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시작부터 필요한 일의 범위
일을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 지점은
대개 비슷하다.
누가 더 잘했고,
누가 더 노력했는지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일인지가
분명하지 않을 때다.
처음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조금 더 해주는 것 같고,
서로 배려하는 것 같고,
관계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경계는
쉽게 흐려진다.
“이 정도는 포함된 거죠?”
“이건 그냥 같이 봐주면 될 것 같아서요.”
그 말들이 쌓이면서
일의 범위는
서서히 넓어진다.
문제는
그 넓어짐이
합의된 적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범위가 명확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가 불편해진다.
한쪽은
이미 충분히 하고 있다고 느끼고,
다른 한쪽은
아직 덜 받았다고 느낀다.
그 상태가 이어지면
섭섭함이 생기고,
그 섭섭함은
일보다 관계를 먼저 건드린다.
그래서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범위를 먼저 정리하려고 했다.
무엇을 책임지는지,
어디까지를 결과로 보는지,
어디서부터는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걸 분명히 말하는 것이
일의 첫 단계라고 생각했다.
범위를 명확히 하는 일은
차갑게 굴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관계를 오래 가져가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서로 기대하는 지점이 다르면
아무리 성의를 다해도
결국은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해를 맞추려고 했다.
이 정도까지를 함께 가자는 이야기,
이 이상은
다시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 설명을
일이 시작된 뒤가 아니라
시작되기 전에 꺼내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그렇게 하니
일이 더 편해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초반에는
대화가 길어졌고,
조율해야 할 것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 과정 덕분에
일이 진행되는 동안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범위가 분명하면
요구도 분명해진다.
무엇을 요청할 수 있고,
무엇은 요청하기 어려운지.
그 선이 공유되면
일을 하면서
괜히 눈치를 보거나
섭섭해질 일이 줄어든다.
지금 돌아보면
관계가 틀어졌던 일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의 범위가
끝까지 정리되지 않았던 경우였다.
반대로
오래 이어진 관계들은
처음부터
어디까지가 일인지가
분명했다.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아도
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범위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일을 이어가면
아무리 잘해도
서로가 서운해질 가능성은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일을 잘하기 전에
일의 범위를 먼저 정리하려고 한다.
그게
일을 지키는 방법이자,
관계를 틀어지지 않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