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사람길 국토종주)의 감동 더하기 1. 오감으로 느껴라
5년 전인 2019년도의 이야기이다. 국토종주 7일째인 4월 13일은 광주 시내를 지나고 무등산 자락을 넘어 담양 소쇄원 앞에 도착하는 총 33km를 걷고 7시 50분에야 걷기가 종료됐다.
이날 이미 30km를 걸어 무등산 수박마을에 도착했을 때가 저녁 7시 20분경이었는데, 이미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짙게 내린 때였다. 그 시각에 저녁식사도 못하고 남은 3km를 더 가기 위해 우리 국토종주단은 무등산 끝자락인 원효계곡길의 캄캄한 숲길로 향했다.
해리포터의 금지된 숲으로 들어가듯 이미 칠흑처럼 변한 숲 속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많이 된 데다 어차피 경치는 못 보기 때문에 성큼성큼 거의 뛰다시피 숲 속 길을 걸었다.
그런데 신기한 경험을 했다. 들어서기 전까지 무서울 만큼 캄캄하게 어둠을 삼키던 숲 속이 왠지 포근하게 느껴졌다. 렌턴을 켰어도 눈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오감이 더 활발히 작동했는가 보다. 숲의 정감 어린 분위기와 상쾌함, 꽃향기가 달리듯 걷는 중에 코로 피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온몸으로 숲을 느꼈다.
그렇게 1.3km쯤 산자락의 캄캄한 숲길을 걸으니 숲 너머로 반짝반짝 마을 불빛이 보인다. 포장길로 내려서서 금산교를 건너 풍암천 제방길을 따라 담양에 도착했었다.
이때 나는 걷기 할 때 오감이 작동하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우리는 사물을 여러 감각기관을 동원해 동시에 느낀다. 대표적 감각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이다.
걷기 때도 이 오감이 사용된다. 미각은 사용되지 않는 것 같지만 걷다가 달래, 머루를 볼 때 상상 미각이 작동한다. 산딸기도 따먹고 산밤도 주워 먹게 되면 걸었던 그 길에 대한 기억이 더 진하게 남는다.
촉각은 언제나 사용된다. 무엇을 만져야만 촉각이 아니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 한줄기에 우리는 어느새 먼 곳으로 바람 따라 하늘을 날아가기도 한다.
후각은 제대로 길의 감흥을 알게 해 준다. 가는 곳마다 각종 꽃 향기, 땅 냄새, 어느 산골의 장 익는 냄새까지 걸었던 길을 기억하는 매개로 후각만큼 좋은 것도 없다.
청각은 참 묘하다. 도시의 소리는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높이지만, 자연의 소리는 있던 스트레스도 없애준다. 새소리, 물소리, 낙엽 밟는 소리, 비 오는 소리, 나뭇잎 부딛히는 바람소리까지 모든 자연의 소리가 내 죽어있던 감각을 일으키고 감성을 깨운다.
걸으며 우리는 발밑의 길만 보지 않는다. 내 눈앞에 180도 펼쳐지는 세상을 보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옆을 돌아보아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도 만물은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느끼는 감각은 감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낀 그대로 우리의 뇌를 성장시킨다. 단지 감각을 깨운 것이었는데, 뇌의 연상작용을 일으키고 이들이 조합돼 새로운 창의도 가능해진다.
이렇듯 걷기는 극상의 오감 활용 트랜섹션이다. 때문에 그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시에서 죽어가던 내 감성과 영혼을 살리고 살찌운다. 그래서 이왕 걸으려면 여러 감흥을 줄 수 있는 길, 오감이 흥분할 수 있는 새 길, 다양한 길을 걷는 것이 좋다.
일반적인 걷기만 아니라 사람길 국토종주를 할 때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경로가 같다 해도 한 발자국 사이로 다른 길이 보여주는 사물들과 그로 인한 감흥이 다르다. 옆에 한발자국 사이로 나란히 있는 포장길과 둑방길, 논두렁길, 천변길 중 어떤 길로 걷는가에 따라 보고 느끼는 오감이 다르게 작동한다. 그래서 밋밋하고 편한 포장길보다 이왕이면 피해 갈 것 많고 볼 것 많고 자연이 많은 길로 간다.
또 총 걷기 거리는 같지만 마을 안을 거쳐서 갈 수도 있고 마을 옆길로 바로 갈 수도 있다. 이왕이면 마을 안으로 가는 것이 좋다. 마을엔 도시와 달리 우리들 조상이 대대로 살아온 다양한 삶의 때가 묻어있다. 마을마다의 개성과 고유의 특징은 물론 지역의 요소나 국가급의 유적지도 만날 수 있다.
몸이 편한 것만 찾으면 굳이 걷기나 국토종주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조금 더 힘들여 걷기를 각오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걷기 효과를 우리 몸과 우리 감각에 선사할 수 있다.
즉 걷기가 다 같은 걷기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왕이면 많이, 새로운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길로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