싹을 올렸을 거야. 땅 위로 솟은 손톱만 한 싹 아래로는 몇 배나 더 긴 뿌리가 자라 있단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싹은 빗물에 쓸려가거나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이 뻔해.
너도 시간의 공을 들이며 너의 뿌리가 깊게 자라도록 해 봐. 자라는 것은 땅 위로 솟구치는 일만이 아니고 땅 아래로 넓고 깊게 다지는 일도 포함되거든. 씨앗의 틈을 벌릴 적당한 시기를 고르는 쉼도 필요하지. 성급히 마른 씨앗을 쪼갠다고 꽃이 보이지는 않으니까.
“엄마, 살면서 한 번쯤 자기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을 해봐도 되지 않아요? 먹고사는 일 말고요. 난 그렇게 살고 싶어요.”
마당에 노란 감국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자주색 꽃도 보이더라. 자세히 보니 꽃봉오리를 매달지 못하고 있는 풀보다 가느다란 줄기들도 있어. 그것들은 올해는 꽃을 만들지는 못하겠지. 그렇다고 국화가 아닌 것은 아니란다. 더 자라면 된단다.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봐. 한 번 해서 이루지 못했다고 그만두지 말고 또 해봐. 해마다 새로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처럼. 어떤 식물들은 해를 걸러 꽃을 피우기도 한다더라. 심지어 어떤 식물은 십 년에 한 번 꽃을 피우기도 한단다. 식물도 다 똑같지가 않으니까 그럴 수 있어.
저 국화가 1년 동안 땅에서 뿌리를 가다듬고 자리를 잡아 싹을 틔우고 자라 이 가을에 꽃을 피운 것처럼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단다. 저 국화는 올해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내년 혹은 후년에 꼭 꽃을 피울 거야.
가던 길이 막히면 돌아서 가도 괜찮아. 바위를 뚫는 뿌리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뿌리는 바위를 피해서 자라지. 또 하나의 뿌리가 다른 곳으로 뻗어 새로운 장소에 새 줄기가 올라오기도 해. 그러니 너도 새로운 꿈이 생기면 또 그 꿈도 키워보렴.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너를 응원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 편지를 썼단다. 그리고 이 말도 꼭 해주고 싶어. 단, 네 밥벌이는 네가 해야 해. 명심해^^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