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런던 사람들
런던은 정말 살고 싶단 생각이 드는 도시였다.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한 건 퍽 낯설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깨끗하고 세련된 도시, 친절한 사람들, 관광객과 현지인이 적절하게 조화된 모습이 좋았다. 왠지 모르게 서울과 닮았다고 느꼈다.
또, 길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유독 서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도 많다. 유럽이 좋은 이유는 사람들이 느긋하다는 점이다. 이건 나라가 오랜 기간 걸쳐 발전해 간 덕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부러움을 느낀다. 자유롭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영국 사람들, 거기에 더해 심지어 반려견들조차도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하이드 파크에 있는 호수에 반려견을 휙 보내기도 하고, 에든버러 딘 빌리지에서도 하천에 원반을 던지면 큰 반려견은 당연하다는 듯이 헤엄쳐서 가져온다.
우린 숙소를 찾을 때 먼저 한인 민박 위주로 둘러봤다. 투어도 거의 하지 않는 우리가 처음 낯선 땅을 밟았을 때, 조금은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끼고 싶었기에. 하지만 지도로는 쉬어 보였던 숙소 위치가 막상 역에 도착하니 혼란스러웠다. 23인치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계단을 피하려면 좀 더 돌아가야 했으나,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내리니까 바로 앞에 찍고 나가는 출구가 있길래 우리는 냅다 나갔다가 계단과 마주한다. 심지어 잘못 나갔다. 마침 앞에 직원(A)이 있어서 사정을 말하고 다시 들어간 후, (그래도 잘 모르겠어서) 도움을 요청하니 그분(A)도 다른 분(B)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때 다른 분(B)은 우리가 손목 스트랩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잘했다며 칭찬도 해주었다.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조언과 함께.
그런데 숙소 위치가 설명해 주기 꽤 어려웠나 보다. 좀 더 걸어가서 또 다른 분(C)과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마지막 분(C)이 역 출구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신다. 그러곤 마지막엔 다리를 건너야 한다고 친절히 알려주시기까지. 다리를 건너려는데 난관 봉착. 또다시 계단을 마주한다. 며칠 다니면서 반대쪽 다리엔 경사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때는 알려주는 대로 충실히 가는 것도 벅찼다. 그래도 몇 개 안 되는 계단이라 올라가려고 준비를 하는 중, 러닝을 하시던 분이 도와주겠다고 하더니 캐리어를 올려주시고 쿨하게 떠나신다.
원래 패딩턴 역에서 5분이면 가는 숙소 가는 길이 무척 험난했지만,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4명의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힘들다기보다는 마음이 훈훈했다. 런던 오자마자 인류애 충전..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숙소에서 마주한 사장님도 매우 친절하셨다. 오느라 고생했다며 활짝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 주시니 몸은 물론이고 마음도 따듯해졌다. 또, 이후에 기차를 놓쳐 런던에 돌아가지 못하고 다음 날 오후 느지막이 도착한 날, 조식 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밥 먹었냐며 밥도 챙겨주셨다. 마침 이날은 한식이었어서 더 든든하고 소중한 한 끼였다.
런던의 첫 일정 하이드 파크에 가던 중 여자친구가 재미교포라 한국에 가 본 적 있다며 명동, 이태원을 말하는 사랑꾼 보안 경비원, 로열 앨버트 홀에서 우리가 각자 열심히 사진을 찍는 걸 보고 먼저 사진을 찍어준다던 경찰, 그리고 본인은 같이 찍겠다던 또 다른 경찰.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다양한 사람의 친절함을 느끼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한다. 여행 초기부터 긍정적인 기운을 과다 복용한 덕분에 영국에 대한 낯섦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옅어진다. 그렇게 런던에서 일정을 마친 후, 에든버러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캐리어를 이끌고 킹스크로스역으로 가던 중 다시 한번 노신사의 도움을 받는다. 꼭 리프트를 이용하라는 말과 함께. 동생도 젊은 남자의 도움을 받고 Have a good trip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예전에 아빠가 서울 지하철에서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려던 중국인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겠지? 한국에 오는 외국인에게도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오래 남겠구나 느낀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 빅벤, 내셔널 갤러리, 피카딜리 서커스, 웨스트엔드, 타임브리지, 테이트 모던, 이층 버스 등 모두 좋았지만 런던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단연 사람 덕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