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에서 마우스피스를 느끼다

연극 마우스피스 투어

by 일월



스코틀랜드는 해리포터 배경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는 연극 마우스피스의 배경으로 익숙하다. 우리가 니스를 포기하고 에든버러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기도 하고. 3년 전에 딱 한 번 봐서 제대로 된 후기도 없지만, 그럼에도 기억 속에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다(자세한 내용은 조금 더 밑에서).



스코틀랜드의 둘째 날은 마우스피스 투어로 “솔즈베리 언덕 -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 - 트래버스 극장 - 국립현대미술관 - 딘 빌리지” 코스를 짜고, 에든버러 곳곳을 뚜벅뚜벅 누린다(물론 모든 일정이 마우스피스에 등장하는 건 아니다). 무대에 단출하게 구현되어 있던 솔즈베리 언덕. 그곳에 직접 올라가고, 잠시나마 주인공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실제로 한 남자가 혼자 앉아 있어서 “어 저기 데클란(남자 주인공 이름) 아니야?”하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동생이 솔즈베리 언덕을 내려가다가 삐끗하는 바람에 걷기 힘들었을 텐데도 군말 없이 열심히 걸어 다닌다.



솔즈베리 언덕과 에든버러 캐슬 (feat. 데클란..?!)



그렇게 파스 투혼을 하며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에 도착했다. 여행 중 다닌 9곳의 미술관과 박물관 중 손에 꼽히는데, 인상 깊었던 이유는 지역의 과거 전경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모인 구역이 따로 있었고, 이 공간은 주로 스코틀랜드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순간이 그림으로 펼쳐져도 매우 아름다운데, 세월의 흔적을 그림으로 마주하니 사뭇 낭만적이다.



파스 바르는 동생과 과거 스코틀랜드 풍경 그림



그리고 에든버러 캐슬은 멀리서 바라보며 트래버스 극장에 도착! 트래버스 극장은 현대 연극 전문 극장으로 신진 극작가의 창작을 돕는 공연예술 기관이다. 이곳에 마우스피스 대본집이 있다는 글을 보고 샅샅이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서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사실 이 극장에서 공연을 보기로 한 것도 아니고 잠시 들른 것뿐이지만 도착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모습이 펼쳐진다. 데클란이 이 앞에서 낯설어하던 모습이 우리가 쭈뼛쭈뼛 기웃거리는 모습과 닮아 보였을까. 트래버스 극장이 젊은 창작자 발굴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걸 알기에 이 공간에서 탄생해 뻗어나갔을 수많은 공연이 상상되고, 응원하는 동시에 힘을 얻기도 한다(참고로 오래전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히스토리 보이즈가 공연된 두산아트센터와 트래버스 극장이 함께 신작을 개발하고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했던 적도 있다).



에든버러 캐슬 (주차장)을 지나 트래버스 극장



전날, 투어 중에 에든버러 도시 자체가 문화유산(찾아보니 정확히는 에든버러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더 문화 도시라는 수식어가 와닿는다. 이렇게 극장뿐만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도 시내 곳곳에 참 많다. 심지어 박물관과 미술관은 무료다. 그러다 문득,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연극 마우스피스의 내용은?
솔즈베리 언덕에서 우연히 만난, 전혀 다르게 살아온 리비와 데클란이 "예술"이라는 매개로 서서히 가까워진다.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이던 리비는 데클란을 통해 다시 이야기를 쓰게 되고, 데클란도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고 갈등을 빚는 과정 속에 관객은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데클란은 문화 소외 계층이다. 눈 돌리면 중세 시대 성이 있고, 문화가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에든버러에도 데클란이 존재한다. 문화란 가진 사람들이 누리는 거라는 편견이 있어서일까. 무료로 누릴 수 있음에도 무료라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나와 문화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나 같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정 짓기 때문이다.



맞는 말일까? 실제로 문화는 사치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벽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어렵게만 느껴지던 문화를 접하고 좋아하게 되면서 삶이 풍요로워졌고, 이를 많은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확장시키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이 누굴 뜻하는 거였을까. 지금 당장 내 눈에만 보이는 주변 사람들 아니었을까?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문화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우연히 마주친 문화가 삶을 변화시킬 순 없을까? 수많은 물음과 궁금증 사이에 여전히 답을 찾진 못했고 당연히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지만, 어찌 됐든 내 편협한 시야를 실감한다.



극 중 리비가 데클란을 데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간다. 무료라고 알려주면서.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오래된 건물과는 다소 이질적인 "EVERYTHING IS GOING TO BE ALRIGHT"라는 네온사인 문구가 적혀있다. 국립현대미술관 2 앞 정원에는 "THERE WILL BE NO MIRACLES HERE"라는 꽤 상반된 의미의 문구가 반짝이고. "모두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문구를 인상 깊게 봤던 데클란은 결국 "모두 다 괜찮아지는 일은 없어"라고 말하며 후자의 네온사인과 가까운 말을 내뱉지만, 우리 세상 속 데클란들은 여전히 모두 다 괜찮아질 거라는 문구에 머무를 수 있기를 아무것도 아닌 내가 감히 간절히 염원한다.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



*사소한 상식?

여행 다녀와서 찾아보니 에든버러는 금융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로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소득이 높은 도시라고 한다. 관광지를 벗어나면 꽤 부유한 풍경이 펼쳐진다고. 여행지로만 바라보는 입장과 실제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keyword
이전 10화해리포터 속으로 들어가다