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덧 그렇게 되었다. 휴대폰 화면 모서리에는 '200일째'라고 적혀있었다. 오늘로써 200일 하고도 이틀이 더 지났다. 엊그제 200이라는 숫자를 보고 나니 스스로 놀랍고도 대견한 모양인지 그를 기념할 겸 그에 대해 반드시 말해야겠다는 망상적 욕구가 일어난 모양이다. 어쩌면 조증 삽화가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안타깝게도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삶은 내게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결심은 와해되지 않았다. 문득, 몇 달째 약을 타러 가지 않았음에도 병원에서는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럼 그렇지.’하고 만다.
작가의 서랍에는 못다한 이야기들이 내 손 끝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그러나 나는 새벽에 내리고 남은 커피처럼 시큰둥하다. 차가우면 차가운대로, 시큼하면 시큼한 대로 마저 마셔 없애버리거나 남은 커피가 잔에 물들어 설거지를 고되게 하지 않도록 곧장 싱크대로 가져가야 할 거였다.
나는 무엇도 내키지 않아 남은 커피에 생수를 가득 붓는다. 목이 마를 때마다 커피잔 속 액체는 점점 맑아졌다. 그것은 결명자차 맛이 났지만 결명자차는 아니었다. 이 정체불명 액체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주변 누군가 한여름 땡볕 아래서 결혼식을 올린다거나 일사병으로 쓰러져 돌아갈 때를 염두에 두고 나는 하계용 양복을 샀던가. 나는 이런 식으로 무의미한 토로를 비합리적인 망상으로 고쳐 글을 쓰다가도 금세 싫증이 나 서랍에 처박은 것이 수십 벌이다. 이 얇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양복을 입고 밖에 나갈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분명 이 양복을 반품하지 않은 것에 대해 칭찬할 날이 오리라는 불확실한 희망으로, 그리고 어쩌면, 오늘이라면, 200이라면, 200일이라는 평범한 날이 어쩌면 서랍에 처박힌 옷들을 모조리 꺼내줄 손없는 날이 될 수 있겠다는 망상적 믿음으로 이 서문 같은 걸 쓴다.
나는 방금 핸디청소기로 내 몸 반경 50cm의 먼지를 한번 빨아들였다. 주의가 산만하다는 건 생활통지표에 몇 번인가 적혀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질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까닭이 될 수 있다면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 까지 십수 년간 일곱 차례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다. 엄마는 내가 주의가 산만한 것이 콧병 때문이라고 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코를 풀어야 했으니까. 그러나 나와야 할 것은 나오지 않았고 그 대신 종종 피범벅 된 뭔가가 나왔다. 코에 가득 찬 것은 혹이었다. 콧속에는 혹이 잘 자랐다. 내시경으로 내 콧속을 탐험하던 의사 말을 빌리면, 그것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무리 뽑고 자르고 불로 지져도 계절이 바뀌면 다시 열매를 맺었다. 나는 해마다 전신마취를 하거나 국소마취를 했고 꼬박 열흘씩 병상에 누워야만 했으며 그 뒤로도 몇 달간은 고통스러운 통원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방정식을 배우지 못했고 직장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내 삶은 삭은 고무줄처럼 툭툭 끊어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달릴 수 없는 인간이다.' 재수 없으면 삼 개월, 운이 좋으면 내년, 필연적으로 언제든 또다시 멈춰버리게 될 거라는 비극적인 사실을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어떤 체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금 무리했다 싶으면 재발하는 병은 나에게 가벼운 희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웃지 않는다. 기쁨, 희망 같은 감정 따위는 나에게 과분한 것이었다.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이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기쁨이 클수록 절망은 대단했다. 그렇게 나는 일찍이부터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저 다음 수술이 최대한 유예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인 일상을, 억지 기도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감사하는 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사합니다.
당신은 정말 간사합니다.
도미노가 쓰러진다.
모래성이 무너진다.
싸우기 위해 링에 오른다.
나는 어쩐지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주먹을 쥘 수도 없다.
걸음걸이가 이상한 사람이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그는 한걸음 올 때마다 뒤를 한 번씩 쳐다봤는데
자세히 보니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꿈은 그런 것들이었다.
스물몇 살에 여섯 번째 수술을 했다. 이제 나는 한 대학병원 간호사 누나와 사적인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그들에게 친숙한 환자였다. 병원은 참 편한 곳이다. 밥도 매일 다른 메뉴로 꼬박꼬박 나오고 예쁜 누나들이 24시간 돌아가며 내 심장소릴 들으러 온다. 아픔만 뺀다면 어쩌면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생각했다.
퇴원하는 날. 콧구멍마다 열개씩은 박혀 있을 거즈 뭉텅이가 이마쯤에서부터 하나씩 빠져나오며 나는 그때마다 세상이 진동하는 것을 느낀다. 이 통증은 30년 동안 자기 뺨을 때려 오신 ‘무통’ 김병만 선생님도 화들짝 놀라 코너가 끝날 수밖에 없는 종류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음 내원 날짜를 잡고, 수납을 마치고, 여섯 번째 세상 밖으로 나간다.
칼을 찬 겨울바람이 마른 콧속을 휘젓고 다닌다.
아프다.
나는 익숙하게 입으로 숨을 쉰다.
택시를 잡기 위해 인도 가장자리에 섰다.
그리고 이내 위화감을 느낀다.
하수구였다.
하수구 냄새가 이토록 지독한 것인 줄 몰랐다.
늘 병원 밖에 줄지어 있던 택시는 어찌 된 일인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있지도 않은 어릴 적 길을 잃었던 기억처럼 몸을 떨었다.
견딜 수 없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어쩌면 꿈인지도 몰랐다.
나는 병이 빨리 재발하길 바랐다.
그러려면 몸을 혹사시키면 될 거였다.
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
도망치기 위해서.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빌어먹게도 혹은 두 번 다시 자라지 않았다. 매일 나를 괴롭히다가 어느 날 말도 없이 전학을 가버린 양아치 놈처럼-이라면 적당한 비유가 될까. 그러나 내 가슴속에 굳게 뿌리내린 무엇은 혹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던 양아치 놈은 사라졌지만 그것 말고는 내 삶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나는 똑같이 출근을 해야만 했고 술을 마셔야 했다. 여전히 웃는 것이 어색했고 아무런 기대가 없는 아침은 불행했다.
2.
약을 끊은 지 200일이 되는 날을 맞이한 것이 내가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의 상징이라는 믿음으로 이 서문 같은 걸 쓴다고 했다. 나는 여태껏 무언갈 스스로 작정하고 해 보겠다고 결심해 본 적이 없다. 누가 하자고 해서 무대에 올랐고 누가 해보래서 3시간 거리의 학원을 다녔고 누가 같이 해보쟤서 취직을 했다. 그리고 늘 염원했다. 언젠간 이 거지 같은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구원하기를. 그 시작이 어쩌면 오늘인지도 모른다.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실마리를 찾는다 한들 이탈하지 않고 이 서사를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며 이어갈 수 있을까. 그렇게 되었다 한들 코 푼 휴지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지 않을까. 이런저런 삶의 간섭으로 또 생각을 바꾸고 포기하면 어쩌나.
스스로 대견하다 여기는 것과 무용하다는 판단은 생각의 업무 범위이기 때문에 그러건 말건 상관없다. 그저 내가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부디 내 통제 밖의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어쨌든 나에게는 적어도 단약에 대해서 만큼은 200일의 경험치가 있으니 이 날들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아마 200편 이상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원동력으로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기특하게도 나는 작년 7월부터 날마다 일기를 남겨 왔다. 그리고 지난 일기를 살피다 문뜩 위화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정말 괜찮아졌나. 지난주엔 어땠지. 지난달에는. 그리고 이내 안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심하는 순간 그것은 또 환절기라든지 월드컵, 나스닥 지수 같은 것들에 주의를 뺏긴 틈을 날카롭게 파고들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직 이것에 대해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나는 명랑소녀 단약 성공기를 쓰자는 게 아니니 괜찮을 것이다.
3.
나는 왜 하필 글을, 가난을 골랐나. 이 시간에 차라리 재취업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더 그럴싸하게 꾸미는 게 합리적인 생각인 것 같다. 차 라리 성우학원에 빨리 등록하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글은 모든 면에서 글쓴이의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가능한 숨기거나 부끄러워해야 마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서 매일 노트북을 열어젖히는 걸까. 여학교 주변에서 서성거리다 스스로 바바리코트를 열어젖히는 변태는 예로부터 어디에나 있었다고 들었다. 작자들은 모두 그런 족속인가. 실컷 팬티를 내려도 쇠고랑을 차지 않는 방법을 찾아낸 똘똘한 변태들인가. 그러면 이따위 질 나쁜 회고를 시간을 들여 읽는 독자도 역시 비슷한 관음증 변태들인가.
독자들은 글쓴이의 물건이 변변치 못하다면, 또 얼마나 하찮은 물건을 달고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 누구라도 속으로 코웃음 칠 게 빤하다. 그러니 하찮은 물건이어서는 안 된다. 가능한 크고 단단하고 듬직해야 한다. 글이. 그래야만 내가 거리낌 없이 바바리를 열어젖힐 수 있을 거고 독자도 만족할 확률이 높아지리라. 다양한 체위와 현란한 스킬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알아서 잘하는 독자는 알아서 원하는 것을 얻어갈 것이다.
마음먹고 써보자고 마음먹은 게 머지않다. 그래서 내 시간, 다시 말해 내 생명을 담보로 글을 쓰는 것에 당연하게도 확신이 없다. 오늘 열 시간이나 쓰고 고쳤고 사람들이 이만큼 봐주었으니 난 행복해 이걸로 됐어 끝-이라면 당장 노트북 허리를 꺾어버려야 한다. 그러다 열 시간을 못 앉아 있게 되거나 사람들이 봐주지 않으면 또다시 불필요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만 할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내 지난 글은 여간 해선 읽지 않지만 브런치 첫 글을 열어 보면 아마 나는 작가 캐릭터를 가지고 싶은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작가가—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되겠다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당최 이게 무슨 말이람.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염원하는 그것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거쳐 가야만 하는, 지나쳐야 하는 단계, 마치 결혼이나 취직 같은 일종의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쓰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쓰면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선택의 문제. 거기에 내 생명을 내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리고 나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그러자면 경험을 멈추어선 안 된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것은 내가 불만 없이 열 시간 넘도록 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이기도 하다. 아무 때나 막무가내로 던지는 생각의 추파를 기록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고 공부하고 몸을 움직이고 가다듬는 일. 그게 잘 되든 또 어느 날은 잘 안 되든 나는 그러고 있는 시간에만 허기도 못 느끼고 빨래가 다 된 줄도 모른 채로 완전히 몰입되곤 했다. 적어도 그러니 열 시간 동안 쓸데없이 타이핑을 하는 것만큼은 내가 잘하는 게 아닐까.—좋아하고 말고는 아직 모르겠지만—글을 '잘' 쓰는 것쯤은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마도 그럴 거다. 그러면 그동안 걱정해야 되는 건 뭘까.
가난한 것.
그리고 담배값이 늘어나는 것.
아무래도 이 정도밖에 없는 것 같고 그런 것쯤은 지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이른 아침에 규칙적으로 눈을 뜨는 까닭이 꾸역꾸역 직장에 가기 위함이 아니라 행복하다. 이번에 산 원두가 좋아서 빨리 커피를 내리고 싶은 마음, 음악을 켜고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우고 옥상에 올라 햇볕을 맞고, 일기를 쓰고, 마음을 닦고, 책을 읽고, 체조를 하고, 공부를 하고, 건강한 음식을 해 먹고, 똥 마려운 느낌을 좋아해 가고,... 내 삶에 좋은 것들이 이어지는 삶, 그리고 자연스레 일정 시간 글이나 쓰고 앉아 있는 것이 업무시간만큼의 시간적 공백을 채우고 경험치를 올릴 수 있다면, 직장에서처럼 불만과 자격지심이 없는 데다가 따라서 돈도 없지만 그 돈이 나에게 당장 큰 의미가 없다면, 그렇다면 역시 나는 이걸 해도 괜찮을 거다. 오히려 좋다. 이왕 결심한 거 가능한 하루의 대부분 에너지를 여기에 쏟는다. 친구는 내 눈빛이 달라졌다고 했다. 힘이 난다. 설거지가 더 이상 귀찮지 않고 한번 더 걸레질할 마음이 생긴다. 유튜브가 재미없다. 내 생각이 던지는 추파가 훨씬 유익하다. 오랜만에 기타를 꺼냈고 금세 굳은살이 박였다. 놀랍게도 어느 날 돌아보니 삶이 바뀌었다. 죄다 좋은 것만 있다. 이건 누구의 삶인가. 글쓰기란 어쩌면 나에게 무한 동력인지도 모른다. 글쓰기가 삶의 원천이라고 누가 그랬더라.
4.
마음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당신 근처에도 있을 것이다. 인맥이 좁은 나조차 체감한다. 회사만 하더라도 직원 중 몇몇은 약물을 복용하며 상담 치료 중이었고 하나는 그 병을 빌미로 회사를 그만두었으며 장기간 입원을 한 녀석도 있었다. 동네 친구는 약물치료 효과가 만족스러웠던지 스스로 현대의학 신봉자라 외쳐댔고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형님은 정신의학과 방문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전염력이 강한 것이 마음병인지 모른다. 그것은 사무실의 차가운 공기로, 상사의 가시 돋친 말로, 우울한 시로, 단음계의 음악을 타고 다니며, 또 개인의 작은 기계 화면 속에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무엇을 쓰든 단 하나의 원칙은 지키자고 다짐한다. 적어도 나는 희망을 말해야겠다. 적어도 나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글은 쓰지 않겠다. 슬픔에도 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정이 비만한 글은 스스로 무언가 정립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것도 경험으로 안다. 그런 글일랑 누설되어서는 안 된다. 카타르시스는 글쓴이 혼자 느끼는 것으로만 기능해야 한다.
예전에 어떤 개그 코너 말미에는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고 구호를 외쳤다. 글 역시 글일 뿐이니 독자가 그렇게 인식할 수 있도록 작가는 유도해야 한다. 말해 주어야 한다. 이건 그저 하나의 gag일 뿐이고 개인적인 배설물일 뿐이라는 것을, 고작 그런 것 따위가 타인의 삶에 (나쁜) 영향을 끼쳐선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늦가을 모기처럼 독자의 마음에 어떻게든 침투하려 들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감정으로부터 안전하게 할 것. 삶에 좋은 것을 말할 것. 온종일 머릿속을 헤치는 자극적인 음악처럼 해서는 안 된다. 독자가 어떤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떨쳐내기 위해 마음 쓰게끔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소홀하거나 가벼워서는 독자의 귀한 시간이 아깝다. 사람들은 종종 날더러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말하곤 했는데 나는 오늘 이 어렵고도 피곤한 결심을 또 한 번 하게 된 셈이다.
5.
내 주변에서 단약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약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의사와 상의 없이 단약을 시도했다가 후회하는 이야기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보아 왔다. 나는 약을 끊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거나 조언할 수 없다. 사바사가 적용되는 사안인 데다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일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장의 삶을 과감히 종결짓고 스스로 안전을 확보해야 비로소 시작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오직 편안한 상태여야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고 거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살면서 자주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내가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멈춘다고 못난 게 아니라는 거, 망한 게 아니라는 거였다. 무엇 때문이든 결국 힘들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에서 오랫동안 헤어 나올 수 없다면 자신에게 꽤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럴 땐 고민하지 말고 당장 모든 걸 내려놓고 멈춰야 한다. 멈춘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이며 현명한 처사다. 펑크 난 자전거를 계속 타면서 스스로 타이어를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마음병이 어떻게 나을 수 있는지 우리 모두는 사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삶은 때때로 인간이 옳은 일을 할 수 없도록 훼방을 놓는다. 언젠가 S가 나에게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도대체 뭘 위한 인내이고 고집인지 모르겠다. 병이란 어쩌면 인간의 욕심 때문에, 다르게 말하면 어떤 비합리적인 사고방식 덕분에 생기고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육 년간의 향정신성약물 복용자로서, 그리고 약물에서 200일 넘게 벗어난 돈 없고 시간 많은 백수로서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그들에게 말해도 위해가 되지 않는, 어쩌면 그들이 기뻐마지 않을, 그나마 찾아낸 좋은 것이 고작 이것뿐이라는 게 영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서도.
일전에 브런치 심사에 밝혔던 포부처럼 흔한 퇴사 뒷 이야기, 또 질병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부터가 그런 이야기는 식상하고 그런 글일랑 의도가 빤히 글쓴이 자신의 카타르시스를 향해 있기 때문에. 넋두리밖에 안 되는 것이니까. 그런 이야기일랑 술자리에서도 좋은 안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이제는 내가 십 년 전처럼 글쓰기가 마음이 치유되는 줄로 착각하지 않기 때문에. 글 쓰기는 그저 몰입 가능한 하나의 옵션일 뿐. 그러는 동안 쓸데없는 외부 자극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일 뿐. 회피일 뿐. 일시적인 진통제일 뿐. 이렇게 놓고 보면 글쓰기가 약물과 다를 게 무엇이람.
약 먹는 걸 깜빡하고 광고주 미팅에서 절절대던 어느 날. 언젠가 은퇴를 해서 이 거지 같은 약을 끊는 데 전심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신의 갑옷 같은, 그러나 내 영혼이 대가인 알약을 삼키며 거칠게 신음하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생각 보다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은퇴할 만큼 나이를 먹은 것도, 돈을 모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보통이라면 빠르게 다음 직장을 구해야 했지만 나는 지쳤고 유예의 나날들을 보냈다. 몇몇 고마운 지인들이 좋은 자리를 소개해줬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거절했다. 몇 번이나 반복해 온 바보짓을 내가 또 할 리가 없잖아, 빠-가. 나는 더욱 망가질 게 뻔했다.
당신은 좋은 점이 훨씬 더 많이 사라지고
끔찍한 게 훨씬 더 증폭된 지금과 같은 당신이 될 거예요
난 어디선가 보았던 이 글귀를 가장 체감했고 가장 두려워했다. 그래서 퇴사는 너무나도 쉬운 결정이었다. 이 끊이지 않는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려면 근원적인 것을 바꿔야만 했다. 십수 년째 매일 같이 시커먼 바닷속에 뛰어들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찾아야 될 것이 몬지도 몰랐다. 알긴 했었는데 까먹은 거라면 조금 다행이겠다.
이 때문에 내가 끝내 도착하려는 곳에 조금 지각을 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들에게 내 사정을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고 그들은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을 테니까.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족 간의 통화는 길수록 손해였다. 그러나 나는 오늘 엄마와 한 시간이나 즐겁게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비로소 다시 걸어가는 것 같다. 앞으로도 쭉 걸어가려면 나는 생각과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면 나는 어쩌면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