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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Sep 24. 2023

[전시비평] 알폰스 무하의 여인들을 위한 무대

알폰스 무하 이모션 인 서울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가을이 잘 느껴지는 날이었다. 정말 오랜만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방문했다. 야외 가설무대에서 패션쇼가 진행되고 있었고, 작은 팝업 부스 이벤트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디디피에서 총 세 가지 전시를 관람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인상을 남겼던 전시 '알폰스 무하 이모션 인 서울'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전시기획자인 본인의 시선에서 해당 전시에 대한 조닝, 콘텐츠, 동선 등 연출에 대한 디테일을 유사 사례와 함께 서술해 보고자 한다.


 알폰스 무하 이모션 인 서울 전시는 일러스트 작가 알폰스 무하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일반적인 전시는 아니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글로벌 브랜드 iMUCHA Project의 일환이다. 그래서 디디피와 잘 어울리는 콘텐츠이지 않나 싶다. 일반적인 알폰스 무하 전시였으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하지 않았을까?


 본 전시는 총 4개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관 - 알폰스 무하관 : 알폰스 무하 일생을 담은 연대기와 일부 디지털화 작품 감상

2관 - 멀티미디어관 : 알폰스 무하의 디지털화된 작품을 대형 프로젝션 영상과 오 케스트 음악을 통해 감상

3관 - 작품관 : 알폰스 무하의 실물 작품 감상

4관 - 슬라브 대서시관 : 알폰스 무하의 작품 슬라브 대서시를 미디어 아트화한 영상을 통해 감상


 본격적인 관람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꽤나 인상적인 연출이 있었다. 전시의 개요 옆에 배치된 미디어 작품이었는데, 작품 속 인물을 마주하면 인물이 살아났고, 그는 나에게 앞으로의 공간 경험에 대해 소개했다. 순간 이와 비슷한 국내 전시 사례가 떠올랐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불교회화실에 전시되었던(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승려 초상화 영상이다. 해당 영상은 승려 초상 원작을 토대로 3D 모델을 제작되었고, 모션캡처 기술을 적용해 만들어졌다. 4K급 모니터로 상영하여 실제로 살아 숨을 쉬는 듯한 영상미가 돋보인다. 관람객이 해당 영상 앞에 서면 화면 속 승려가 반응하듯 영상이 시작되는 연출이다. 해당 연출은 관람객과 작품 속 인물이 소통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 속 인물을 마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양방향의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전시의 몰입도와 기대감을 높이는 좋은 장치가 된다.


 이후 1관에 진입하면 일러스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작가 알폰스 무하에 대하 소개가 연표 그래픽 패널을 통해 소개되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아이무하에 디지털화 작품 몇 점이 모니터로 연출되어 있었다. 이후 막을 걷으며  2관인 멀티미디어관으로 넘어갔다.

 

 2관에 진입하자마자 가장 압도되었던 부분은 음향이었다. 전시관 전체에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알폰스 무하 작품으로 연출된 높이가 족히 4m는 넘어 보이는 영상보다 더욱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 관에서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는데 가장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알폰스 무하 작품 속 여인들의 패션쇼'였다. 여인들이 작품 프레임에서 벗어나 런웨이 위를 가득 채우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관람객을 향해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영상 속에서 몇 가지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는 영상과 음악과의 조화가 아쉬웠다. 이 영상관에서 가장 힘 있게 느껴졌던 것은 오케스트라 음악이었다. 이유는 뚜렷한 기승전결 때문이었는데, 그게 반해 영상은 반복적인 화면 전환 방식과 서사가 보이지 않는 나열식 작품 배치가 다소 지루했다. 서사가 없이 화면 속 연출이 중심이 되는 대형 영상을 제작하다 보면 배경음악에 의지를 많이 하게 된다. 배경 음악의 템포에 맞추어 화면을 전환하거나 연출하고자 하는 화면 속 개체와 어울리도록 음악을 선정한다. 이번 멀티미디어관의 음악과 영상은 이러한 디테일한 매칭이 아쉬웠다.


 두 번째는 영상의 연출에 대한 기승전결이 부족했다. 연출이 중심이 되는(스토리를 최소화한) 이러한 영상 역시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연출 상에서 가장 강세를 주는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관람객의 경험이 극대화되고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감상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관의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비중의 연출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힘을 빼고 뒤로 갈수록 휘몰아치는 연출이 있으면 관람의 몰입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세 번째는 영상의 메인 시점이다. 멀티미디어관과 같은 다면 영상을 제작하다 보면 관람객의 주된 시점을 염두하고 제작하게 된다. 제작자가 관람객의 시점을 좌측에서 우측 또는 위아래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며 제작하여 다면 영상의 특장점을 극대화하거나, 영상 관람이 지루하지 않도록 연출한다. 물론 이런 구체적인 시점 계획 없이 제작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다면 영상관 자체가 하나의 공간으로(숲이나 바닷가와 같이) 연출하여 관람객이 어떤 공간에 진입한 듯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관람하는 경우 이때 시점은 철저히 관람객의 자율에 맞긴다. 멀티미디어관의 영상은 시점에 대한 연출 의도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가운데 좌석에 앉아 앞뒤 좌우를 마구 움직여가며 혹시 놓치는 씬이 있지 않을까 허겁지겁 관람하게 되었다.(이런 관람방식을 유도한 걸까...?)

 

 3관은 작품관으로 붉은색 벽에 알폰스 무하의 포스터 작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 관에서 독특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작품을 밝히고 있는 조명이었다. 작품의 프레임에 맞추어 조명을 세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해당 전시에 경우 작품 별로 원형의 스폿 조명을 사용했다. 마치 연극 무대 위에 주인공을 비추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 속에는 주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그 작품 속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무대적 장치로써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네 번째 관은 슬라브 대서시관으로 알폰스 무하가 무려 18년 동안 그린 체코와 다른 나라의 슬라브 민족의 신화와 역사를 그려낸 작품을 디지털화한 영상을 관람하는 코너다. 작품 속 인물들이 반복적인 움직임을 취하며 마치 그림 속에서 살아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총 4개의 관을 끝으로 알폰스 무하의 전시는 끝이 난다.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다양한 인상을 주었다는 점에서 한 번쯤 관람해 볼만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미디어 전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표를 구매하기까지 망설임이 있었지만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전시를 관람할 때마다 연출자의 의도가 느껴지거나, 고민이 보이는 경우가 늘었다. 그럴 때마다 꽤나 뿌듯한 기분이 든다.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경험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걸고, 생각하고, 추측하고, 어림잡아가며 무엇이든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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