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희

by 우나

백대희. 어느덧 이십 년이 다 되어가도록 검색해보는 이름이다. 언젠가 그도 자기 이름을 검색해볼까? 하는 생각에 글을 쓴다.


내가 언제부터 락 음악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유치원 시절 어른들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재롱을 부리던 날이 있었다. 혼자 김경호 노래에 맞춰서 머리를 흔들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에 가서는 꽤 쿨한 친구를 만났다. 날카롭게 숱친 주황색 단발머리, 고양이 같은 눈매. 어딘가 뾰족한 인상을 가진 친구였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가 있던 그 친구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든지 내 귀의 도청장치 같은, 당시 나에겐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려줬다. 2000년대 중반.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달려와 컴퓨터부터 켰던 시절. 그 친구가 알려준 여러 밴드들을 검색하다가 나는 백대희를 알게 되었다.


그가 활동했던 밴드들의 팬카페에도 가입하고, 그의 싸이월드와 블로그를 찾았다. 10살 무렵 초등학생에게 그 모든 것은 엄청난 발견이었다. 팬카페엔 어른들이 올린 공연 후기와 사진들이 넘쳐났다.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도 20대 초중반이었을 텐데. 오늘 공연 끝나고 다 같이 맥주 마시러 갈까요? 하는 얘기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지게 느껴졌는지. 어른이 되면 꼭 홍대 라이브 클럽에 가보고 싶다. 그게 한국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난 나의 첫 번째 소망이었다.


백대희는 네이버 블로그와 싸이월드에 사진이나 자작곡, 짧은 글들을 올리곤 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진은 그가 대걸레를 들고 청소하는 사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사실인가?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본 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내 마음은 이렇게나 생생한데. 사춘기에 접어들며 친구들이 아이돌 그룹이나 배우를 좋아할 때, 나의 모든 순간은 백대희뿐이었다. 저작권이나 유튜브, 검색 엔진도 제대로 없던 때. 흐릿한 화질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냈을 때의 설렘. 1분 남짓한 미완성 곡을 다운로드해 저장했을 때의 기쁨. C'est la vie! 그의 네이버 아이디의 의미를 찾아보며 혼자 낭만에 빠졌고, “사랑하는 이에게 눈을 주고 사라진다”는 내용의 가사를 읽을 땐 눈물을 흘렸다. 그가 새로 올린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밤새 이불속에서 듣던 날들. 그리고 가장 가슴 뛰었던 순간. 내가 그의 블로그에 남긴 감상평, 싸이월드 방명록에 남긴 몇 줄에 그가 직접 쓴 답글을 받을 때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연예인을 닮은 누군가 갑자기 칭찬을 해줬다든지, 계란을 깼는데 노른자 두 알이 나왔다는 허무맹랑하고 평범한 이야기들. 철없고 현실감각 없는 중학생이 남긴 그런 글들에도 그는 매번 다정하게 답글을 달아줬다. 그렇게 그와 대화를 나누는 건 하루의 일과가 되어갔다. 한시라도 빨리 어른이 되어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를 직접 만나고, 그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더 큰 세상에 대한 갈망은 이때부터 시작된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2008년쯤, 그가 긴 글을 남겼다. 더 이상은 힘들다고, 이제는 음악을 그만두고 현실을 살아가겠다고. 곧 블로그와 싸이월드에 올린 모든 것을 지울 거라고도 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때는 캡쳐 프로그램도 많이 없었고 난 컴퓨터를 다루는 법도 서툴렀다. 그날 나는 밤을 지새웠다. 그가 남긴 사진들을 하나하나 캡쳐하고 노래를 틀어 녹음기에 담았다. 그러면서 계속 울었다. 무언가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않으면 언젠가 영영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배웠다. (이건 정말 트라우마가 되어 대학생이 된 후 또 다른 인디밴드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수작업으로 냈던 앨범을 전부 구매하고 모든 공연에 병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도 생활고와 멤버 교체를 겪은 후 해체했다. 잔인한 삶.)


스무 살, 나는 바라던 대로 서울에 왔다. 학교도 내팽개치고 매주 라이브 클럽을 다녔다. 좀 지나서는 거기서 일까지 하게 됐다. 내가 그토록 동경하던 그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했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연륜 있는 밴드 팬들이나 멤버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봤던 이름은 바로 백대희였다. 딱 한 번, 그를 실제로 알았다는 사람을 만났다. 공연 끝난 후 같이 술을 마시곤 했다는 그 짧은 이야기만으로 나는 행복했고, 더 슬퍼졌다. 음악을 그만둔 후 연락이 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정말 치열하게 그의 흔적을 좇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근황이랄 건 인터넷에 짧게 남겨진 댓글 몇 개가 전부였다.


여러 나라로의 이사를 거치며, 밤새 울며 모았던 자료들이 담긴 그 컴퓨터는 더 이상 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히 유튜브가 발달된 후 음원이나 영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처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큰 위로가 됐다. 아직 찾지 못한 건 'Good bye, ㅇㅇㅇ한(차가운, 수줍은) 바람 나를 떠나가. 아픈 기억은 모두 바람에 떠내려갔어. 하늘에 닿을 듯한, ㅇㅇㅇ해주고 있어. 다시는 볼 수 없어도 영원한 기억에 널 새겨둘 거야.'라는 가사가 들어간 연인이라는 제목의 노래인데. 멜로디, 목소리, 살짝 찢어지는 음질까지 모든 게 생생하다. 저 노래를 종종 부르곤 한다. 머릿속에선 이렇게 선명한 노래를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나 하고 챗 지피티로 딥 리서치를 해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냥 그 오래된 컴퓨터를 고치는 게 가장 빠른 해답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때 내가 좋아하던 그의 나이를 훌쩍 넘겼고, 예술을 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가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글을 남겼던 그때 그 마음이 지금은 슬픔을 넘어 때때로 공포로 다가온다.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현실 앞에서 꿈을 놓아야 한다는 걸 세상에 글로 써 내려가야 했을 때. 그 결심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지. 이 길이 아닌가, 나도 수도 없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기에 이제야 조금은 그를 이해하게 된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 그가 가진 재능과 목소리, 가사들과 멜로디, 자작곡과 함께 올리던 풍경 사진들. 그건 내 십 대와 이십 대 대부분을 채워준 것들이고, 아직도 내 삶의 큰 조각이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기에 보고 싶다거나 그립다는 말은 쓰기 어렵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노래들과 더이상 볼 수 없는 사진들. 그런 것들을 떠올릴 뿐이다. 그는 내가 꿨던 가장 길고 아름다웠던 꿈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 그가 행복하기만을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