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는 이유로 넘지 않았던 나만의 기준
하면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분명한 기준이 내 안에 존재했다.
그 기준은
일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일을 하고 난 뒤
나 자신을 그대로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는지에 가까웠다.
돈을 많이 주는 일도 있었다.
조건은 나쁘지 않았고,
조금만 눈을 감으면
아무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일이라는 이름으로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내 양심에 걸리는 일들이었다.
하지 않아도 될 약속,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술자리,
접대라는 말로 포장된 시간들.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하는 일이 아닌
타락으로 몰고 가는 각종 일들.
내 기준에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나
그릇된 방법으로 진행되는 일은
애초에 선택하지 않았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일을
스스로 내려놓는 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조금 더 유연해지라는 말도 들었고,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는 조언도 따라왔다.
그래도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나를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나중에 부끄러워질 일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 선택들로 인해
실제로 놓친 것들 많다.
일이 성사되지 않았고,
돈은 덜 벌렸고,
관계가 이어지지 않았으며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그건 분명 손해였다.
하지만 동시에
지킬 수 있었던 것들도 있었다.
일을 하면서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어디까지는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만의 기준을 시장에 새겼다.
그 기준 덕분에
일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선을 알고 찾아오는 일들이
조금씩 남기 시작했다.
시간은 걸렸지만,
내 가치관에 맞는 일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만의 명확한 기준,
특히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일이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 기준은
돈의 크기보다
나중에 세상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에 가깝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무엇을 더 할지보다
무엇을 끝내하지 않을지가
더 중요해진다.
나에게 그 선은
처음부터 꽤 분명했고
지금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