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끝난 자리에서
2026년 1월 22일, 뜬금없이 보험설계사 시험을 봤다.
직무설명회에 참석해서 설명을 듣기만 해도 몇 만 원짜리 상품권을 준다고 하는 친구의 꼬드김이 계기였는데, 어쩌다 보니 설계사 시험까지 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안 그래도 일거리가 될만한 게 없나 찾던 중이기도 했고, 상품권을 아르바이트 비용이라 생각하면 괜찮은 장사(?) 일 거라는 생각과 함께, 설명을 듣다 보니 '탄력 근무가 가능하다'는 말에 혹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거니와, 설계사 시험에 합격하면 즉시 근무가 가능할뿐더러, 합격했다 하더라도 바로 설계사를 하지 않아도 합격 성적은 1년간 유효하다는 말이 꽤나 매력적으로 들렸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그리고 시험 준비를 하고, 시험을 보고, 밀린 일들 처리하며 뭐 하고 뭐 하고 또 뭐 하다 보니 1월이 다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험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보험 설계사를 하지는 않기로 했다. 완전히 포기하는 건 아니고 시험 성적이 유효한 1년까지는 내 상태를 지켜보며 잠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는 것으로.
지저분하게 발을 살짝 걸쳐놓은 것 같은 모양새이긴 하지만, 그렇다한들 뭐 어쩌하리. 아무튼, 오늘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요점이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은 사실 따로 있다.
설계사 공부를 하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으며 다시금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나는 '연습보다는 실전'쪽에 강한 사람이라는 것.
뭐, 지금껏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어렴풋이나마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강한 힘을 보인 적은 또 없어, 2월이 된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신기하기만 한 그런 상태이다.
그리고 지난날을 곰곰이 살펴본 결과, 이번의 좋은 성적은 이전과는 달리 부담 없이 시험에 임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잘해야만 한다'라는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지난날이, 특히 작년인 2025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낸 것 같아 기쁜 감정이 들었다. 무엇보다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보다 시험에 임한 나의 자세가, 공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꽤 고무적인 부분이다.
전 같았으면 집중이 잘 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책상에 붙어 앉아서 한 글자라도 더 외우려 하고, 한 문제라도 더 풀려고 아등바등 이었을 텐데, 이번에는 집중이 안된다 싶으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할 일을 했다. 게임을 잠깐 하기도 했고, 산책을 하거나 침대에 널브러져 그대로 쉬어보기도 했다.
최근 관심 있게 보고 있는 뇌과학 분야의 책과 영상들에서 말하기를 '집중력이 떨어지면 하고 있던 일을 그대로 멈추고 그 장소로부터 벗어나는 게 일의 능률적인 부분에서도 훨씬 효율이 좋다'고 하던데, 그대로 행동에 옮겨보니 쫓기는 듯한 부담감도 훨씬 줄어들고, 공부 효과도 훨씬 좋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결과가 바넘효과라든가 혹은 확증편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그 과정도 덜 부담스러웠으니 그게 진짜이든 아니든, 나의 뇌가 정말로 그렇게 활동을 했든 안 했든 나에게 있어서는 더 좋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상태에는 그런 것들이 더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고.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가는 혹독했다.
공부를 핑계로 책상에 오래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보니 지병으로 앓고 있는 목디스크의 통증이 심해졌고, 점심 내내 외식을 하는 바람에 3주 만에 4kg 가까이 몸무게가 불어나기도 했다.
특히, 급속도로 늘어난 몸무게 때문에 다시 혈당과 지방 수치가 안 좋아지는 신호가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몸 여기저기가 붓기 시작했는데, 특히 발바닥이 많이 부어서 걸을 때마다 발이 아프거나 신발이 꽉 끼어서 걷기 불편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족저근막염까지 겹쳐 걷는 것조차도 불편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정신적인 피로였다.
사실 교육 일정 중에는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힘들지 않다'라고 생각했고, '의외로 괜찮네?', 나아가 아주 잠깐은 '이 정도라면 설계사 일을 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다시 혼자가 되자, 지난 3주 동안의 일들이 꽤나 영향이 컸고, 실은 나를 소모시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험은 끝났고, 결과는 나왔다.
생각보다 괜찮았고, 어쩌면 충분히 이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할 수 있겠다는 감각과, 하고 싶다는 마음의 톱니바퀴가 어딘가에서 어긋나 있었다.
합격은 했지만
이걸 선택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결정은 여전히 유보(留保)인 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