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지 않는다는 건, 기준을 거래하지 않는다는 뜻

일의 본질을 지키는 것

by 이키드로우

브랜딩이라는 일은

많은 말, 설명, 설득이 필요한 일이다.


왜 이 방식으로 가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어디까지는 가능하고

어디부터는 아닌지.

그런 이야기들은

일을 시작할 때부터

분명히 짚고 가야 한다.


설명이 부족하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일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일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 또한

브랜딩의 주요한 영역이니까.


아주 가끔이지만

기준을 거래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 기준을 조금만 낮추면

상황이 더 매끄러워질 때,

이 방향을 잠시 접으면

이야기가 빨리 끝날 때.

설명이 설득을 넘어

흥정처럼 변하는 지점이다.


그 지점에 이르면

설명은 그대로인데

일의 성격이 달라진다.

말은 이어지고 있지만

중심이 조금씩 본질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때부터는

무엇을 이해시키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양보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마다

설명을 더 보태기보다

기준을 다시 확인했다.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준을 움직이기 위한 것인지.

그 차이를 분명히 구분하려 했다.


설명은 줄이지 않았지만

기준을 조정하지는 않았다.

상대를 납득시키기 위해

방향을 바꾸기보다,

방향을 분명히 하기 위해

설명을 이어갔다.

그 방식이

항상 빠르거나 효율적이진 않았다.


말이 길어졌고,

합의까지 시간이 걸렸고,

클라리언트와

끝까지 함께 갈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일의 중심은 흩뜨려 트리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고 행동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팔지 않았던 건

나 자신이 아니라

일의 기준이었다.

기준을 거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한 일들은 일의 본질을 유지한 형태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팔지 않는다는 건

말을 아끼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해야 할 말을 다 하되,

그 말로 기준을 깎지 않는 태도이다.


내가 말하는

‘팔지 않는 사람’은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흥정하지 않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