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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Aug 27. 2021

걱정을 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좋을 텐데

한 출판사에서 초등학생 전용 경제 글을 써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출판사에서 읽어보시라고 베타 테스트 차원에서 초등학생용 경제 글을 브런치에 쓰기 시작했는데 조회수가 나오지 않고 구독자 수도 늘지 않자 마음이 편치 않아졌다. 게다가 출판사에서 요청해서 보낸 출판 기획서에 대해 아무런 연락이 없자 더욱 조바심이 났다. 현재 편집위원들과 검토 중에 있다든지, 뭔가 피드백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기획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편안하지 않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하는 일이 있다. ‘결국 나는 죽는다’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다시 편안해진다.

매번 글을 발행할 때마다 내 글이 어떻게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지에 대해 걱정이 된다. 조회수가 생각보다 나오지 않으면 독자들이 원하는 글을 쓰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상사 눈치 보기 싫어서 회사를 나왔는데, 작가가 되고 나니 독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책도 출간하고 돈도 벌 수 있기에 투입한 노력보다 성과가 나지 않을 때면 너무 괴로웠다.

돌이켜보니 타인의 눈치가 보여서 하지 못했던 일들이 참 많았다. 대학생 때는 대기업이 좋아할 만한 과를 선택했다. 담배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담배회사에 10년 넘게 다녔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에 취해 담배에 대한 내 가치관도 바꾸었다. ‘담배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기호식품이다!’   ​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는데 왜 이리도 눈치 보면서 사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죽고 나면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브런치에 간간히 올라오던 글이 사라져도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을 잘 살아갈 것이다. 가족들과 친구 몇 명이 나를 기억해 줄지 모르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 그들에게서도 점점 잊힌다. 2009년에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세상을 다 잃은 느낌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어느덧 엄마에 대한 기억이 많이 희미해져 버렸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잊힌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지금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관심도 없다.

중학교 시절에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게임에 빠져서 시험을 망친 적이 있었다. 그때 성적표를 받아 들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고민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감정 에너지를 소비했는지 모르겠다. 시험 한 번 망친 것이 그렇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전부처럼 느껴졌다. 부모님께 성적표 사인 받을 용기도 안 나서 몰래 조작이라도 해야 하나란 생각도 했으니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나의 고민이 30년 후의 내가 돌이켜 봤을 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출간하면 책은 잘 팔릴까? 내가 가진 주식은 계속해서 오를까? 아이들이 잘 자랄 까? 고민을 해서 고민이 준다면 계속 고민을 하면 되는데, 고민을 해도 고민은 줄지 않는다.

회사를 나오고 동기들로부터 가끔씩 연락을 받는다. 그들에게 나는 회사 사람이 아닌 일반인이다 보니 대화하기 편하게 느꼈던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소문이 안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찌 되었건 연초에 승진 인사가 있었는데, 승진한 동기와 승진을 못한 동기가 하루 간격으로 연락을 해왔다. 재미있는 것은 승진한 동기는 자신의 능력보다 과분한 자리를 받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었고, 승진을 못한 동기는 다른 동기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승진을 하던지 못하던지 간에 동기들은 모두 고민했다. 승진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윗분들에게 능력을 인정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냐. 게다가 월급도 많이 오르잖아” 그러면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월급은 생각보다 얼마 안 올라, 월급은 좀 적어도 좋으니 맘 편히 살고 싶다.” 승진 못한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이번에 승진할 차례인데 윗사람이 못 챙겨줬으니 너한테 부채감을 갖고 있겠네. 앞으로 회사에서 일할 때 부담 없어서 좋겠다.” 그 말을 듣고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도태된 것 같아서 너무 괴로워. 다른 동기들은 관리직 다는데 나만 실무진이어서 너무 괴롭다. 게다가 월급도 안 오르고 말아.”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기보다 괴로워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승진한 친구는 막중한 책임감에 괴로워하고 승진을 못한 친구는 도태되었다고 괴로워한다. 승진하니 월급이 올라서 좋다고 하거나, 승진 못해서 업무에 대한 부담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측면은 잘 보지 못한다.

얼마 전에 그림을 그리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불평했다. 얼마 전에 책 삽화 의뢰가 들어왔는데 보수가 너무 적고 일이 많다고 투덜 되었다. 그 친구의 상황은 이해되었는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사장은 그 친구의 그림을 인정해서 연락을 주었을 텐데, 불평 가득한 상태에서 나오는 그림은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명작가에게 처음부터 큰 금액을 제시하는 일은 없다. 어떤 피디가 무명 개그맨에게 유재석 수준의 돈을 줄 테니 작품을 같이 하자고 하겠는가? 적은 금액일지라도 제안이 들어왔을 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고, 의뢰 준 사람이 감동하면 계속해서 일을 가져다주지 않을 까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인지도도 올라가고 인기도 끌게 될 텐데 말이다. 인지도가 올라가서 유명 작가가 되면, 출판사와 작가의 지위가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이때 즈음되면 출판사가 알아서 계약 금액을 올려줄 것이다.

솔직히 말은 이렇게 하면서 나 또한 적은 보수에 힘들어했다. 한 경제 매거진으로부터 글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보수가 너무 낮아서 고민되었다. 글 한 편 쓰는데 하루가 꼬박 소요되는데 업체에서 제시한 금액은 6~8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시급으로 환산해보면 최저시급보다 낮은 금액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써야 하나란 고민을 했다. (물론 고민 끝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결심하고, 글을 열심히 써서 업체에게 보냈다.)

내가 하는 일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행복해지기 쉽지 않다.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근본적 목적은 행복추구다. 글을 쓰는 순간 행복하니깐 글을 쓰는 거다. 돈벌이만을 위한 글쓰기가 되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해서 글 쓰는 시간이 불행해진다. ​

Worry, whatever its source, weakens, takes away courage, and shortens life. - John Land Caster Spalding​

걱정은 출처가 어떠하든지, 우리를 약하게 만들고, 용기를 뺐어가며, 삶을 단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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