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의 물결 속에 멈춰서는 용기

일의 본질로 돌아오기 위해

by 이키드로우

일이 느려졌다고 느낀 건

속도가 실제로 늦어져서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고,

하루는 늘 모자랐다.


그런데도

자꾸 멈추게 되는 순간들이 생겼다.


결정을 앞두고

한 박자 쉬게 되었고,

바로 가도 될 것 같은 자리에서

굳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예전 같으면 지나쳤을 질문들이

발목을 잡았다.


이걸 지금 해도 되는지,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조금 더 빨리 가는 게

정말로 좋은 선택인지.


주변은 빨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일을

더 짧은 시간 안에 처리했고,

SNS 각종 매체를 통해

결과는 즉각적으로 공유됐다.

속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처음엔

이 멈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히 망설이는 것 같았고,

결단력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

머릿속을 자주 스쳤다.


하지만 멈춤은

의외로 고집처럼 따라왔다.

서두르려고 하면 할수록

몸이 먼저 반응했다.

지금은 아니라고,

조금만 더 보자고.


그때 알게 됐다.

이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과 일의 본질의 문제라는 걸.


빨리 가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생략된다.

맥락, 여지, 감각, 숙성 같은 것들.

빨리 가는 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렇게 가고 싶지는 않았다.


멈춘 자리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부터는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지.

속도를 늦추자

일의 본질적 기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멈춤 덕분에

놓치지 않은 것이 많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걸러냈고,

굳이 맞추지 않아도 될 속도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

빠른 사람들 사이에서

멈춰 선다는 건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멈춤 덕분에

적어도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멈춤은

포기가 아니었다.

뒤처짐도 아니었다.


그건

다시 중심을 찾기 위한

자연스러운 속도 조절에 가까웠다.


모두가 달릴 때

자꾸 멈춰 서게 되었던 이유는

더 잘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다시 나만의 본질로

돌아오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