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1. 영국 말번에서 만난 인연 (1)

by 일월



말번(Malvern)? 당연히 처음 듣는 도시였다. 우리가 처음 여행 계획을 짤 때 본 건 아래 사진이었다.



히스토리 보이즈 투어 일정



히스토리 보이즈(히보) 투어 일정. 물론 다 처음 듣는 도시. 아 이때까진 케임브리지 일정이 없었는데, 이미 예매도 마치고, 일정을 다 짠 후 확인하니 케임브리지 일정이 생긴 걸 발견. 그것도 우리 여행 일정에 딱 들어맞는 날짜에.. 케임브리지에서 히보라니.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으니 아쉬움은 빠르게 털어낸다. 투어 장소 중 우리나라에서도 나름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 바스(Bath) 정도였다. 하지만 바스 일정은 우리와 맞지 않았고,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히보였으니 딱히 아쉽진 않았다. 그러곤 우리 일정에 맞춰 말번(Malvern)으로 결정했다.


아무런 기대도 없던 도시에 아니, 기대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정보가 전무했으니까. 그레이트 말번(Great Malvern) 역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은 매우 조용했다. 그리고 관광객처럼 보이는 몇몇 사람들은 트래킹 복장이라 어렴풋이 "트래킹 하러 오는 곳인가 보다"라고 짐작했다.



그레이트 말번역과 근처 모습



우리가 본 곳은 딱 극장 근처였기에 한적하고 평화로운 작은 도시처럼 보였다. 물론 실제로도 그런 듯하다. ChatGPT에 따르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라고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영국 말번(Malvern)은 잉글랜드 중부 우스터셔(Worcestershire) 지역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자연경관과 역사적인 매력이 풍부한 곳입니다. 말번 힐즈(Malvern Hills)라는 구릉지대가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오랜 역사를 지닌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극장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운 후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을 둘러보고 로비에서 기다리던 중 한 어르신이 인사를 하며 어디서 왔냐는 등 말을 걸어 간단히 대화를 나눴다. 그저 여행 중에 만난 흔한 친절하고 살가운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때까지는.



공연을 만족스럽게 보고 점심에 점찍어뒀던 식당을 가서 밥을 급하게 먹고, 기차를 타러 가려고 구글 지도를 확인하는데 기차가 취소됐다고 뜬다.. “아닐 거야”하며 서둘러 간 역에는 정말 취소가 떠 있었고, 그 후 마지막 런던행 기차는 약 2시간 후.. 잠시 기차역 의자에 앉아 망연자실하며 그래도 여기 앉아있을 바엔 나가서 돌아다니자며 대책을 강구하던 중, 극장에서 만난 어르신이 지나간다! 어?? 서로 알아보고 인사하다가 내가 짧은 영어로 기차가 취소됐다고 하니 좀 더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우리가 영어를 못하자.. 번호를 물어보고 문자로 보내주시기 시작했다. 건축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본인을 소개하셨고, 마침 동생이 건축학과 졸업 후 설계사무소를 다니고 있어서 알려드리자 더 마음의 문을 여신 듯 보였다. 그리고 몇 달 전, 건축가 조민석의 서펜타인 파빌리온 개관식에 갔었다며 사진도 보여주신다.



런던 숙소가 패딩턴 역 근처라 첫 번째 일정이 하이드파크였던 우리는 한국 건축가의 파빌리온이 있는 것도 모르는 채 지나갔다. 마침 한인 민박 사장님도 동생이 건축설계사무소 다닌다고 하니 이 정보를 알려주셔서 일정에 끼우던 참이었다. 이렇게 다시 한번 듣게 되니 동생에게 "우린 어떻게든 알게 되고 보러 갔겠다"라고 말한다.



건축가 조민석의 서펜타인 파빌리온과 전시 공간



런던을 떠나기 전(그러고 보니 런던의 처음과 마지막을 하이드파크로 장식했구나) 다시 오로지 파빌리온을 목표로 하이드파크에 간다. 매우 만족스러워서 더 오래 머물고 싶고, 옆에 다른 전시들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발길을 뗄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번역기로 차근차근 대화하니까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기차가 오기 20분 전쯤 런던 가면서 필요한 거 없냐며 물이나 간식거리를 사주시겠다고 하신다. 당연히 괜찮다고 했지만 마트로 향하시더니 물이랑 음료수, 젤리, 과자를 사서 챙겨주셨다. 무척 감사한 마음에 사진도 함께 찍자고 했다.


이때까지도 기차가 취소될지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떠날 준비를 하던 중.. (사실 나는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엄청 재밌고 추억이라 생각했지만, 동생은 매우 초조해하며 계속해서 구글 지도를 확인했었다) 결국엔 마지막 남은 기차도 취소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애초에 런던에 돌아가려고 기차역에 왔을 때부터 직원은 없었다. 티켓부스라고 하기도 애매한 아주 작은 공간은 닫혀 있었고. 이때 우리보다 발 벗고 같은 상황인 동지들과 이야기 나누고, 어디론가 전화도 하며 도와주셨다. 하지만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다른 지역까지 차로 데려다줄 테니 그곳에서 런던으로 가거나(물론 그 지역에서도 런던행 기차는 모두 끊긴 상태였다), 아니면 우리가 괜찮다면 본인 집에서 머무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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