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래부터 하나이다.

2. 1R 1일차_2nd: <서울편>2.서울-부산 국토종주의 의미

by Hiker 나한영

2. 서울-부산 국토종주의 의미


길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걷기

우린 지금 2023년 1월의 한 지점, 현재라는 시간에 있다. 그러나 우리 국토엔 수천 년의 역사가 쌓여 있다. 우리 땅을 걷는 것은 현재만이 아닌 수천 년 역사를 만나는 길이고 국토종주는 이 땅의 이야기를 듣는 걷기이다.

그래서 이 땅을 걸으므로 우리의 사고는 지금 현재에만 한계 돼 있지 않고 수천 년 전부터 미래로까지 무한히 확장된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다 같아 보이는 도시의 길가 한 모퉁이에 작은 표지석 하나가 전혀 다른 세상과 풍경을 만들 수 있다.

우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 것이다. 예를 들어 '남지터'라는 표지석을 보면 우린 머릿속에 연못을 그려 볼 것이고 왜 어떤 용도의 연못이었는지 궁금해질 것이고 그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았는지를 생각하며 옛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렇게 우린 길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고 배우면서 우리의 생각은 더 넓게 열리고 우리의 뇌는 더 풍성해질 것이고 우리의 마음은 더 성숙해질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밟는 흙 한 줌 돌부리 하나도 수천수만 년 우리 민족의 삶을 지탱해 온 우리 땅이고 수많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국토를 한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이어 걷는 국토종주의 뜻이 거기에 있고 매 발걸음이 소중한 이유이다.


일본의 발빠른 외교술에 애꿎은 우리가

특히 이번 서울-부산 사람길 국토종주는 조선통신사길을 고증 복원하는 뜻을 같이 갖고 있다.

일본은 임진왜란으로 우리 국토와 국민을 처절하게 유린해 놓고도 전쟁이 끝나자마자 뻔뻔스럽게 화친을 요청해 왔다. 일본으로서는 전후 재건과 내치內治를 위해 조선과의 관계 회복이 긴급했다.

고독한 섬나라 일본은 생태적으로 대외관계에 생존을 걸어야 했다. 이 때문인지 일본은 지금도 대외 원조에 많은 공을 들이고, 특히 외교술 하나는 신묘에 가깝다. 일본은 2차 대전 전범국가이고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을 먼저 공격해 놓고도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미국과 화친에 성공한다. 일본은 발 빠른 외교술로 전범국이 당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피해 갔다.

그 여파를 아무 죄 없는 우리가 당해야 했다. 독일처럼 전범국 일본이 분단됐어야 하는데도 일본 대신 피해국인 우리나라가 분단되고 말았다.


조선통신사행이 시작된 원인

임진왜란 후 새로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마도주 요시토시에 조선과의 복교 모색을 명한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후 사절이던 사명대사를 만나 "나는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직접 조선과의 통화를 청했다. 복교는 조선으로부터의 ‘권력 승인’ 의미도 있었다. 도쿠가와 입장에선 새로 집권하긴 했지만 1615년 오사카 전투 이전까지는 도요토미 파벌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한 상태라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명분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1606년 조선은 복교의 조건으로 왕릉 도굴범 인도, 일본 국왕의 사죄 서한, 피로인(억류 조선인) 송환을 요구했다. 대마도주 요시토시의 간지奸智로 보내온 국서와 도굴범은 진위 논란이 있었지만 조선은 그것으로 마무리하고 이듬해 통신사 파견의 결단을 내린다.

임진왜란은 동북아 세력 판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으로서도 중국에서 명나라가 쇠퇴하고 후금이 부상했기에 이들을 견제해야 했고, 일본도 안심할 수는 없었기에 양쪽에서 외적을 막아야 하는 최악의 사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통신사는 국내외 상황과 필요를 반영한 결단의 산물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길

결과적으로 일본에 신문물을 전파하러 떠났던 자랑스러운 길이며,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을 관문으로 해양으로 세계로 소통하는 한국의 실크로드가 조선통신사 길이다.

조선통신사길은 대내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녔다. 일본의 초청으로 왕명을 받아 가는 긍지와 자부심의 길이었고 국민 단합과 전란 극복의 위로와 치유를 향한 길이었다. 가는 길마다 지역민의 삶과 역사의 애환과 만나고 지역 예술인들이 만나는 상호 교류의 길이었다. 우리 국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길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같은 길이 필요하다. 대대로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땅의 모습을 보고 느끼며 우리 땅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원래부터 모두 하나이다. 단합, 긍지, 전파, 소통, 나눔, 교류, 치유, 위로, 재발견 같은 시대적 명제를 한국인 모두가 같이 공유해야 한다. 해남-고성 국토종주 때도 느꼈지만 그 해법이 길에 있다. 이번 서울-부산 사람길 국토종주는 조선통신사길의 의미를 같이 되새기므로 길이 갖는 소통의 의미를 배가시킨다.


600년 고도의 상징 경복궁을 나서다

이제 드디어 출발이다. 원래 조선통신사행은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불 타 빈 터만 있을 때이므로 첫 회를 덕수궁에서 출발했고 두 번째부터는 창덕궁에서 출발했지만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자 600년 고도인 수도 서울의 상징적 장소이므로 경복궁 뜰 안이 우리의 출발지가 되었다.

출발식을 하고 출발하려 하자 때에 맞춰 그전까지 굳게 닫혀 있던 경복궁의 문들이 열린다.

비가 잦아든 후 북악산 자락에 걸린 아침 안개가 경복궁을 휘감아 돌며 우리 단원들에게 스며들듯 촉촉한 배웅을 아끼지 않는다.

궁궐 문을 나서는 느낌이 남다르다. 400년 전 막중한 임무를 띠고 먼 길 떠나던 사행들이 느꼈던 감정의 일단이나마 느껴 본다.

용성문을 거쳐 광화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