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의 이름은 '이봄이'이다. 앞으로 써도 이봄이, 뒤로 써도 이봄이. 주민등록증에 한자 한 글자 없는 순우리말 이름이다.
어머니는 62년생이신데 그 나이대의 분들 치고는 이름이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다.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어머니는 작년에 개명을 하셨다. 개명 전의 원래 이름은 '이점례'.
태어났을 때 어깨에 큰 점이 있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그냥 점례라고 짓자 해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나무위키에 보면 1900년대 초반까지 많이 붙였던 이름이라고 하는데 1960년대 생인 우리 어머니에게는 너무 고민 없이 붙이신 이름이 아닐까 섭섭하기도 하다.
(구)점례 씨는 고생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고생을 다하며 타지에서 자리 잡고자 노력하면서 어린 맘에 혼자 눈물짓던 날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옷 가게가 운 때가 맞아 잘 풀려 청주에서 손꼽히는 가게가 되는 점례의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주말 아침마다 아버지와 나는 '점례! 밥 줘!'를 외치며 어머니에게 밥을 얻어먹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휴 지겨워 지들이 좀 해먹지'라며 툴툴거리기도 하셨다. (오해하실까 봐 말씀 드리면 우리 집은 명절에도 아버지와 내가 둘이 음식을 다 준비하는 가부장적인 집안과는 거리가 먼 집안이다)
어느 날부터 (구)점례 씨는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봉순이로 할까, 봉담이로 할까, 복례로 할까 고민을 하시다가도 또 현생이 바빠지면 잊어버리곤 했다. 아버지도 일이 바빠 신경 쓰지 못하시다가 퇴직하시고는 '엄마 이름 좀 바꿔줘야겠다' 하시더니 이봄이라는 이쁜 이름을 가져오셨다.
처녀 시절 옷 가게에서 점례라는 이름이 부끄러워 뽀미 언니라고 스스로 부르셨는데 그 역사를 그대로 가져와 좀 더 이쁘게 다듬어 '봄이'라는 이름을 정했다. 어머니도 마음에 드셨는지 함뿍 웃으시더라.
이봄이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 웃음도 많아지고 부드러워지셨다. 힘들었던 지난 겨울들을 넘어 이제 봄을 맞이한 사람 같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이제 봄이다. 우리 어머니의 이름은 이봄이다. 나는 이봄이 여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