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잘 보이려 하기 시작한 때부터, 일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타인에게 잘 보이려 했던 건 아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속도가 느렸을지는 몰라도, 기준만큼은 분명했다.
이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누가 어떻게 볼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였다.
사람들의 반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한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이 선택이 상대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이 정도면 무난한지 같은 생각들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걸 배려라고 생각했다.
혼자만의 기준으로 움직이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고 느꼈고,
조금은 둥글어질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게 어른스러워지는 과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일의 감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결정을 내릴 때 손에 남던 확신 대신
계산이 먼저 따라왔다.
이게 맞는지보다 이게 안전한 지를 따지게 되었고,
중요하다고 여겼던 기준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났다.
대신 앞에 놓인 건
상대의 기분, 관계의 온도, 상황의 분위기였다.
일은 더 부드러워졌고,
말은 한결 능숙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안쪽에서는 계속 어긋났다.
작은 불편함들이 쌓였고,
일이 끝나고 나면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남았다.
잘 해냈다는 느낌보다
무사히 지나갔다는 감정이
더 자주 떠올랐다.
타인에게 잘 보이려 한다는 건
결국 나를 한 발 뒤로 미루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신경을 쓴다는 말 뒤에는
언제나 우선순위의 이동이 숨어 있었다.
나에서 타인으로,
기준에서 반응으로,
선택에서 조정으로.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한 건
일만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감각도
조금씩 흐려졌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디까지는 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무리인지에 대한 판단이
점점 늦어졌다.
대신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그 말은 늘 상황을 부드럽게 넘겨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만큼 나를 조금씩 닳게 했다.
돌이켜보면
큰 사건은 없었다.
실패도, 파국도,
극적인 전환점도 없었다.
그래서 더 오래 걸렸다.
어긋남은 늘 그렇게 시작된다.
조용하게, 합리적으로,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이유를 달고.
이 기록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때의 나는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만 그 최선이
점점 ‘잘 보이기’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내가 나를 지키는 선택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씩 분명해진 삶의 기준들.
아직 모든 것이
선명한 정의를 갖기 전의 시간.
또 분명히
무언가가 어긋나기 시작했던
그때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