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인생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굴곡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를 시작할 무렵 삶이 꼬이기 시작했다.
잘난 척은 아니지만, 고등학생일 때 전교권에서 놀 정도로 나름 공부를 잘했다 (그때는 이대로 승승장구할 줄 알았지...) 워낙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 탓에, 최대한 꼼꼼하게 공부하고 실수 없이 문제를 풀어내는 학교 시험은 나에게 유리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수능공부에 돌입했다. 수능은 내신과는 다르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야 했고, 너무 버거웠다. 그리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수능 때 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불안감으로 수업과 자습시간에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는 지경이 이르렀고, 하루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화장실로 숨어 들어갔다.
과거의 트라우마들이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떠오르고, 사람이 무서워졌다. 미래는 실패를 향하고 있었다. 어찌할 줄 몰라 허우적댔다. 한 번 훅 빨려 들어가니 늪처럼 점점 잠식했다. 우울해지니 삶의 모든 순간을 부정하게 되었다. 그래도 대학입시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여전히 우울에 허덕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학입시는 하나의 트리거였다. 내가 인생을 살아온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것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우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대학입시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우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느리게 가는 시간 동안 고통에 몸부림치며 느꼈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기록을 결심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이다. 손을 바삐 움직여 까만 글씨로 채운 흰 종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나는 줄로만 알았던 마음의 응어리가 객관적으로 바라봐졌고, 사실은 그렇게까지 냄새가 안 좋진 않더라. 나를 아는 사람은 절대로 알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익명 뒤에 숨어서 써보려고 한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공감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