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커피 대신 홍차를 우려 마신다.
카페인은 커피의 1/2 수준으로 보인다.
하지만 1/2의 기분은 잘 모르겠다.
카페인이라는 거친 이름과 기작이 과연 삶에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괜한 허들로 제약만 생기는 건 아닐까.
제약은 다시 자유라는 환상을.
호기심과 겁을.
영락없는 아기원숭이.
카페인 따위 모르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게 진화에 유리하지 않을까.
겁쟁이 인간은 변화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무수한 이론들로 부스럼 같은 핑계만 늘어놓는 게 아닐까.
나는 어느덧 담배 없이도 망상을 즐길 수 있게 되었네.
홍차의 아침도 그윽하니 괜찮다.
그동안 괜하게 커피를 때려 마셨지 싶다.
아니지 나는 커피가 필요했다.
그래야 첫 담배가 맛있고 쓰고 듣고 읽는 여유로운 아침이 되고 똥도 잘 쌌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속박과 번뇌를 벗어나기 위한 거룩한 몸짓이었다.
나 여기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당시엔 그게 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행위들을 집착이라고 말한다.
바보 같았다고 말한다.
웃겨 죽겠다.
집착이 뭘까.
바보가 뭘까.
아무도 모른다.
밖에 내놓아 기준 낼 수 없다.
설득할 수 없다.
이름 부를 수 없다.
우리의 집착은 고작 이미지 따위에 얽매이는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홍차도 필요 없이 따뜻한 물 한 잔이면 족할 듯하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커피와 홍차가 주는 기쁨은 흡연만큼 거대해질 것이다.
담배는 거대한 원 밖으로 더욱 밀려날 것이다.
아래와 같은 사유로 브런치북 엮기를 그만둠.
'격식도 귀찮고 협조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남는 것도 없고 부러 담배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아유 재미없어... 아유 지겨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