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과 탕후루

by 우나

‘멸종’이란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공룡일 것이다. 공룡 멸종 이전에도 지구는 이미 두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하지만 그건 이름도 낯선 고대 생물들의 일이라, 우리에겐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공룡은 다르다. 미디어 등으로 익숙한 공룡, 갑자기 날아든 소행성, 지구를 뒤덮는 화산 폭발과 지진. 그야말로 영화 같은 장면이다. 공룡 멸종을 이야기하려면,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아 있었는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지구의 역사는 약 45억 년이다. 그중 초기 7억 년 동안은 운석이 떨어지고, 하늘은 가스와 불덩이로 가득했다.

‘억 년’이라니, 감이 오는가? 지금이 고작 2025년인데. 공룡은 약 1억 8천만 년 동안 지구에서 살았다. 그리고 멸종했다.


생명의 시작은 약 38억 년 전, 그나마도 세포 수준에서 간신히 생존하던 존재였다. ‘동물의 조상’이라 할만한 생물은 약 5억 4천만 년 전에 나타났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건 30만 년 전. 그리고 ‘문명’이라 불릴만한 시기, 무리를 짓고 살 만한 집을 만들어 가죽 옷을 걸치고 살기 시작한 건 고작 5500년 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류가 굉장한 생명체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게 정말일까? 공룡이 1억 8천만 년을 살다가 멸종했다. 인류는 이제 고작 5500년의 문명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라 믿는다.


나는 이따금 ‘탕후루 가게’를 떠올린다. 한때 한국을 강타했던 열풍. 탕후루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누군가는 그걸로 집을 샀을지도 모른다. 유튜브 알고리즘엔 탕후루 영상이 넘쳐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탕후루 가게를 찾는 게 더 어렵다. 어쩌면 인간도, 지구의 탕후루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일까? 내가 이 시점을 인류 멸망의 전조로 보는 이유는 몇 가지다.


기후 문제

사계절은 이미 흐릿해졌고, 내가 사는 나라엔 5월에 우박이 내린다. 한국의 날씨는 동남아처럼 변하고 있다. 환경론자들은 앞다투어 경고하고, 어떤 이들은 기후 문제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스타들은 10분 거리도 전용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연예인들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만 해도 분리수거는커녕, 옷과 가구도 인터넷에서 몇 번 클릭이면 도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버리고 새로 사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됐다.


어른들은 말한다. 예전엔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고, 이렇게 덥지도 않았으며, 공기도 더 맑았다고. 그걸 단순히 추억 보정으로 여기는 건 너무 순진하다. 지구는, 정말로 망가지고 있다.


돈이 전부가 된 세상

세상의 풍조는 또 어떤가? 요즘 시대를 한 마디로 말하면, 미쳐버린 자본주의다. 돈 앞에서는 부끄러움도, 도덕도, 기준도 없다. 과거엔 벼슬에 올라 책을 내던 선비들이 존경받았다면, 지금은 그냥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라는 말만 돌아온다.


몇 년 전 LA의 한 파티에 초대된 적이 있다. 엔터테인먼트 일을 하는 친구 덕분에 가게 된 자리였고,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모델들도 와 있었다. 그중엔 내가 팔로우하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본업은 따로 있었다. 파티에서 스트리퍼로 일하고, 틈틈이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인플루언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자,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그렇게 힘든 일 왜 해? 이거 하루면 얼마 버는 줄 알아?” 그중 한 명은 원래 간호사였다고 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안쓰럽게 여기며, 에이전시를 소개해줄 테니 연락하라고까지 말했다.


나는 성노동에 반대하지 않는다. 성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고, 이 직업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충격받은 건, 그들의 말과 태도, 너무나 확신에 찬 ‘이게 더 낫다’는 시선이었다.


인플루언서들은 온리팬즈에 누드나 성관계 영상을 올린다. 캠걸 스트리머들은 어떤가? 하루 몇 시간만으로 몇 달치 월급을 번다. 그리고 10대들은 그걸 보며 꿈을 꾼다. 대학도, 꿈도 필요 없다. 돈을 많이 버니 스트리퍼가 최고라는 것이다. 틱톡만 켜도 쉽게 볼 수 있다. 비트코인으로 시작된 '한탕주의'도 마찬가지다. 이제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혐오와 분열이 대세가 됐다

몇 년 전,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한 남성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네덜란드의 저명한 일간지 기자였고, 한국의 남녀 갈등을 조사하러 간다고 말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그는 물었다. 왜 한국에선 젊은 남녀가 서로를 혐오하는지. 하지만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


최근엔 ‘패스포트 브로스’라는 백인 남성들이 생겨났다. 미국 여성은 너무 강해서 싫다며, 필리핀, 태국 등에서 '순한' 아시아 여성을 찾는다. 그들은 학비를 대주고, 미국으로 데려가 비자를 받아준다. 반대로 아시아에서는 서양 여자가 최고라고 말한다. 남녀를 바꿔도 똑같다.


미국, 호주, 유럽에서는 이민자를 몰아내야 한다는 시위가 한창이다. 물질적인 가치와 이념 차이로 몇 년째 전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어린아이들이 죽어 나간다. 서로가 서로를 상품처럼 평가하고 미워하는 세상. 혐오와 차별이 트렌드가 됐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떠오른다. 이게 과연 멸망이 아니면 무엇일까. 물론 당장 내일 인류가 멸종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전쟁도, 기후도, 자본주의도 당장은 인간을 무너지게 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멸망의 시점은 지금 태어나는 신생아의 증손자가 노인이 되어 생을 마감할 즈음이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용히 인류는 사라지는 중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읽고 있는 그 누구도 소멸의 순간을 보진 않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그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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