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국토종주길 HANT 국토순례를 시작하며
걸어서 국토종주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선 왜 힘들까
무려 4,300km에 달하는 미국의 PCT를 걷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 국토를 종주하는 것과 거의 같은 거리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우리 국민 수십만 명이 비행기 타고 나가서 걸었는데 우리 땅을 걷는 국토순례는 왜 낯설게 느껴질까. 일본의 국토순례길에 해당하는 '장거리 자연보도'는 매년 수천만 명이 걷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엔 없을까.
이 모든 것의 이유는 한마디이다. 공식적인 도보 국토종주길이 우리나라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도를 이용해 걸을 수는 있겠지만 도보길이 아니다 보니 마음 편히 우리 국토의 다양한 모습을 보며 걸을 수 없다. 그러나, 길이 없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길을 만들어서 걸으면 되지 않는가. 이런 마음으로 6년 전 처음으로 도보 국토종주에 나섰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보길이 가능할까
차도인 국도가 아닌, 마을과 마을을 잇는 사람길로 걷는 것이 컨셉이었다. 국토의 최장축을 남북으로 잇는 국토종주의 온전한 뜻대로 본토의 최남단인 해남 땅끝점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최북단인 통일전망대 제진검문소까지 우리 국토를 대각선으로 관통해 걸었다. 사라져 가는 옛길을 잇고, 지역 친화적인 둘레길을 잇고, 시골 풍경을 담는 농로길을 이어 도보 국토종주길을 만들었다. 없던 길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국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미 있는 길을 그대로 활용한 길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총 34일 만에 946km의 도보 국토종주길이 완성됐다. 매일 걸은 것이 아니라 길을 연구하며 매달 2일씩 이어 걸어 1년 5개월이 걸렸다. 이 길을 소개할 책(사람길 국토종주)을 출간하고, 이 길을 그동안 도보 국토종주길이 없었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도보 국토종주길로 만들기 위해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2024년 '사람길 국토종주 트레일'이란 뜻의 HANT(Human Path Across the Nation Trail)로 명명하고 국토종주에 나설 단원을 모집해 2025년 2월 다시 새로 출발했다. HANT 1기가 시작된 것이다.(현재 HANT 3기까지 출범. HANT: hant.or.kr)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일시완주를 못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주말 이틀씩 이어 걷는 국토종주로 시작했다.
비로소 우리 국토가 우리에게 말을 건네다
국토는 언제나 변하는 생물과 같다. 우리 국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 국토가 변하듯, 있는 그대로의 국토의 모습을 보기 위한 국토종주길도 걸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외국이 아니라 우리 국토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국토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 발자국도 생략 없이 도보로 이어 걷는 국토종주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 땅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10여 개 국에 트레킹을 위해 다녀왔지만 내가 자라고 살아갈 우리 국토가 주는 감동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 국토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지금의 내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어쩌면 외국보다 더 생소해서 한국인으로서 이 땅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 국토가, 단순한 국토종주가 아닌 우리 땅과 만나기 위해 국토순례에 나서는 국토 순례자들에게 비로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우리 국토가 소중한 것처럼 국토순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 있는 발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 한트 개발자 나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