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죽지 뭐

어두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by 우나

얼마 전 레온과 절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걸 떠올리며 용기를 낸다고. 나는 대답했다. 정말 망하면... 그냥 죽지 뭐. 그는 무척 당황해하며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만 했다.


'절망에 대하여'.라고 쓰면 어쩐지 우울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우울하지도 않고, 딱히 죽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절망에 대해 말하기 가장 좋은 순간이다.


나의 마음가짐은 단순하다. 정말 인생이 망하고, 그야말로 밑바닥에 추락하면... 그때는 죽으면 된다.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아무리 실패해도 괜찮다. 정말 망하면 죽으면 되는데, 무슨 걱정인가? 죽을 정도는 아니라면 계속 다시 시작하면 된다.


덕분에 나는 온갖 도전 속에서 살 수 있었다.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은 적도 많다. 무모하다는 말은 늘 주변을 떠돌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건 오직 죽음뿐. 모두에게 주어진 진짜 '끝' 말이다. 끝을 알고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처음 네덜란드에 도착했던 날. 내가 가진 건 오백 만원이 전부였다. 두 달 정도 월세를 내면 사라지는 돈. 전신마비 환자 입주 간병인, 부동산 회사의 비서, 일본 고객 전문 상담원(난 일본어를 못 한다.), 대신 장 봐주고 식단을 짜주는 아르바이트, 캣 시터, 은퇴한 노인들의 자서전을 써주는 일까지. 돈이 된다면 뭐든 다 했다. 팬데믹 때는 직장에서 짤리고 한 달 넘게 감자만 먹었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며 수십 번 이사를 다녔다. 암스테르담에 내가 살아보지 않은 동네가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게임 작가가 되려고 학교와 직장, 알바 두 개까지 병행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들던 시절도 있다. 이 터널에 애초에 끝이 있긴 한 건지. 공포에 잠겨 지냈다. 주변에선 포기하라는 말만 했다. 그때도 난 죽고 싶을 만큼 무서웠지만, 버텼다. 정말 망하면 죽으면 되니까. 그것보다 두려운 것은 없었다. 그렇게 난 원했던 것을 대부분 이뤄낼 수 있었다.


가끔 사람들은 말한다. 겁도 없고, 뭐든 쉽게 이루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 반대다.


난 어릴 때부터 죽고 싶었다. 유치원 때부터였을까? 특별한 계기를 찾자면야 가정환경이나 그런 것들이 있겠지. 하지만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그냥 그런 애였던 것이다. 헛것이 보여서 매번 잠을 설쳤고 교복 소매엔 피가 묻어있었다. 몇 달 내내 말을 하지 않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된 후 몇 사건들을 겪고 더 심해졌다.


당시 나는 유명인들과 친분이 있다거나, 강의 때마다 흉기를 든 누군가 들어와 우리 모두를 죽일 것이라고 믿었다.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 말도 안 되는 믿음은 계시 마냥 선명했다. 여름이 오면 덥고 겨울이 오면 추워지는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나는 매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 시간들이 멈추면. 그때야말로 삶을 끝내고 싶었다. 끝없는 시도가 반복됐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그럼에도 나는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지금 내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완전히 다른 무게를 만들어 줬다.


일단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 정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상황 자체에 압도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정처없이 몇 시간을 걸어도 “이젠 죽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라는 생각만 들 때. 하지만 그런 순간들도 어떻게든 지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살아남는다.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은 어느 정도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빚이 수백억 쯤 생기고, 인터폴에 수배 명령이 내려지고, 결국 악명 높은 브라질 감옥 어디쯤 갇혀서 심지어 불치병까지 걸린다면. 그 정도가 우리가 이겨낼 수 없는 절망일까? 정답은.. 모른다.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과거의 어떤 슬픔과 절망도 결국 지나왔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면 그때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그만한 절망을 겪어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만일 어느 날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실패하면, 그때야말로 죽으면 그만이다. 죽을 때는 많이 아프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고통이 더 괴로워서 죽는 것이니, 그때의 나에게는 큰일이 아닐 것이다. 역시 걱정할 일 없다.


그 고통보다 절망의 무게가 가볍다면? 그때는 살면 된다. 죽음이 삶보다 뒤에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죽음을 쳐다보면서 하루를 살아낸다. 그전까지는 어떠한 것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니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 정말 밑바닥까지 떨어질 때까지, 계속 도전하면 된다. 끝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죽으면 된다. 죽으면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그러니 그 순간도 걱정할 필요 없다.


나는 늘 손 가는 대로 삶에 낙서했다.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그것도 하나의 그림이 된다. 만약 언젠가 정말로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선을 그어버렸다면. 종이를 찢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릴 수 있는 날을 살아본다. 서툴고 무모하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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