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속의 너와 나
시간은 오전 8시를 조금 넘었다.
약 5개월 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전날 밤,
그녀가 로마에서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연락이 왔다.
이스탄불을 거쳐, 아침 8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돼
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을 떴다.
그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대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그녀를 만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녀와 나는 여전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입국심사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녀는 입국심사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했다.
평소라면 그녀가 이미 자야 하는 시간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대화하고 있다.
마침 그녀가 이제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고 기뻐했다.
그제야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입국심사 대기자들 때문에 시간이 자꾸 지연되기 시작했다.
호텔 체크인 시간이 이미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캡슐호텔에 연락해 체크아웃 시간을 연장했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카페에서 졸고 있을 그녀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사히 호텔에 도착한 그녀는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출근길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이탈리아 노래를 틀었다.
그녀와 함께 어딘지 모를 이탈리아의 작은 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따라 부를 수 없었지만, 잠시 이탈리아에 머무른듯한 기분은 분명했다.
곧 그녀를 본다는 사실 하나로
설레다가도 울컥거리는 마음이 가득 찼다.
그렇게 나는 출근길 내내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회사에 도착해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오늘 그녀가 제주로 와요.”
그녀가 나를 보기 위해
이 먼 거리를 날아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오늘만큼은
손님이 주문마감시간 보다 늦게 오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비가 왔고,
늦은 시간에 방문하는 손님은 없었다.
하루 종일 들떠 있던 나를 위해
동료가 말했다.
“마감정리는 우리가 할게요. 얼른 가요, 오늘은 여자친구 만나야죠.”
고마운 마음으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액셀을 밟았다.
회사에서 공항까지는 약 한 시간.
그날따라 그 길이 더 길게 느껴졌다.
비가 오고 안개가 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공항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가는 길에
24시간 무인 꽃집에 들렀다.
그녀에게 줄 작은 꽃 한 송이를 골랐다.
그리고 다시 공항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자기야, 나 제주공항에 도착했어. 드디어 네가 있는 제주에 왔어!”
공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단숨에 터미널 안으로 달려갔다.
심장은 요동쳤다.
손에 땀이 고이고,
다리는 저절로 빨라졌다.
“이제 정말 그녀를 만나는구나.”
머릿속이 하얘졌다.
공항에 들어서서 그녀를 찾았다.
“어디야?”
“3번 게이트 밖에 있어.”
잠시 후,
“너 안에 있지? 왼쪽을 봐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이미 3번 게이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텅 빈 공항 안에
오직 그녀만 서 있었다.
그녀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성큼성큼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
커다란 볼캡 모자를 눌러쓴 얼굴은
작고 귀여웠다.
모자가 얼굴보다 더 커 보일 정도였다.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이내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내게 달려왔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움직이지도, 숨조차 쉬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내 앞에 와서
그대로 안겼다.
손에 들고 있던 캐리어는
그녀의 손을 빠져나와
스르르, 내 옆을 지나쳤다.
소리 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녀는 두 팔로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그녀와 만나기 전 약속했던 것을 기억하고
한국말로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말없이
조금 더 깊게 안았다.
그리고 그녀도 약속했던 대로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를 더 안았다.
그녀의 숨결, 체온, 향기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그녀는 정말로,
내 앞에 있었다.
짐을 들고
차로 향했다.
차 문을 먼저 열어주고
짐을 실었다.
그녀는 놀라며 말했다.
“아무도 나한테 차 문을 열어준 적 없었는데… 네가 처음이야.”
나는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그녀는 그 작은 배려에도
고마움을 아끼지 않았다.
차 안에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그녀를 한 번 더 껴안았다.
정말로 그녀가 맞았다.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귀여웠다.
지쳐 있을 그녀를 밖으로 끌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가서 식사하자고 말했고, 그녀는 흔쾌히 그러자며 했다.
공항을 떠나기 전,
치킨을 미리 주문해 두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비는 멈추지 않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천천히 운전하며, 그녀와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우리는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이제는 화면 넘어가 아닌, 한 공간 속에서
눈을 맞추며 대화할 수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그녀의 눈동자는
맑은 갈색이었다.
그리고 아주 깊고 아름다웠다.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이 지나
집에 겨우 무사히 도착했다.
테이블을 옮겨 그녀에게 치킨을 준비해 줬다.
그녀는 치킨을 맛있게 먹었고,
나는 그걸 보며 안심했다.
샤워를 마치고,
우리는 나란히 누웠다.
그녀는 내 옆에 있었다.
제주에, 그리고 내 하루 속에
그녀가 들어온 첫날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남이었기에
우리는 한참 동안 미소를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조용히 함께 잠들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회사에서 1주일의 휴가를 허락받았다.
그녀에게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짜 내가 살고 있던 세계를.
이제,
그녀와의 일주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