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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사람 최지인 Sep 29. 2023

최지인에게 - 1

아버지가 아들에게 쓰는 편지

아버지는 종종 글을 보내신다.


때로는 가족의 이야기를, 때로는 세상 사는 이야기를 보내시지만 가장 자주 보내시는 것은 아들인 나에 대해서다.


추석을 맞아 아버지의 글들을 보다가 2017~2018년 내가 스타트업을 할 때 써주셨던 글들을 보게 되었다. 그때는 사업이라는 것을 잘 모르기도 했고 젊은 혈기에 좌충우돌 부딪혔었는데 그 모습을 곁에서 보고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글들이 나에게도 많은 힘이 되었지만 사업으로 힘든 몇몇 다른 친구들에게도 힘이 되었었기에, 각자의 여정으로 힘든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려본다. 중간중간에 있는 사진들은 아버지의 필름카메라로 내가 찍은 사진들이다.


<16.09.13. 아버지의 안경>


<2017.10.31>

지난 추석에 최지인이 내려와서, 처음으로 장래 문제에 대해 한마디 던집니다. 창업과 관련해서 판교의 현 사무실을 무상으로 쓰는 내년 8월까지, 최선을 다해 보고 결단을 내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즈음 이제까지의 일을 현실적으로 판단해 보고 취업도 생각하겠다는 뜻입니다. '다음카카오'나 '네이버'가 마음에 있답니다.)


 제 생각대로, 기어이 해내는 놈이라,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말만 던졌습니다. 내심 바라던 바였으니 쾌재를 부른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곤 지난 토요일에 제 어미 생일이라고 내려와선 분위기도 맞추고, 고기도 구우면서 밤늦도록 놀아주더니, 다음날 밭에 들렀다가 목욕하고 돌아오는 길에, 상표등록 비용 50만 원 주시면 내년 1월에 돌려드리겠다나. 요즘 형편이 어렵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어떡하나?'라는 혼잣말이 들립니다.


다음날 아비라서, 안된 마음이 들어서 보내주었습니다. 오늘 카톡 사진 내용을 보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이 보입니다. 아비의 마음은 제 하고 싶은 것도 좋으나, 굴곡 없고 근심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젊은 놈들은 혈기가 흘러넘쳐 그렇지를 못한 모양입니다. 이리저리 돌고 돌아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두고 볼 수밖에. 아비는 오늘도 아무런 대책 없이 자식이 하는 일을 지켜보고 기다릴 뿐입니다.  


<17.01.06. 하늘공원에서, 아버지와 아이들>


<2018.01.28>

지난 금요일 늦게 왔다가, 이틀 동안 집에서 쉬고, 아버지에게 야윈 손과 발과 마음을 보여주고 올라 간 최지인에게 조금 전 전화가 왔다. 올라 간 후, 조만간 전화가 오리라는 예감이 적중했다. 이 세상을 만만하게 보고 덤벼 들었던 것이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물정 모르는 겁 없는 애송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pc를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와 제 어미의 안부를 묻고 난 뒤, 스타트업을 정리하겠단다. 수익구조 맞추기가 힘들고, 멤버들도 각자의 일로 돌아가고자 한단다. 그동안 앞 뒤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 것을 안다. 멋모르고 덤벼들었던 이 세계는 의욕과 열정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 멤버들과 최종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끝낼 모양이다. 작년 연말까지 쓰기로 되어있던 운영자금 삼천만 원 중에서 아끼고 아껴서 남은 금액 육백만 원을 나누고, 며칠 바람을 쐬고, 청주에 다녀 간다 한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전력투구를 하라. 무한지원을 하겠다. 집을 떠나면서 가졌던 스무 살의 열정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놈을 안다. 제 역할을 충분히 할 놈이라는 것을.


- 최지인이 한 단락을 마치고, 다음 단락으로 가려합니다. 아비로서 응원합니다.



<2018.03.12>

나무를 옮겨 심고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하고 있는데, 늦은 시간에 보내왔습니다. 그동안 최지인이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장의 자소서로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내 역할은 없다' 그냥 두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비로서 자식을 믿는다는 것이 참 흐뭇합니다.


<16.09.07. 한강꽃>


이 글들을 적어 나에게 보내실 때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담담한 어투로 꾹꾹 눌러 담으신 그 마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더 궁금해진다. 아마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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