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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즈모넛cosmonaut Oct 17. 2020

우주여행자의 지구인 관찰기

# 프롤로그

어릴 적부터 평범하고 내성적인 아이었다. 50대 중반 정도였었나? 초등학교 동창들이 얼굴 한 번 보자고 몇 번 연락이 와서, 강남역 근처 맥주 집에 갔었다.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초등 동창들이니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이름하고 도무지 매칭이 되지 않아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키가 크고 활달한 여성 한 분이 내가 다가와서는 “너? 익한이구나? 이야기 들었어. 야~ 정말~ 니가 교수가 되었다며? 많이 컸다” 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 아닌가. 

     

나중에 알았지만 그 여성은 초등학교 시절 전교 부회장을 했던 황 모라는 멋진 친구였다. 압구정동에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를 하는 아주 잘 나가는 사장님이기도 했다. 노래방까지 같이 어울렸지만 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어색했다. 물론 난 초등학교 동창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반갑고 좋지만 왠지 부끄러움이 많아 부자연스러운 느낌일 뿐.

     

정치사 하는 김원 교수가 『유령들』이라는 책 서론에 엉뚱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박정희 시대를 정치사적으로 논하는 책이었는데, 그는 내가 초등 동창회에서 느낀 느낌과 똑 같은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회의에서 발언할 때면 떨려서 불편하다, 아웃사이더다, 호방한 남성들을 마주치면 짐짓 놀란다 등등의 느낌을 말하면서, 그런 자신의 느낌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네이버에 가입하면서 나는 닉네임을 cosmonaut이라고 정했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봐도 느낌이 좋다. 우주비행사나 우주여행자라는 뜻의 이 영어 단어는 뭔가 나의 이 세상에서의 존재 상태, 혹은 위치 같은 걸 잘 표현해주는 듯하다. 자랑이 될지 모르지만, 난 나의 부끄러움, 어색함, 불편함, 떨림, 이해 못함 등의 상태를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cosmonaut는 어느새 내가 사람들과 세상을 대하는 관점 같은 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주인이 되어 지구를 여행하듯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어색하고 떨리고 어리버리해도 그러려니 하고 그저 여행자처럼 멀뚱멀뚱한 눈으로 그냥 잘 지내는 느낌? 떨어져 보면 재미있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우주여행자 되기’는 사람들에게 실망하지 않는 비법 중 하나이다. 사실 제일 편리한 것은 우리를 둘러싼 정치사회 환경을 화내지 않고 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망하지 않고 덜 화내면서 재미있게 바라보는 삶, 가끔은 “어? 그거 좀 이상한데?”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삶, 그리고 우주여행자로서 토닥토닥한 발걸음을 그냥 별 생각 없이 이어가는 삶. 뭐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난 뭐야’하는 외로움이나 우울감으로 빠지지는 않지 않을까. 글들을 통해 그런 상상을 함께 해보고 싶다. 부끄럼 많고 혼자인 걸 좋아하는 나의 관찰과 상상들이 우리가 조금씩 우주여행자로 살아가는 길을 엿볼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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