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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릎 Feb 06. 2023

엉망 스포일러 - 양들의 침묵

[엉망 스포일러] 


* 스포일러지만 엉망 스포일러라서 끝까지 읽어도 무해함.

* 영화 내용과 관련이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봤다는 영화를 나 혼자만 안 본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아바타]는 저에게 척척한 재질의 파랑뿐인 영화고요. [명량]은 저에게 있어 해구처럼 깊이 묻힌 영화입니다. 유명하지만 아직 보지 않은 영화가 수두룩 한 건 제 의도가 아니라 타이밍에 의한 결과라 생각해요. [양들의 침묵]도 아마 유명한 영화이지요? 다만, [양들의 침묵]은 저에게 있어 안 본 영화가 아닙니다. 못 본 영화예요. 한 번 볼까 해서 예고편을 봤다가 너무 놀라 기겁도 못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예고편에 햇빛이 하나도 없었어요. 감옥이거나 어둠이거나 도망 같은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었어요. 그 예고편의 공포가 저를 침묵하게 했습니다. 비명이 파고들 틈도 없이 저를 안도의 반대편으로 끌고 갔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영화가 궁금합니다. 일부러 기피하는 게 잘 되지 않습니다. 아직 결말을 모르는 수많은 영화들 중, 결과가 가장 궁금한 영화가 [양들의 침묵]인걸 보면 이 영화는 저에게 있어 숙명이에요.


[양들의 침묵]이라는 제목을 해체합니다. 


우선은 눈을 감고 '양'을 생각해요. 

'양 한 마리'가 금세 구름처럼 불어납니다. 어느새 양이 아닌 양'들'에 대해 사유해요. 우리가 '양'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그들을 무리화 시키는 걸 보면, 양의 침묵이 아니라 양들의 침묵이 확실히 어울리는 제목이에요. 양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포지셔닝되어 있나요? 가련하고 여린 존재? 금방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릴 것 같은 데서 오는 순수나 멍청? 순해 보이지만 오묘한 시선에서 느껴지는 스산함이 있는 묘한 동물 정도... 그런데 이러한 양들의 면모를 볼 때 당황스럽습니다. 우리가 양들의 삶이나 감정에 잘 이입한다는 점 때문이죠. 양에 대한 측은이, 양에 대한 사심이 그 복슬복슬한 털 마냥 우리의 마음속에 푹 하고 앉아 버리는 느낌이 들어요. 교회에 가면 목사님은 우리더러 어린양이라 하시고, 낯선 사회에 갓 편입될 때 우리는 그 사회에 박혀있는 사람에게 '몰이'를 당합니다. 양의 함축이 애잔함이라고 할 때, 이제부터 양은 나와 다름없습니다. 


다음엔 눈을 뜨고 '침묵'을 떠올려요.

침묵, 앞에서 연상한 양들의 모습에 궁합이 잘 맞는 단어입니다. 겁에 질릴 때, 놀랄 때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행위는 '비명'이지만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극도에 달하면, 최우선 순위는 '비명'이 아니라 '침묵'이 됩니다. '침묵'은 일종의 죽은 체입니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 휘몰아치는 것으로부터 무사하고 싶은 것, 도망이 늦었다는 판단에서 최후로 남겨둔 필살기 같은 것. 주변보다 나만 오롯이 믿어야 할 때 빌어야 하는 것. 살겠다는 것. 그것을 침묵이라고 할까 봐요. 그래서 저에게 침묵은 대화의 반대말이 아니라 죽음의 반대말입니다. 


잘 살지 못할 것 같은 <양들>과, 살기 위한 감각인 <침묵>이 만났습니다. 살지 못할 것 같은 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장면들이 그려져요. 그런 장면들로 엮인 개연 위에, 갈등이 박혀 있겠죠. 어떤 침묵이 다른 양들을 병들거나 죽게 하는 것 같은! 침묵의 속성에는 반항과 이기가 있습니다. 거기에 잔인함이 있어요. 스파크가 튀어요. 갈등이 양들보다 더 큰 무리로 뭉게뭉게 피어나요. 내가 침묵하면 다른 사람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 내가 비명을 지르면 다른 사람이 무서워서 침묵하게 되는 것. 자 그럼 다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요? 같이 대화해 봅시다. 그리고 난 뒤, 저는 살아서 영화를 볼 거예요.




양들의 침묵 예고편   THE SILENCE OF THE LAMBS - Trailer ( 1991 )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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