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 8]
키보드에 뺨을 대고 잠든 적이 있다
써지지 않는 글냄새가 진동했으니
나는 쉽게 깰 수 없었을 테다
꺼지지 않은 모니터는 내내토록 불안했을까?
단어가 되고 싶었을 문자들,
다리가 부러진 채로 주저앉아있다.
나뒹굴의 모양으로.
얼굴이 쓴 단어들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구나
꽤 오래 잠들어있었는데,
볼에는 박힌 글자가 하나도 없고
그러니까 '오래'와 상관없이
한결같이 별말 아닌 타작들
오늘도 내 글들은 허사야
나는 제대로 된 잠을 자러 침대에 눕는다
온통 네 생각을 대고서 잠을 청하는 밤
그러고 보면 너에게 쓸 말도 생각보다 다양치 않구나
.
.
'있지, 그만큼 사랑해'
.
.
그래 봤자, 내가 하는 어떤 모든 말들,
당신에게는
조는 얼굴로 쓴 언어처럼 메롱이겠지
꺼지지 않는 마음은 물어볼 것도 없이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