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받는 미술치료

by 자진유리


비 오면 따라 우는 나의 집

미술치료합니다


부서지는 어깨에 매달려 묽은연고 칠하다

아스팔트 물드는 거친야망 요란필때

생은 끈적한 땀으로 놓아주질 않고

나 어릴 적 울음 멎자

축농처럼 막힌 굴뚝


새 굴뚝 입술에 지어올리는 동안

어느새 내 뺨 붉은털 다 빠져

어슬쩍 지붕 올라 누런 앞니로 아헿헿


산타가 죽었대도 울지 마라

이래도 울면 나도 그냥 울란바토르





태풍이 온다기에 지난 장마에 짓물러 터진 옥상바닥, 내외벽과 굴뚝과 지붕을 칠했다.

덧칠해 봤자 벌써 수십 년 수없이 젖고 갈라지고 떨어져 나간 마음 거죽뿐이란다.

뜻밖은 방수액이 최신식이라 마음 속까지 침투한다나 뭐라나.


집에게 묻는다.

그거 무슨 맛이냐

알보칠처럼 따갑냐

시렵진 않냐

마침 내가 목이 마른데 마셔도 되냐

레몬 레몬


안된단다.




삶을 모르는 엉터리들은 작은 일에도 마음을 다하는 기쁨도 모른다.

그들은 명함을 더 멋진 디자인으로 바꾸는 데나 관심이 있고

일은 드럽게 못 하는데

사람 얼굴을 지폐처럼 구기는 데엔 기술자다.

느릿느릿 그러나 대충대충

하루면 될 것을 일주일로 벌리고

매일 술과 고기 여자생각뿐이다.


웃는 돈을 받아야 웃고 살지

화난 돈은 절로 재가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도 굴레를

올라타는 햄스터 같은포식자들.




아슬아슬 외벽을 칠하다 붓을 입에 물고 웃는다.

나 이런 거 좋아하네.

십년 내내 쾌적한 사무실에서 까먹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내 땀에 젖는 일.

헌 집 부수고 그 자리에 새 집을 지은 일.

펜션을 청소하던 일.

죽은 홍어 가죽 벗기던 일.

밥이 맛있고 온몸으로 열량이 채워지고 줄어드는 감각이 또렷하게 느껴지는 일.

= 육체노동.


바라는 것은 미생물들을 위한 티끌 같은 활동

미생물을 돌보는 미생물의 다정함

이듬해 날아온 꽃씨가 무사히 뿌리내릴 수 있는 일


합치면 섬세하고 다정한 육체노동

그런 일이 뭐가 있냐 밭일?

그런 내가 덜렁 있을 뿐이지




나는 결코 자연이 두렵지 않지만 내가 가진 대개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자연과 적대적으로 경쟁하며 썩어 없어지길 거부한다.

그 물성은 인간에게 투여된 모종의 균류와 닮았다.

오직 그 사실만이 잇몸을 떨게 한다.


진리에 반하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신의 선물을 뜯지도 않고 저리 처박아두고

가지지 않아도 될 것에 매달려온 사람의 일생은 얼마나 깜깜한 죽음인가.


말만

말로만

잠시 뉘우치려 적는다.


괜하다.

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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