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2021.12.02
“하지 마, 아파.” 어! 례 할머니의 목소리다. 치매로 입원한 할머니는 몇 년을 일반 병실에서 지내다가 최근에 열이 나고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중환자실로 오셨다. 며칠 동안 식사도 못 하시고 영양 성분이 들어있는 수액 주사만 맞고 계셨다. 이름을 불러드려도 대답을 못 하셨다. 많이 아프던 날에는 눈도 못 뜨셨다. 자식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정도였다. 그러던 할머니께서 기력을 조금 회복하셨는지 새벽에 갑자기 말을 하셨다. 단 두 마디였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닫으셨다.
아침에 출근한 동료 간호사들에게 할머니의 소식을 전하자 놀라며 반가워했다. 마치 돌 지난 아기가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처럼 신기하게 여겼다. 면회를 온 따님도 엄마의 근황을 전해 듣고 정말 좋아했다. 엄마, 엄마 부르면서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딸 앞에서는 아무 말씀도 못 하셨다. 그래도 딸은 행복해했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나도 안다.
그분은 맑은 새벽 기운에 잠시 정신이 드신 것이다. 따님이나 병원 사람들이나 례 할머니의 상태가 아주 좋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남은 생도 지금처럼 누워서 지내실 것이다. 여전히 콧줄이라는 비위관을 통해 유동식으로 연명하실 것이다. 어느 날 또다시 많이 아프실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가 다시 말문을 여신 것이 기쁜 마음은 무엇일까?
노인 환자들이 많은 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몇 년씩 누워계시다 돌아가시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 걷던 분이 어느 날 서지 못하고 결국은 앉지도 못하고 누워만 지내신다. 혼자 식사를 잘하시던 분이 어느 날 물 한 모금도 자기 힘으로 삼키기 힘들어하신다. 노래도 하고 웃기도 잘하시던 분이 눈만 깜박거리신다. 먹여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고 목욕을 시켜주어야 한다.
아기를 돌보는 것과 같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아이들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쁘지만 노인의 삶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깝다. 그러다가 아주 먼 소풍을 떠나는 모습은 여러 번을 겪었어도 혼란스럽다.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계신 례 할머니를 지켜보는 일도 그랬다.
하지만 할머니의 몇 마디 말 그 자체에 기뻐하던 순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의 삶은 시간이 모인 것이다. 어린 아이나 젊은이, 삶의 막바지에 이른 노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의 기쁘고 슬프고 즐거운 일들 모두가 한 사람의 인생에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당연하다. 삶의 마지막을 앞둔 노인이라고 해서 기쁠 일이 없지는 않다.
그날 오후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초겨울 흐린 날이라 쌀쌀했다. 찬란하던 단풍도 다 떨어지고 빈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목을 잔뜩 웅크리고 발밑을 보고 걷다가 민들레 한 송이가 핀 것이 보였다. 줄기도 없이 땅에 납작 붙어서 피었다. 봄에 피어야 할 꽃이 12월에 핀 것이다.
나는 꽃 앞에 발길을 멈추었다. 전에는 늦가을에 핀 봄꽃을 보고 때를 모른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을이나 겨울에 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든 잎들이 뚝뚝 떨어지는데 가지 한끝에 새로 꽃이 피는 나무를 봐도 그럴 수도 있다고 끄덕인다. 언제건 어디서건 피어나는 것들은 순간순간 살아가느라 애쓰는 것들이다. 나는 례 할머니를 생각하며 춘삼월이 아닌 동지섣달에 피어난 민들레 꽃에게 피어줘서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본다.
출처 : 우먼타임스(http://www.women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